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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일자리가 희망이 되기 위한 조건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녹색일자리’에 관한 기사를 연재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계획 등 녹색일자리 담론이 정부중심의 극히 제한된 논의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녹색일자리를 둘러싼 국내외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소개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 이정필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nerpol.net) 상임연구원이다. -편집자 주]

 

태양광, 풍력 분야의 녹색일자리

국제사회는 경제, 고용, 에너지기후, 이렇게 삼중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 ‘그린뉴딜’과 ‘녹색일자리’이다. 이명박 정부도 그런 흐름(green race)을 따라 녹색성장과 녹색일자리 정책을 발표했다.

 
우리에겐 아직 녹색일자리란 말이 낯설다. 더구나 정부가 이야기하는 녹색일자리는 상당히 제한된 개념에 그치고 있어, 발전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녹색일자리란 무엇이며,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고려해보아야 하는지 살펴보자.
 
녹색일자리에는 어떤 것이 있나
 
녹색일자리는 ‘녹색’(green)과 ‘일자리’(job), 두 용어가 결합된 조어다. 일반적으로 친환경적 일자리를 말한다. 기존의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에 대비해, 친환경적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을 ‘그린 칼라’(green collar)라고 지칭한다.
 
‘보다 친환경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일자리를 살펴보면, 미숙련 하급직에서 고숙련 고임금직까지 다양하다.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전기기술자, 태양열 보일러를 설치하는 배관공, 유기농업을 하거나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민, 에너지효율성을 높이는 건물이나 풍력발전단지, 태양열발전단지 등을 짓는 건설노동자, 폐기물재활용이나 재생 관련 일을 하는 노동자, 도시 녹지화 사업이나 수자원을 관리하는 노동자, 그린빌딩 건축설계사, 대중교통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환경의 질을 보전하거나 복구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생산직, 과학적, 기술직, 관리직, 서비스직뿐만 아니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농업, 제조, 건설, 운송분야의 모든 일자리가 녹색일자리의 범위에 포함된다.
 
‘녹색이 아닌’ 녹색일자리, 원자력
 

울진 원자력 5호기

그런데 녹색일자리라고 불리는 직종 중에는 녹색이 아닌 것도 있다. 최근 세계적인 녹색 붐 현상 이면에는 ‘원자력’이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몇몇 국가에서 원자력을 기후변화대응에 효과적인 수단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일각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주역이자 수출산업으로까지 치켜세우고 있다.

 
석탄이나 석유에 비교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원자력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원자력이 녹색산업이라면, 원자력발전소 건설노동자와 발전노동자도 그린 칼라에 포함될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원자력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발전과 폐기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괴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결코 녹색이 아니다.
 
정부는 기후변화 위기를 핑계 삼아, 원자력을 녹색으로 치장(green wash)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녹색일자리를 논할 때 먼저 무엇이 녹색이고, 어디까지가 녹색인가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회색산업에서 녹색산업으로, 고용의 지각변동
 
한 사회가 ‘에너지기후시대’에 대응한다는 것은, 사회의 시스템 전체가 전환한다는 의미다. 화석에너지 중심이면서 자원낭비적이며 생태파괴적인 사회시스템이,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이면서 자원보전적이며 생태치유적인 사회시스템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호주에서 열린 녹색일자리 시위 사진

에너지효율성을 향상하고, 환경의 질을 개선하고, 화석연료와 재생 불가능한 연료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경제로 전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전환과정에서 화력발전,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시멘트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반면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 산업과 철도, 그린빌딩, 에너지효율 상품제조 등 에너지를 저감하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산업은 확대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회색산업에서 녹색산업으로 변하면서, 동시에 고용의 변화도 나타난다.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면서 새로운 녹색일자리가 창출되기도 하고, 회색산업에서 녹색산업으로 대체되면서 일자리가 대체되거나 보존되기도 한다. 반면 회색산업이 사양산업이 됨에 따라 일자리가 소멸하기도 한다. 이렇듯 산업별로 차별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그렇더라도 다수의 녹색일자리의 연구는 전체적으로 일자리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특정 시점에서만 볼 때, 녹색일자리인지 아닌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한 트럭운전사가 하루는 풍력터빈을 운반하고, 그 다음날은 석유시추장비를 운반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트럭운전사는 ‘그린 칼라’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 녹색일자리를 특정시기의 특정한 직업이나 직종으로 한정하지 않고, 한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데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속하는 일자리를 통틀어서 녹색일자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사회와 산업 그리고 고용이 전화되는 역동적인 과정에 보다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녹색일자리는 괜찮은 일자리인가?
 

선진국의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에서 대규모 벌목이 진행됐다. 주민들은 땅을 빼앗긴 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Greenpeace / Oka Budhi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일자리이면서 쓰레기 관리에 해당하는 환경미화나 쓰레기 수거와 같은 환경고용 혹은 넝마주이를 녹색일자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녹색일자리에 만족할 수 있을까?

 
최근에 소개된 녹색일자리 연구보고서들은, 녹색일자리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 관련해 선도적이라고 평가 받는 독일과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풍력과 태양광에너지 생산설비산업, 녹색 건축업, 재활용산업 분야의 일자리에도 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즉, 녹색일자리가 항상 괜찮은(decent, good, quality) 일자리는 아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사례로 들고 있는 조직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과 석유화학 엔지니어들은 ‘(노동자 입장에서) 괜찮지만, 녹색이 아닌 일자리’이다.
 
반면, 적절한 직업안전성 없는 전자제품 재활용노동자들, 저임금 태양패널 설치자들, 착취당하는 바이오연료 플랜테이션 일용노동자들은 ‘녹색이지만 괜찮지 않은 일자리’이다.
 
녹색일자리는 ‘좋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녹색일자리에서 핵심은 ‘녹색’과 ‘좋은’, 이 양자가 양립하는가의 문제다. 유엔환경계획과 많은 녹색경제 지지자들은 녹색일자리가 반드시 ‘좋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린칼라 이코노미>의 저자 반 존스는 “지구에 뭔가 보탬이 되면서, 해당사람에게는 별 보탬이 안 되는 일자리, 또는 경제에 보탬이 안 되는 일자리를 그린칼라 직업의 개념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린경제는 태양 아래 노동자의 피땀을 짜내는 일자리 따위로는 이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기후변화와 환경에 도움이 되더라도 적정임금, 안전한 작업환경 및 노동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일자리의 경우, 지속가능한 녹색경제를 향한 전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노동착취적이고, 위험하고, 또는 생활임금을 제공하는데 실패하는 일자리에 대해서 ‘녹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녹색일자리는 환경영향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서 창출되는 괜찮은 일자리다.
 

풍력발전 생산기업 덴마크 베스타스사는 영국 와이트공장을 이전하려고 635개 녹색일자리를 없애기로 했다.


한편, 녹색산업과 녹색일자리 역시 자본의 이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평택쌍용차 노동조합의 공장 점거농성이 진행되고 있을 때, 영국의 베스타스 공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풍력발전 생산에 수위 기업인 덴마크 베스타스사는 영국 와이트 섬에 위치한 공장을 중국이나 미국으로 이전하기 위해 635개의 녹색일자리를 없애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베스타스 공장노동자들은 영국정부에 수백만 개의 녹색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을 말로만 반복하지 말고, 직접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회색산업’인 한국 쌍용차 사건과 ‘녹색산업’인 영국 베스타스 사건은 현실에서 동일한 문제에 봉착한 셈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한 이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녹색일자리 담론에는 전통적인 ‘고용’문제가 빠져있다. 그래서 회색경제에서 녹색경제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생각하는 이들은 녹색일자리가 태생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인식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규제와 정책이 우선 마련되어야 하고, 산업변환의 결과로 발생하게 되는, 그래서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 답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제 정의로운 전환은 국제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기후변화 대응의 주요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녹색산업이 경제성장지상주의 전략으로 추진될 경우에, 지속가능성은 발전과 성장에 귀속돼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특정한 소수기업과 국가에 녹색사업과 녹색일자리의 혜택이 집중될 수 있고, 다수의 기업과 국가와 지역사회와는 무관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녹색일자리 논의는 선진국의 녹색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자연보호와 지속가능한 자원수확에 기반을 둔 발전을 촉진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화폐경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단일한 수단보다는, 그들의 환경과 사회와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보다 많은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 논의를 현 경제시스템에 한정시키기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경계를 뛰어 넘을 필요가 있다. 일다 www.ildaro.com
 
[녹색일자리] ‘고용’과 ‘환경’문제, 어떻게 조화시킬까 | 녹색경제가 ‘유해 일자리’ 창출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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