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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다시, ‘무지개’의 의미 찾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8.07.20 21:00

다시, ‘레인보우’의 의미 찾기

19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바라보며



축제를 둘러싼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들


올해 19회를 맞이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몇 년 전부터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늘 시작 전부터 진통을 앓는다. 올해는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대구 동성로/서울 시청광장 퀴어행사(동성애축제) 개최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약 22만 명이 서명했다.


외부적인 요건만이 아니라, 행사 규모가 커지고 많은 인원들이 참여함에 따라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제기돼왔다. 애프터 파티에 미성년자가 참여할 수 없는 문제라든지, 축제 슬로건이나 행사 구성이 ‘동성애자 중심’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작년엔 애프터 파티에서 일부 여성 입장객에게 입장료를 높게 받는 일이 발생해 주최 측에서 해명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일은 SNS상에서 여성차별적인 게이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논란이 과열되며 여남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올해는 페미니스트 바이크 모임인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퀴어퍼레이드 선두에 선다는 공지가 나간 후, 일부 퀴어남성들이 SNS를 통해 항의 목소리를 내며 다시 한 번 그 대결 구도가 드러났다. ‘성차별적인 행사’라는 목소리와 ‘메갈이 선두에 서는 행사’라는 서로 상반된 목소리가 뒤엉키며 축제를 보이콧하겠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이렇듯 안팎에서 갈등을 겪으며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축제냐’라는 질문 속에서 열린 이번 축제, 그 현장에서 발견한 장면들에서 답을 찾아보자.


▶ 7월 14일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 당일 서울시청광장에 전시된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 ⓒ일다(박주연)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에 담긴 희망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엔 서울퀴어퍼레이드와 한국퀴어영화제 외에도 특별한 문화 행사가 하나 더 열렸다.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Amsterdam Rainbow Dress)의 서울광장 전시와, 이 드레스를 만든 작가와 국내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라운드테이블 <프리즘 오브 아트>다.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는 네덜란드의 예술가 4인이 암스테르담 역사박물관과 네덜란드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COC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전세계 국가 중 약 3분의 1인 75개 국가가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그 나라의 국기를 이용해 만들었다. 해당 국기는 처벌 법안이 없어질 경우 레인보우기로 변경된다.


지금 이 드레스는 전체가 레인보우기로 변경되는 날을 꿈꾸며, 세계를 돌며 전시를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 미국, 그리스 등의 주요 장소에서 드레스 전시 및 촬영을 했고,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주한네덜란드대사관의 후원으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전시를 하게 되었다.


라운드테이블 <프리즘 오브 아트>에서는 암스테르담 드레스를 제작한 아르나우트 판 크림펀(Arnout van Krimpen) 작가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전나환 작가, 옥인 콜렉티브 작가팀, 수낫수 퀴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참여하여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진 않지만 동성애자 군인을 처벌할 수 있는 군형법 제92조6가 존재하며, 퀴어문화축제 반대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한 것처럼 퀴어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한국 사회에서 이 드레스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작가도 “어떤 반응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 7월 13일 저녁 7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별관에서 진행된 <프리즘 오브 아트>행사.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 재단의 아르나우트 판 크림펀(Arnout van Krimpen) 작가 발표 모습. ⓒ일다(박주연)


안타깝게도 아직 드레스에 포함된 국기가 있는 나라에서의 전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작가는 “스리랑카 퀴어 커뮤니티로부터 한번 제안이 있었지만, 이 드레스가 전시된 이후 그 커뮤니티가 감당해야 할 백래시가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에 고사했다”고 말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더 알리고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겠다는 욕심보다도, 이 드레스를 제작한 의미와 현지의 사람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9일(월) 참여연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개최 기자회견>에서도 볼 수 있었다. “왜 아직 한국에서는 유명 가수 등의 아티스트가 축제 무대에 서지 않는가?”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한채윤 퍼레이드 기획단장은 “지금 상황에서 어느 스타가 무대에 오를 경우,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쏟아질 비난이 예상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그 짐을 지게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와 함께하는 앨라이의 다양성


퀴어문화축제는 ‘퀴어들’의 축제인 건 맞지만 ‘퀴어만’의 축제인 건 아니다.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많은 연대체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채우는 날이기도 하다. 다양한 연대체들이 축제에 함께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올해 105개 부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인 약 30여개의 부스가 참여했던 때부터 한국여성민우회, 언니네트워크 등의 여성운동단체들이 함께했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나 로뎀나무그늘교회 등 기독교단체도 참여해왔다.


▶ 7월 14일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일다(박주연)


이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나 모임 뿐 아니라 대학성소수자 동아리, 다양한 영역의 인권단체들, 해외 대사관,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노들장애인야학/3대적폐공동행동’(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의과대학학생협회 인권국, 전교조 여성위원회, 불량언니작업장X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등 다양한 단체 부스가 눈에 띄었다.


퀴어문화축제에 이렇게 다양한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뭘까? 단 50명으로 시작했던 축제가 19년 만에 약 10만 명이 모이는 행사로 커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단체 활동을 홍보하기 좋아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퀴어문화축제 참여자들은 왜 그렇게 급격하게 늘어났는지 물음이 또 따라온다.


퀴어퍼레이드는 거리를 행진하며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사자들이 참여한다’는 인식이 많다. 그건 한편으로 이 축제에 참여하면 ‘퀴어로 아웃팅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져 참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퀴어 당사자가 아닌 단체들에서도 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앨라이(ALLY: 종교 인종 정체성 등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임)로 참여하는 이들도 늘면서 그런 우려는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모임과 단체의 참여가 더 많은 개인 참여자들을 끌어낸 것이다.


퍼레이드 당일, ‘Refugee Pride’(난민 프라이드), ‘무지개와 함께 민주노총’이라는 글자가 적힌 일회용 타투를 얼굴에 붙이고 다니는 참가자들에게서 ‘퀴어로 보이는 게 두렵다’거나 혹은 ‘나는 앨라이인데 퀴어로 보일까 봐 부담스럽다’는 표정은 발견할 수 없었다. 땡볕 아래 줄을 서가면서 무언가를 쓰고 붙이고 사진을 찍고 후원금을 내는 참가자들의 즐거운 얼굴엔 ‘여기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당사자와 연대자의 모습이 함께 있었다. 이 둘을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 7월 14일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성교육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부스. ⓒ일다(박주연)


퀴어커뮤니티 내 갈등 ‘언어를 찾는 과정 아닐까요?’


지난 몇 년 간 퀴어문화축제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졌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페미니즘 논의가 여남 대결 구도로 틀어지기도 했다. 내부 성폭력 사건들이 폭로되면서 어떤 성적 지향 혹은 성정체성 그룹들이 서로를 비판하는 일들도 생겼다. 때로는 그 비판이 과열되며 문제가 된 행동을 한 개인이 아닌, 개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연대를 하는 앨라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퀴어 커뮤니티 내부의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누가 더 약자이고, 누가 하는 게 더 혐오인지’ 물음을 반복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vs 퀴어’라는 이상한 구도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7월 15일(일) 택토리2에서 전나환 작가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 함께 기획하고 작업한 전시를 공개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 자리는 의미가 있었다.


전나환 작가는 2016년 커밍아웃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번 작업을 위해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자신도 게이라는 성소수자지만 청소년은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고 있는 상황이나 환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 기획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고 말하며 “작가로서는 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작가는 여러 기획을 고심하다 <띵동>의 청소년 성소수자 10명과 함께 ‘퀴퍼에 메고 갈 에코백 만들기’를 진행한 후, 그 에코백을 든 청소년들을 촬영했다. 또 그 촬영본을 바탕으로 그림 작업을 했고, 이번 전시에서 그 작품들을 공개했다.


“완전히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드러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옆모습을 그렸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참여한 이들이 다 자기를 알아봤다고 해서 성공이구나 싶었다.”


▶ 전나환 작가의 그림 ‘큐’(한국 청소년 퀴어 그룹1) ⓒ일다(박주연)


작품에 대한 욕망과 타인의 현실을 조율한 작가의 배려 속에서 탄생한 작품 속 인물들은 옆모습임에도 정면을 정확히 바라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작가가 자신과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도 있는 존재에 대해 알아가고 고민하며 찾은 타협점이 이 작품의 의미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 던지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와 관련된 토크를 진행한 남웅 평론가는 요즘 퀴어와 페미니스트, 여성퀴어와 남성퀴어 등으로 대립되는 구도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게이작가의 작업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퀴어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게이문화’로만 치부될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지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어떻게든 서로가 대화할 수 있는 언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게이문화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이든 누구든 간에 서로 더 많이 만나야 되는 것 같고, 타인과의 접촉이 정말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만남의 과정에서 언어가 부딪히는 지점들을 이런 전시나 예술로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그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무지개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레인보우’가 아닌 다양한 깃발들이다. 트렌스젠더, 젠더퀴어, 에이섹슈얼, 바이섹슈얼 등을 상징하는 깃발이 레인보우에 묻히지 않고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정말 무지개 같았다.


퀴어문화축제나 ‘퀴어’를 둘러싼 목소리들이 다양해지는 건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다. 앞으로 확장하며 나아가는 부분이 있는 반면, 예상치도 못했던 구멍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거다.


내년 2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퀴어든 앨라이든 누구든 간에 무지개 깃발을 들었을 때의 의미와, 그 무지개가 누구와 무엇과 함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직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서로의 존재를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이 장이 더욱 가치를 지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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