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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히는 여자’임을 밝히는 것

[Let's Talk about Sexuality] 20대의 ‘원 나잇 스탠드’ (Honey)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서랍 안쪽에 꼭꼭 숨겨 놓은 이야기


언젠가 한 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꺼내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아니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은 내 과거의 서랍 가장 안쪽에 꼭꼭 숨겨 놓았다.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영화 <피아니스트>를 본 적이 있다.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의 숨겨진 모습 어느 한 부분이 스크린에 끈적끈적하게 펼쳐진 느낌이어서, 신기하기도 겁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도, 주인공 에리카도 알고 있었다. 이런 걸 ‘밝히’면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리고 무서운 대가(처벌)를 치르게 될 거야.


▶ 칸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피아니스트>(La Pianiste, 미카엘 하네케, 2001) 200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가 원작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와 딸 사이의 구속과 지배, 여성의 사도마조히즘 욕망을 표현하였다.


나는 20대 중반 무렵 1년 가까이 ‘원나잇’(One-night stand)을 열심히 했다. 여러 (남성)섹스파트너를 만났고 그들과 연애는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섹스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트레스를 ‘섹스’로 풀었고,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오르가즘’이었던 것은 맞다. 성해방이나 섹슈얼리티 실험 같은 거창한 이슈나 정치적 목적도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섹스가 고파 밤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내 안의 감정적인 결핍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갈증 모두 섹스라는 행위로 즉각적이고 깔끔하게 해소되길 바랐을 뿐이다.


내 주변에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가부장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며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와도 개인의 ‘섹스 라이프’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연애 파트너 외에 여러 섹스 파트너, 그것도 ‘일반 남성’을 만난다는 얘기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면 바로 “위험하지 않냐”, “성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냐”는 충고(혹은 질책)를 듣게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지지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조차 나 또한 ‘그런 사람(여자)’임을 밝히기가 편치 않았다.


결국 나는 밤과 낮이 다른 생활을 하기로 선택했다. 낮에는 충실하게, 성욕이 없는 것처럼 일하고 밤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범위와 ‘여성성’의 규제, 주변의 눈치에서 벗어나 ‘순수’한 오르가즘을 찾아 나서기로.


남자 사냥 vs. 공짜로 자주는 여자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도 내 주위에는 잘 만한 남자가 아예 없었고, 헌팅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결국 나 같은 하이에나가 가득한 정글, 온라인에 접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공간에서는 여자회원이 소수이기 때문에 가입만 해도 메시지가 줄줄이 떴다. 대놓고 “섹스파트너를 찾는다”고 소개하자 메시지 창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남자들은 그냥 돈을 안내고 섹스할 수 있는 것만으로, 스스로 자주겠다는 여자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약간 김이 빠졌지만 어쨌든 파트너를 고르고 관계의 방식을 컨트롤할 권한이 나에게 있으므로 그건 좀 다행이라 여겼다.


처음에는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기본적인 정보―나이, 지역, 선호하는 스타일 등. 직업이나 활동 같이 ‘낮 생활’이 드러날 만한 내용은 함구했다―를 나누었고, 대화가 좀 통하거나 괜찮다 싶으면 연락처를 주고받아 직접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대화 중 주어를 ‘오빠가~’ 하거나 조금이라도 허세, 권위가 느껴지면 칼같이 끊고 차단해버렸다.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유머도 있고 다정다감한 느낌이 들면 경계가 좀 풀어졌다.


가뭄에 콩 나듯 멀쩡한 데다 똑똑한 남자도 간혹 나타났다. 그런 사람과는 일면식도 없으면서 밤새 대화도 나눌 정도였는데, 대화가 편하고 즐거운 상대는 나중에 실제로 만나 섹스했을 때에도 괜찮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 발 페티쉬가 있는 남자(그런 줄 모르고 만났음)는 섹스할 때 내 발에 너무 집중해서 짜증나기도 했고, 어떤 남자는 여성용 자위기구를 가져와 자위하는 걸 보고 싶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상한 남자들은 100퍼센트 섹스도 못하고 정력도 약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어려운 상대인 경우, 아쉬우면 폰섹스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방식이 어색하고 집중도 안 되고, 그런 상태에서 상대방이 먼저 오르가즘에 이르는 걸 들으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잘 진행되면 자위할 때 누군가 서포트해주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남성의 몸이나 섹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직접 몸을 접촉하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원나잇’을 계획했다. 후보 A, B, C…를 업데이트하며 한 명씩 차례로 약속을 잡았다.


▶ 20대 중반,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범위와 ‘여성성’의 규제, 주변의 눈치에서 벗어나 내 몸을 탐닉하고 오르가즘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림: JJ


‘섹스’와 ‘관계’ 떼어놓기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인연이었는지 첫 상대는 1년 정도 꾸준히 만났다. 말수가 별로 없고(섹스파트너로서 큰 장점이었다) 나보다 몇 살 위인 일용직노동자 A였다. 그도 나처럼 원나잇 경험이 없어 처음 만났을 때 약간 우왕좌왕했다. 우리는 잠자리로 직행하기 전 ‘데이트’를 하며 뜸을 들이고 서로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스킨십에 서투른 그에게 오늘은 안 되겠다며 섹스를 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다시 연락하자 A는 “나 까인 거 아니었어?”하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만나자는 데 순순히 응했다. 그리고 처음 섹스를 하고 나더니 “모르는 여자랑도 할 수 있구나. 나는 좋았는데 너는 어땠어?”하고 물었다.


그의 ‘선수’같지 않은 태도가 나에겐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졌다. 남자 섹스파트너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철저하게 ‘갑’의 위치임을 상대에게 의식적으로 주지시키고자 했다. 어쩌면 평소 ‘낮 생활’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남성과의 힘의 전복을 섹스에서 이루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 내가 ‘갑’이지 않으면 모르는 남자와의 섹스 상황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도 했다.


A와는 1~2주에 한 번은 만난 것 같다. 섹스를 하고 나서 바로 헤어지지 않고 그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같이 뭘 시켜 먹기도 했다. 그러자 한두 달쯤 지난 후 그가 갑자기 나를 집 근처 포장마차로 불렀다. 본격적인 관계 이후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는 그와의 술 약속을 ‘전희’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자기 가족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 때문에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공부도 포기했고 빚을 갚고 있고…. 그는 슬퍼보였고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았지만 나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술자리가 끝나고 A는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한동안 A의 연락을 무시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A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가족 얘기 하지 않을게.” 나는 A를 만났다. “나 A가 좋지만 연애하기는 싫어. 우리 계속 볼 거면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고, 안 물으면 좋겠어.” A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후 10개월 정도 꾸준히 만났다. 내가 이사하며 관계가 끊기고 나서도 A는 1년 넘게 가끔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거나 보고 싶다고, 찾아가도 되냐고 했다. 나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관계에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 한 번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냥 몸과 마음 모두 외로웠을 때 나를 만난 것이라 생각한다. 1년 동안 같이 섹스를 하고 섹스 전후의 시간을 같이 보낸 친밀함은 무시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한 번도 그에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남자들만 관계와 섹스를 뚝 떼어놓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나 또한 그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것이 스스로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만의 오르가즘과 아침밥


ㄱ지역에 출장이 잡히자 바로 B가 생각났다. 매너 좋고 성에 관한 지식도 해박해서 잘할 것 같지만 지역이 너무 멀어 차마 만나러 갈 엄두가 안 났는데, 마침 그가 사는 지역으로 출장갈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B에게 만나자고 했고 그는 바로 응했다. ‘OO아파트로 와.’


원나잇을 하는 경우 대부분 모텔로 가는데 왜 집으로 오라고 하지? 돈이 아까운가? B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마침 나와 만나는 날 부모님이 여행을 가서 집이 빈다며 모텔보단 집이 더 편할 것이라 했다. 나는 약간 긴장됐지만, 그동안 대화를 나눈 것과 온라인 공간에서 그의 활동을 보며 생긴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어서 와. 진짜 만났네!” 그의 집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거실에 책이 가득한 게 인상적이었다. “피곤하지? 우선 씻던지.” 샤워하고 나와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 날 밤은 내 평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오르가즘을 자주, 많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인 줄 모르고 살았다. 뇌가 폭죽이 되어 펑펑 터지는 것 같았다. 몸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녹아 흘렀다 다시 달구어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길과 태도는 거침없었지만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여자의 몸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되는지 오랜 시간 탐구하거나 연구한 사람 같았다. 평생 사용해온 나보다 오히려 내 몸을 더 잘 아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르가즘의 큰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사방으로 출렁이며 아득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서비스하던 그도 어느 순간 성기 삽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런… 그의 것이 너무 크고 굵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하다 실패하고 내 몸이 식어버렸다. 서로 겸연쩍어하며 관계가 끝났는데, 나 혼자만 즐긴 느낌의 섹스는 처음이라 그에게 왠지 미안했다. “괜찮아, 이런 적 처음 아니야. 다른 여자들도 잘 안 들어가더라고. 잘 자.” 그는 쿨하게(?) 등을 돌리고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침대엔 나 혼자였다. 거실에서 TV소리가 들렸다. “잘 잤어? 밤에 많이 뒤척이기에, 피곤한 것 같아서 난 거실에서 잤지. 밥 해줄게, 먹고 가.”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는 한 상 뚝딱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왜 모텔 대신 집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인생 오르가즘’에 맛있는 아침밥까지 얻어먹고 그와 헤어졌다.


판도라의 상자, 마조히즘


섹스파트너를 고른다 하면 남자들은 내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소한 섹스 전까지는 설설 기던가, 아니면 섹스 중에도 본인이 판을 깰까봐 눈치를 보았다(정말 재미없다). 그런데 C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C는 호방한 느낌의 ‘큰 오빠’ 같은 타입이었다. 나는 온라인에서 권위적인 스타일의 남자들은 다 쳐냈고, 아마 오프라인 공간에서 지인으로 알았다면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C에게서는 성적인 느낌―차마 ‘매력’이라고는 할 수 없는―이 강하게 나서 더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나의 내면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한 C와 교류를 끊고 싶지 않아 섹스를 하기 전후 꽤 오랜 기간 연락하고 지냈다. 그냥 친구나 선배처럼 내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다. 단 한 번의 섹스, 그 후 그는 나에게 계속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그와 전화연락만 하고 만남은 피했다. C나 그와의 섹스가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다. 사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C’로 그려지는 ‘어떤 섹스’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아쉬워할 것이다. 한편으론 더 시도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 나는 내 욕망을 분명히 알고 싶고, 그것에 응답하고 싶다. ⓒ그림: JJ


C는 내가 정치적으로 거부하거나, 현실에서 용인하기 힘든 여러 면을 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꽤 많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남자였고, 자기 분야에 어느 정도 성공했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과시하며, 맨스플레인도 잘하고, 특히 섹스에 있어서는 확고한 자신감이 넘치는- 정말 재수 없는 남자, 꼰대, 마초라 할 수 있다. 나는 그와 대화할 때 보이지 않는 기 싸움과 정치게임에 주력하다가도, 어떤 성적인 자극이 올 때면 그냥 모든 경계를 다 풀고 싶은 욕망이 불쑥 일어났다. 그것은 나에게 정말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그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마조히즘적 욕망을 말이다.


“당하고 싶다”는 평생,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라서 당하고만 사는데 어떻게 그걸 바라기까지 한다는 건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욕망이 여성혐오 사회와 강간문화 속에서 내면화되고 조직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에, 그러니까 내가 진정 “원한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그것을 수용하거나 표현할 수 없었다.


실제로 당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적인 강제 행위를 당했을 때는 결코 좋지 않았고, 많은 ‘피해 리스트’에 추가될 뿐이었다. 그럼, 뭘 어떻게 당하고 싶다는 말인가? 나는 여전히 남자들의 환상에 맞춰 인형처럼 춤추는 중인가? C는 나에게 설렘과 불쾌감을 동시에 주면서 ‘그 욕망’ 실현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준 파트너였다.


그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다른 남자들을 만났을 때보다 몇 배쯤 더 긴장한 채 C를 만났다. 직접 그를 만나자 정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먹으라는 대로 먹고, 가자는 대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섹스를 하러 모텔방에 들어섰다.


그와 나는 만나기 전 몇 달 동안 서로의 성적 판타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들려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둘 다 기대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물로 만나자마자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려니 망설여졌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C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옷을 다 입고 나오면 어떡해?”


형광등 불을 환하게 켜놓은 채 C는 내 옷을 하나씩 다 벗겼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모텔방 구석구석까지 다 돌아다니며 섹스를 했다. 그가 특별히 테크닉이 뛰어나거나, 그래서 B처럼 나를 몇 번씩 ‘보내’버리지는 않았으나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상대였다. 밤새 불을 끄지 않아 내가 섹스하는 모습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본 것도 처음이고, 그가 주도하고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도 저항이나 불편함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대화했을 때처럼 그냥 나를 ‘맡기’고 싶은 욕망, 그 너머로 가고 싶은 호기심에 더욱 사로잡혔다. 더 강하게, 라는 나의 요구에 그도 함께 불이 붙은 듯했다.


새벽에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와의 다른 밤을 상상하고 자위할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살짝 열린 그 문을 바로 닫아버렸다. 그와의 관계까진 끊고 싶진 않았지만, 집요하게 만나자고 연락이 와 결국 내 번호를 바꿨고 그의 번호도 지웠다.


섹스에 대해 다른 여성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어쩌면 이번 생은 ‘틀렸다.’ 나는 이성애자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했고 사실 이 사람과의 현재 삶이 꽤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섹스에 있어서만은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나눌 수 없다. 상대방의 한계와 그가 수용할 수 있는 지점을 분명히 알고 있고, 나의 판타지는 결혼이라는 테두리 바깥에서 구할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의 ‘원나잇 생활’ 또한 애인이 생김과 함께 끝났었다. 서로 합의하지 않은 이상, 상대를 두고 다른 섹스파트너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때는 ‘다자연애’가 가능하리라는 생각도 못했고,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일대일이 아닌 관계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유나 책임이 없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향유했던 당시의 나를 떠올려보면, 오로지 ‘나’와 ‘욕망’만을 신경 써도 되는 순간을 간절히 원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전하다’ 혹은 ‘바람직하다’는 형식과 틀을 깬 관계를 맺으며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연애와 섹스를 기존에 세상이 알려준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다.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가는 평생, 그리고 일상적으로 드는 고민이다. 또한 나의 욕망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해석하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것인가 역시,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게 해소되지 않은 두 갈래의 이슈, ‘관계’와 ‘욕망’이 만났을 때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 아직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완벽한 섹스’, ‘절정의 오르가즘’ 같은 건 어쩌면 무지개처럼 둥실 띄워져 있는 욕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었을 때,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섹스횟수가 늘어도 계속 빈 칸이나 물음표, 말줄임표를 쓰게 된다면 서글플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은 여자들과 섹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고, 섹스를 통해 나 자신과 대화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그 욕망에 응답하며 살고 싶다.


사람들은 여자가 ‘밝히’면 “몸을 막 굴린다” 욕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섹스와 오르가즘에 열중했던 그 시기만큼 내 몸 구석구석까지 소중히 여긴 적은 없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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