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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바다 지키려는 강정마을 사람들
2008년 여름, 해군기지 반대하는 생명평화축제
 
[무더웠던 여름, 제주 지역은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은 평화바다를 지키기 위해 열정을 불살랐다. 2008년 강정의 여름을 제주참여환경연대 양동규 정책국장이 전한다. -편집자 주]
 
2008 생명평화축제, 강정에서 평화와 놀다
 
▲ 해군기지 건설반대 도보순례    © 강정마을회
2008년 여름은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만큼 평화를 갈구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열의가 가득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강정의례회관 앞마당에서는 “강정, 평화에 물들다” 토요 문화제가 열렸다. 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시작한 제주도 도보순례는, 참가자들이 붓고 터진 발을 붕대로 감싸며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공무원 출근시간 전부터 퇴근시간까지 가장 더운 낮 시간을 거리에 서서 보냈던 릴레이 일인시위도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부터 지키고 강정의 바다를 평화바다로 만들겠다는 ‘평화바다 선포식’ 등 그야말로 2008년 강정의 여름은 평화를 향한 염원으로 충만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릴레이 일인시위와 5박 6일간의 도보순례를 통해 ‘해군기지 없는 생명평화의 강정마을’을 갈망하는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것은 2008 생명평화축제(Peace Act Festival) “강정에서 평화와 놀자~!”로 이어졌다.
 
지난 달 22일~24일까지 강정마을 일대에서 진행된 2008 생명평화축제는 주민에 의해, 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진정한 축제였다. 무대를 만들고, 축제장소에 가는 길을 밝혀 줄 ‘평화의 등’을 만들고, 조명을 만들고, ‘평화바다 구럼비’ 표지목을 만드는 등 마을주민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벤트 회사에서 준비하는 축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주민에 의해, 주민을 위해 진정한 축제 만들어

 
▲ 강정마을 생명평화 방사탑    © 강정마을회
이번 축제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마을 분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재능과 장기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된 것은 축제가 가져다 준 큰 선물이었다.

 
평화바다 ‘구럼비’에 무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강정 앞바다를 배경으로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무대와 객석이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무대제작에서부터 조명, 스크린 설치까지, 무엇보다 축제 당일 날씨에 대한 걱정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목수일을 전문으로 하는 주민을 만나게 되면서 차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들의 걱정이 목수에게 옮겨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에게 무대감독 임무가 부여되면서, 무대와 스크린, 조명까지 신경을 쓰느라 밤잠을 못 잤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무대제작을 담당해 준 주민은 필요한 자재에서부터 함께 도와줄 사람들까지 손수 구해왔다. 자재를 빌려주고 노동력을 제공해 준 이들도 모두 마을청년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대제작 준비를 하고 완성되는 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공연자들이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꼼꼼하게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 하던 주민들의 세밀함 덕분에,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무대가 만들어졌다.

 
‘구럼비 무대’로 향하는 길을 밝혀 줄 연등도 주민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평화의 등’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연등 하나를 제작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 나왔기 때문이다. 몇몇 분들의 제안으로 절에서 청사초롱 틀 수십 개를 빌려왔다. 하지만 마을 사무국장은 당초 의도했던 방향이 아니라고 반대해, 결국 원점에서 ‘평화의 등’ 만들기가 시작됐다.

 
▲ 무대로 가는 길을 밝힐 '평화의 등'을 만드는 주민들  © 강정마을회
밤이 깊어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할 무렵, 단조로운 모양과 색깔로 볼품없어 보였던 등은 많은 이들이 가세하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철사로 틀을 만들고, 거기에 색색의 한지를 붙여 제대로 된 ‘평화의 등’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등 만들기에 빠져들었고, 준비된 한지가 바닥이 났을 때에야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등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평화바다’ 가는 길을 밝혔다.

 
작년 축제 때 쌓아 놓은 방사탑에 “생명평화 강정마을”, “평화바다 구럼비”라고 적힌 표지목을 만든 것도 강정주민들의 솜씨다. 주민 한 분이 당장 쓸 일이 없어 내팽개쳐둔 나무를 의례회관으로 가지고 오자, 평소 조용하고 말을 아끼던 청년이 나서서 글을 써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표지목은 평화바다 ‘구럼비’를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안내판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다.

 
강정에 숨어(?) 지내던 시인도 나타났다. 마을사람들 내에서는 잔잔하게 소문이 나있던 시인이었는데, 강정마을 카페에 그의 글이 올라가면서 명성이 날로 높아졌다. “강정, 평화에 물들다” 토요 문화제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만인 앞에서 자작시 낭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축제 메인 행사로 진행된 ‘평화바다 선포식’에서 낭송한 “평화바다 기원문”은 바로 이분의 마음과 손끝에서 나온 글이다. 마지막 일부를 소개한다.


▲ 강정마을 평화바다 속 사진     © 강정마을회

소라 전복 문어 우럭 어랭이 괘맹이 미역 톨
어릴 적 돌김을 채취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우리의 바다
이제 우리의 바다를 해치려는 무리들은 모두가 떠날 것을 명합니다.

강정의 바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바다요
강정의 땅은 평화를 노래하는 모든 이들의 땅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강정의 모든 곳은 누리고자 할 때 언제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평화를 가져가려는 자 모두가 떠날 것을 명합니다.
누구도 이 땅의 평화를 해칠 자격이 없으며
누구도 이 바다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든 이들의 뜻을 모아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뜻을 모아
이제 이후로 이 바다를 평화 바다라 선포합니다.


‘구럼비 무대’와 객석을 밝혔던 조명을 담당한 이도 마을주민이다. 전기 설비를 업으로 하고 있는 그는 자비로 크레인까지 동원해 가며 주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빛을 밝혀 주었다. 초등학교 후문 입구에 그려진 벽화도 주민들의 손길이 더해져 완성됐다. 벽돌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벽을 하얀 도화지로 만들어 준 것은, 미장일을 했던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밖에도 맛있는 식사와 막걸리 안주를 제공해 축제 준비에 힘을 더해주신 분, 축제준비로 어지러워진 의례회관과 축제장 뒷정리를 도맡아 해주신 주민 등등. 이렇게 주민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2008 생명평화축제, 강정에서 평화와 놀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양한 마을축제들이 있지만, 강정의 평화축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축제였다.
 

해군기지 건설반대, 평화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

▲ 2008 생명평화축제 오영순 1인 마당극   © 강정마을회
이제 여름도 지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강정마을은 분노와 고통, 환희와 희망이 공존했던 여름을 뒤로하고 새로운 투쟁을 모색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마을주민들의 마음은 타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평화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과 눈빛은 더더욱 빛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지만, 주민들이 선택한 이 길이 곧 평화의 길이기에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길이다.
 
2008 생명평화축제를 마치면서 2009 생명평화축제 모습도 생각해본다. 평화를 갈망하고 염원하는 주민들이 있기에 내년에도 ‘구럼비’에서 생명평화축제가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09 생명평화축제에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생각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된다.



*다음까페 “해군기지 건설반대! 강정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cafe.daum.net/peace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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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5:33]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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