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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아파트가 들어서는 자리


▶ 지도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일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은 4차선 도로. 이 도로를 기준으로 A동과 B동이 나뉜다. A동과 B동엔 2-3층짜리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4차선 도로 끝 B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마냥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 동네엔 몇 년 사이 여러 변화가 있었다. 2차선 도로가 4차선이 되고, 인접한 개천에 아치형 장식물이 달린 다리도 새로 지어졌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지금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A동이 재개발을 하네 마네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재개발 우리는 죽어도 반대한다.”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집집마다 걸려있다. 보상 금액이 20년 전 물가라던가.


5년 전,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로 주변 건물 몇 채가 헐렸다. 그 중엔 30년 넘게 떡볶이를 팔던 할머니의 분식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500원, 1000원에 떡볶이를 마구 퍼주기로 유명했던 분식집이었다. 건물이 철거되면서 다른 곳으로 터를 옮길까 했지만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할머니는 장사를 그만두게 됐다. 소식을 접한 (할머니 떡볶이를 먹고 자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시작했고, 다행히 바로 옆 조그마한 건물에 새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가게는 B동. 할머니가 사는 집은 A동. A동의 재개발 소식을 듣고 할머니 생각이 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20년 전 물가로 보상을 해주거나 말거나, 어차피 세입자 입장에서 재개발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낙후된 지역이긴 해도 평지에 버스도 많이 다니고 시내도 가까워 살만한 동네였다. 같은 세를 내고 살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후미진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할 게 뻔하다. 아니면 더 많은 세를 지불하고 비슷한 조건의 거주지를 찾거나. 재개발을 반기는 사람들은 당장의 재개발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거나 더 보탬이 되는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일테다.


날마다 길을 지나며 A동 현수막 내용을 꼼꼼히 읽고 있다. 남일 같지 않다. 땅따먹기 하듯 야금야금 재개발 구역이 넓어지고 있다. A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음으로 B동이 재개발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집주인의 배려 덕분에 13년간 같은 월세를 내며 살아왔다. 이 금액으로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어차피 아파트가 들어선다 한들 입주는 우리 집 형편엔 꿈도 못 꿀 일이다. 목이 좋은 땅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꾸만 지도 밖으로 밀려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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