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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하는 몸이 알려주는 것들

[Let's Talk about Sexuality] 지옥 같은 주기를 겪고 난 후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이번 칼럼의 필자는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를 제작한 김보람 감독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야기되지 않았던 ‘생리’에 대한 다큐를 만들며


▶ 올해 초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 포스터


누군가는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제목도 처음 듣는 영화일지 모르는 <피의 연대기>는 2015년 가을부터 2017년 겨울까지 약 2년에 걸쳐 만든 생리(menstruation, 월경)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올해 1월에 개봉했다. ‘생리에 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이 영화에서 다룬 것보다 다루지 않은 내용이 더 많다.


다큐 작업을 위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생리’라는 몸의 일이 가진 영역은 방대했다. 과거에 사람들은 매달 일정한 시간 동안 피를 흘리면서도 죽지 않는 몸을 이상하게 여겼다. 문학과 철학, 의학을 지배해온 남성 권력층은 이 자연스러운 몸의 일을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며 불결한 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는 이야기되지 않았고, 연구되지 않았고, 공론화되지 않았다.


그렇다며 나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다뤄야 할까? 수많은 선택지들을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동안 내가 집중했던 건, 이 피를 처리하는 방법과 도구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를 개봉하고 난 뒤 종종 원고 요청이 들어오면, 영화를 만들며 겪었던 내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쓰곤 했다. 불지옥 같은 여름을 견디고 겨울을 앞둔 ‘환절기’에 이 글을 쓰면서, 이제 나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두 차례 계절의 지나며 내겐 또 다른 변화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생축 생축’ 다양한 생리용품을 사용하는 즐거움


당시 영화를 만들며 최대한 다양한 생리용품으로 내 몸을 실험해보자 결심했다. 1987년도에 태어나 1998년도에 첫 생리를 한 나는 <피의 연대기>를 만들게 된 서른 살이 되던 해까지 18년에 걸쳐 일회용 생리대만 사용했다. 생리용품 취재 기간 동안 탐폰도 건너뛴 채 제일 먼저 도전한 용품은 생리컵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에서 생리컵 열풍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자료는 반더킴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던 수진 씨의 생리컵 후기에서 얻었다. 수진 씨는 주기를 반복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몸의 변화를 친절하고 상세히 기록했다. 본인이 처음 생리컵을 썼을 때 갈급했던 누군가의 생생한 후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진 씨의 글은 나에게도, 영화에게도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었고 이후 우리 영화에 실제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는 핀란드의 한 생리컵 회사에서 컵을 구매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생리컵이 도착하기까지 보름 정도 걸렸다. 주기가 돌아오자마자 포장을 뜯어 비누와 물로 씻어낸 뒤 망설임 없이 질로 밀어 넣었다. 내겐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걸 빨리 써보고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생리 첫 날, 질을 가득 채우고 있던 피 때문이었을까. 생리컵은 부드럽게 ‘미끄덩~’하며 질 속으로 들어갔다. 접혀 있던 컵 입구는 저절로 펴진 것 같았다. 휴지로 피를 세 번쯤 닦아내자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발에 맞는 구두 사이즈를 찾기 위해 매장에서 새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걸어볼 때처럼 나는 좁은 자취방 안을 돌아다녔다. 컵이 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물감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 씻은 후 말리기 위해 식기 건조대에 올려둔 생리컵  ⓒ김보람


돌이켜보면 영화를 만들던 2년만큼 생리하는 일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주기를 기다려 새로운 용품을 착용하고, 착용감과 장단점을 비교하면 금세 주기가 끝났다. 스폰지 탐폰, 해면 탐폰, 일회용 생리컵… 인터넷을 뒤져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손수 실로 뜬 핸드메이드 탐폰을 판매하는 할머니를 발견했을 땐 혼자 자취방에 앉아 환호성을 질렀다.


구글링으로 실제 울 탐폰을 사용하는 여성의 후기를 읽고, 부담감이나 거리낌 전혀 없이 울 탐폰을 질 안에 넣는 데 성공했을 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진 예쁜 탐폰이 내 질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던 후반 편집 기간을 질 내 삽입형 생리용품을 사용하며 그야말로 ‘산뜻한’ 기분으로 보내고, 팬티 위에 아무 것도 붙이지 않은 채 생리 주기를 끝내면 ‘생리, 그까짓 거’라는 오만한 기분까지 맛 봤다. 함께 영화를 만들던 여성 제작진들끼리는 카톡창에 생리가 터지면 폭죽 이모티콘을 날리며 ‘생축 생축’ 서로의 생리를 축하해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그때가 생리에 관해서라면 내 인생 황금기였던 거다.


생각해 보면 절묘했던 것 같다. <피의 연대기>는 첫 연출작이었다. 돈도, 재능도, 능력도 부족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2년의 시간만큼은 무언가를 성취해 나간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내 몸에 대해서 알아가며 느꼈던 쾌감, 전혀 관계가 없던 여성들(출연진)과 관계를 맺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느꼈던 동지애.


수차례 뒤엎었던 편집본이 어느덧 완성되어 가고, 작업자들로부터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넘어올 때면 그 결과물을 들여다보며 혼자 행복해 했다. 그렇게 수많은 생리용품을 질에 넣어보고,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며 내 몸과 더 없이 빠른 속도로 친해지던 시간. 그러면서 늘 보잘 것 없고 왜소하다고 생각했던 내 몸을 서서히 용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가장 큰 성취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이렇다 할 생리통을 겪지 않았다.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매년 환절기면 내 방 문을 두드리던 알레르기 증상도 마치 안식년을 갖기로 한 듯 잠잠했다.


▶ 빨아 쓰며 색이 바래진 손뜨개 탐폰  ⓒ김보람


‘생리 너무 싫다’ 고통스러운 배란통이 시작되다


증상은 지난봄부터 시작됐다.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증상을 보였던 배란통이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아랫배를 거쳐 자궁과 항문 주변까지 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허벅지를 통해 발끝까지 이어졌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지난 8월 주기에는 고관절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무릎과 종아리, 발끝까지 저리게 만들었다. 배란통을 사나흘 정도 겪고 며칠 휴지기가 지나면, 이번엔 생리전 증후군이 배란통과 거의 같은 증상과 강도로 나타났다. 생리양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결국, 9월에는 예정일이 며칠 지난 시점부터 시커멓고 바싹 마른 피 부스러기가 이틀 간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던 날 몸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다.


생리컵을 쓰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 생리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주변에 컵을 쓰는 사람들은 양이 많은 날 꼭 두세 번은 컵을 갈아줘야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침 샤워 후 낀 컵을 밤에 씻기 전 꺼내보면 피가 찰랑거리며 가득 차 있었다. 아침, 저녁 하루 딱 두 번만 컵을 갈아주면 되니 집이 아닌 밖에서 컵을 갈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컵을 갈지 않으면 피가 새는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속옷에 피가 묻어 나왔다. 양이 많아서 생리컵을 쓸 때 오히려 생리대를 쓸 때보다 더 힘들다는 여성들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갔다. 보통 이틀이면 이런 주기는 지나가지만, 이번엔 생리 시작 칠일 째 되는 날까지 피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피가 줄어들길래 생리가 끝났다는 걸 확신하고 아무것도 입지 않고 나간 날, 청바지 안쪽이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생리를 시작하고 엿새가 지났는데도 마치 둘째 날 하는 것처럼 새빨갛고 많은 양의 피가 나왔다. 피는 그렇게 열하루를 충실히 흐르고 나서야 멈췄다.


매일 피를 보는 게 지옥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컵을 빼고 다시 껴야 하고, 피가 새서 속옷을 적시면 다시 피를 제거하기 위해 손빨래를 해야 하고, 하루에 서너 번은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밤이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


생리 너무 싫다. 집에 쌓여 있는 생리용품들 다 쓸어버리고 싶다. 자궁 싫다. 내 몸 싫다. 이 피는 깨끗하다고, 사실은 냄새 나는 피가 아니라고,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영화를 만든 후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을 나는 배신하고 싶었다.


내 생활과 정신건강, 그리고 생리의 상관관계


모든 일은 얽혀 있었다. 지옥 같은 주기를 겪고 난 뒤, 나는 생리주기와 몸의 반응을 기록해 둔 일기를 보며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크든 작든 그 달을 유지할 수 있는 생계형 아르바이트 일이 들어온 달은 통증도, 생리양도 다른 달에 비해서 비교적 이전에 내가 겪었던 생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달, 마치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고,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달의 통증과 생리양은 이전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하고 상태가 꽤 좋아졌던 달과, 약을 끊고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불안에 무방비 상태로 대처하려 했던 달에 겪었던 생리의 차이들이 눈에 보였다. 내 몸은 평생을 거쳐 이전과는 완전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제는 내 삶이 언제나 안전한가, 내 미래에 대해 나는 얼마나 예견할 수 있는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표지


웬다 트레바탄의 책 <여성의 진화: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에도 그런 일화들이 나온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한 여성의 경우, 생존을 위해 몸은 생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간헐적으로 생리가 끊기는 현상이 생긴다. 내 경우 놀랄 만큼 정직한 몸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앞두고 나는 육 개월 동안 멈추지 않고 생리를 했다. 큰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두 군데나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 의사의 답이었다. 같은 일을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또 한 번 겪었다. 이번엔 삼 개월. 혹시나 싶어 병원에 갔지만 역시나 아무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땐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내 몸에서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


카프카는 ‘초조해하는 건 죄’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너무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보다 금세 초조해지고 불안해하는 게 내 성격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먼저 상상하고 불안해하기. 어쩌면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작업자로 살아가는 게 내 불안과 초조함을 더욱 증폭시켰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드는 2년간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로 흥분과 행복감에 젖어 있다가,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뒤 현실세계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영화를 만들며 생긴 빚과, 비어 있는 통장 잔고, 불안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이전과는 다른 생리통을 유발했고, 이전과는 다른 생리주기를 경험하게 했다.


다시 마주친 질문, 여성의 ‘빈곤’


그래도 나에겐 아직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원이 있다. 힘들 때 달려갈 수 있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내가 쓰러지도록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세상의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조차 몸은 견디지 못할 스트레스를 자궁으로 응답한다. 엄청난 양의 피, 그리고 엄청난 강도의 고통.


다른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언젠가 나이가 들수록 성인 비혼여성의 삶이 처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가족과 연이 끊기고, 직장을 갖기 힘든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사였다. 구구절절한 상황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사회적 관계들이 끊긴 상태에서 여성들이 처할 수밖에 없는 빈곤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하게 됐다.


영화를 만들면서 생리대의 공공성에 대해 다룰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이 ‘생리대 공공재’라는 명제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10월을 앞두고, 내 주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밑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고관절에서 시작된 통증이 종아리께로 넘어오는 밤이 시작됐다. 추석 연휴가 지났고, 나는 산부인과 진료 예약을 잡았다. 필요하다면 초음파 검사는 물론, 의사 선생님이 권하는 다른 종류의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나에겐 사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행여 어떤 질병이 관찰된다 하더라도 부담 없이 입원해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내겐 그런 것들이 가능한 보험이 있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심각한 질환이면 기간에 제한 없이 입원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시작된 통증과 늘어난 피의 양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하는 환경이라면? 아픔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주변인이 없다면? 당장 평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업무환경에 있거나, 설사 진단을 받는다 해도 여유 있게 몸을 돌보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몇 만원씩 하는 산부인과 검사를 감당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밤은, 또 낮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독으로 채워질까? (김보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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