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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미쓰백”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나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관크(관객 크리티컬)를 겪으며



※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에이, XX. 이게 영화냐.” 큰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미쓰백>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마음을 진정 시키고 일어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뒤돌아서 그의 얼굴을 봤다. 중년 남성이었다. 3초 정도였을까? 그를 보는 내 표정이 아마 그리 좋지는 않았을 거다. 그가 기분이 나쁜 듯 “뭐요?”라고 쏘아붙였다.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극장을 나왔다.


한마디라도 했어야 좋았을까? 저런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섰지만 사실은, 뭐라고 한마디 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는 사이 이미 다른 관객들은 자리를 떠난 극장 안에서 홀로 중년 남성과 대치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게 내가 ‘여성’으로 살아오며 취득한 일종의 ‘지혜’라는 걸, 그는 아마 알 리가 없을 테다.


그는 자신이 이게 영화냐며 화를 낸 이 영화가 나에겐 단지 영화 같지 않아서 슬프고 또 큰 힘이 되었다는 걸 더욱 알 리가 없을 테다. 지면을 통해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 왜 이 영화가 소중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 이지원 감독, 한지민 김시아 주연, 영화 <미쓰백>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백상아와 김지은, 두 여성의 이야기


<미쓰백>(이지원 감독, 2018년)은 세상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사람, 자신을 ‘미쓰백’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백상아가 어느 날 차가운 길바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소녀 김지은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야기다.


상아는 학창시절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가해자를 찌른 일로 인해 ‘살인미수’범으로 복역한 전과자다. 그에겐 어린 시절 자신을 방치하고 버린 알코올중독 엄마가 있다. 상처투성이인 그는 ‘미쓰백’이란 이름으로 세차장, 마사지샵 등 계약직 노동자로 투잡, 쓰리잡을 하며 다른 세상과는 단절한 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소녀를 길에서 발견한다. 얇은 원피스는 더러운 상태이고,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이 얼굴의 표정과 상처를 덮고 있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바라보면 금세 그 상태가 다 보일 정도인 지은을 말이다.


분명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상아는 뒤돌아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둘은 함께 포장마차에 서 각각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이후 지은의 ‘보호자’인 생부의 여자친구 주미경이 나타나 그에게 지은을 보내려던 순간, 상아는 지은이 잡은 손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 영화 <미쓰백> 장면 중에서  ⓒ리틀빅픽처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른’인 상아가 ‘아이’인 지은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의 관계는 표면적으론 어른과 아이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보호한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인거다. 기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끌어내는 관계인거다. 상아와 지은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고, 두려워했던 고통과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다양한 여성의 얼굴들, 그리고 욕망들


상아와 지은의 이야기 속에서 감동 받은 장면이 한둘이 아니지만, 날 가장 많이 울린 장면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아의 엄마 정명숙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알코올중독인 싱글맘, 세간에서 보면 욕먹기 딱 좋은 그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여성들이 떠올랐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수없이 실패를 거친 많은 여성들이.


결국 아이를 포기한 명숙의 선택이 정당했는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음에도 그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혹은 그런 선택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중 하나다. 명숙이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대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는 걸 보여준 것도 좋았다.


영화는 명숙이 상아에게 준 상처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명숙에게도 분명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저 매정한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버거웠던 한 명의 여성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또 하나의 여성 서사를 품었고, 그게 매력적이었다.


▶ 영화 <미쓰백> 장면 중에서  ⓒ리틀빅픽처스


또 지은을 학대하는 생부와, 그의 여자친구인 주미경 중에서 주미경 쪽이 조금 더 부각된 지점도 흥미로웠다. ‘나쁜 계모 클리셰’를 따라가는 것 아닌가 하고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남성인 생부가 더 부각된다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불균형하게 느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쓰백이 마주해야 하는 인물이 생부라고 상상해보면 좀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감독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상아와 지은에게 덜 절망스러운 방식을 제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주미경은 악역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입체적이며 욕망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만 하며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생부보다, 주미경 캐릭터는 확실히 활력이 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강아지를 내 새끼라 부르며 부둥켜안고 다니면서 대외적으론 참하고 인정 많은 여성을 연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특정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기도 하고, 모든 계획을 주도한다. 생부는 주미경의 지시에 따르기 급급하고 그에게 의존한다.


이런 역할이 생부에게 주어졌다면,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또 한 명의 여성피해자를 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힘없이 지시를 따르며 범죄에 가담하는 인물로서 말이다. 때문에 다양한 여성의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선택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여성들이 무해하고 순하며 착한 존재일 거라는 기대도 잘못된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악녀 주미경에 대한 해석도 다양했으면 좋겠다.


가족의 탄생, 언제까지 ‘호명할 수 없는 관계’로 둘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을 ‘가족의 탄생’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어떤 가족이 만들어지는 걸로 봤다. 하지만 그 가족의 형태가 상아가 엄마가 되고 지은이 딸이 되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상할까? 한 사람과 한 사람의 결합의 형태로 보였다고 한다면 말이다.


미쓰백은 사회가 상상하는 어떤 엄마의 상으로 변한 게 아니라 계속 미쓰백으로 남았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상아는 지은과 만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각성을 통해 ‘엄마’로 변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켰고 다시 지은과 만났다.


그들이 정말 ‘가족’을 이루며 한 집에서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들이 가족이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이 사회가 아직 용인하지 않은 가족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모습은 이미 충분히 가족이었으니까.


외톨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이 만났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을 ‘호명할 수 없는 관계’로 내버려 둘 것인가? <미쓰백>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진 거라고 생각한다.


▶ 영화 <미쓰백> 장면 중에서  ⓒ리틀빅픽처스


지금까지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를 언급했지만, 모든 것이 다 좋다고 평하는 건 아니다. 이를 테면 상아가 학창 시절 피해자에서 순식간에 가해자가 된 순간부터 늘 상아 옆에서 그를 보호하고 사랑해주는 장섭 형사의 행동은 좀 과한 부분이 있었다. 상아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저지르는 공권력 행사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저 공권력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어떤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새크빌 웨스트가 나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걸로 알려져 있는 영화 <비타 & 버지니아>(Vita and Virginia)가 지난 9월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 나온 리뷰를 읽다,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많은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By Kayleigh Donaldson, PALJABA 2018년 9월 12일자 비평, pajiba.com/film_reviews/review-vita-and-virginia-starring-gemma-arterton-and-elizabeth-debicki.php)


<미쓰백> 상영이 끝난 영화관에서 큰 목소리로 화를 낸 그 남성의 태도를 떠올리다가 이 문장이 생각났다.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한 번도 낙인 찍히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거나, 방임과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본 적 없거나, 고통 속에서 소중한 무엇을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 등.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 생각해 보라는 영화의 의미조차 읽어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오” 라며 마음을 닫아버리는 대신 이 영화가 가진 소중한 지점들, 관객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들을 찬찬히 한번 되짚어 보았다. 이렇게 말하기/글쓰기가 내가 <미쓰백>에게 배운, 세상을 향해 손을 뻗는 용기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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