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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 시트콤협동조합!

여성 ‘헤드스탭’들이 만드는 콘텐츠는 달라



어떤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 속 여자주인공인 수지가 일하는 직장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그들이 제작하는 드라마의 서브남주(서브 남자주인공) 배우가 음주운전이 발각돼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것. 권력구조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인기 작가이자 주인공의 상사인 임작가는 “그 새끼를 (드라마 초반에) 죽였어야 했는데.” 라고 외치며 머리를 뜯고 있다. 잡일을 하고 메모를 해야 하는, ‘막내’라 불리는 작가와 연출자, 보조출연자까지 모두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혼돈의 상황을 지켜보던 수지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쓰는 드라마 시리즈의 제목에 나오는 전설의 유니콘 같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의 노동조합이라고 말이다. 그 순간, 반대편에 앉아있던 김피디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정말 필요한 건 어쩌면 전설 속 유니콘이 아니라 현실의… 유니온!’ 

‘현.실.의.노.동.조.합!’ 

‘설마 지금 제 목소리가 들려요?’

‘들려요!’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떨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애절한 러브송의 발라드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1화 이야기가 끝난다. 대중미디어라고 하는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을 수 없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단어를 대담하게 1화부터 꺼내는, 그리고 떨리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는 작가와 피디 모두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 콘텐츠는 웹시트콤 <그새끼를죽였어야했는데>(이하, 그새죽)이다.


▶ <그새죽> 1화 장면 중 김피디와 수지 작가의 눈 마주침 ⓒ출처: 시트콤협동조합


그리고 이 작품은 대중미디어에서 잘 볼 수 없는 또다른 특징이 있다. <그새죽>을 만든 감독, 작가, 촬영감독, 편집기사를 비롯한 많은 스텝들이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흔하지 않은 소재, 대담한 극 전개, 적절하게 배치된 캐릭터의 구성.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남성 중심적으로 알려져 있는 영화/드라마 제작 업계에서 여성스탭들이 주요 역할을 수행하며 만든 작품이라니,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이경민 감독, 송현주 작가와 만남을 가졌다.


유니콘 같은 존재들이 만든 콘텐츠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싶어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그들이 비지니스적인(?!) 관계임이 밝혀졌다. 그들은 이 작품 이전에는 서로 작업을 하거나 한 일은 없었다. <은하해방전선>(2007), <도약선생>(2011) 등의 영화를 만들고 최근 몇 년 간 <대세는 백합>(2015), <출출한 여자>(2016), <게임회사 여직원들>(2016) 등의 웹콘텐츠를 제작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윤성호 감독과 일을 호흡을 맞춰왔지만, 두 사람이 같이 일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늘 기회와 만남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는 것처럼,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을 홍보할 콘텐츠 제작을 윤성호 감독 측에 의뢰했고 두 사람이 만나는 팀이 꾸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팀엔 신기하게도 여성스탭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영화/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정말 ‘유니콘’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 ‘여성 헤드스탭’들이 있었다.


▶ 인터뷰 중인 이경민 감독(왼쪽)과 송현주 작가(오른쪽) ⓒ일다(박주연)


이렇게 여성스탭들의 비율이 높은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현장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라 비교 대상을 딱 정하긴 어렵다면서, 이경민 감독은 “만족스러웠어요. 현장에 여자가 있으면 별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여자 스탭들을 꺼리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더라구요” 라고 말했다.


송현주 작가는 남성스탭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며,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남성들이 많은 현장도 가봤는데 보통 여성스탭이 없다고 하는 촬영, 조명팀에도 여성들이 있긴 해요. 다만 헤드스탭인 경우가 별로 없죠.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었어요. 근데 보니까 남자들은 기혼자라고 해도 집에 가야 된다는 압박감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구요. 집에 안 가고 밤 9시에 회의를 잡고 막(웃음). 세트 촬영하면 몇 주간 지방에 내려가는 일도 있거든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가 있으면 이런 세트 촬영 참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남성들은 별로 그런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여성스탭의 비율도 높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6명의 캐릭터 중 4명이 여성이다. 여성캐릭터 기근 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캐릭터를 내세우는 작품이 드문 최근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관련 기사: 2017년 여성영화인들의 안부를 묻다 http://ildaro.com/8077) 이런 캐릭터 구성이 특별해선 안 되지만, 특별해 보였다.


“각본을 쓰면서 캐스팅을 동시를 하고 있었는데 캐스팅 하고 싶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여성배우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성캐릭터가 많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사실 김피디 역할을 처음에는 남성배우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더라구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없잖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 김예은 배우가 그 캐릭터를 하게 되었죠. 수지 캐릭터와 케미가 너무 좋았어요.” (송현주 작가)


▶ 시트콤협동조합 트위터 중에서


<그새죽>에 있는 것과 없는 것


<그새죽>에는 ‘노동조합’, ‘퀴어 코드’라는 드문 소재가 나오는 반면, 여성캐릭터들이 다수로 등장하면 쉽게 넣는 스토리인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는 볼 수 없다. 보통 드라마에선 권력구조 상 상위에 위치한 임작가 캐릭터가 ‘나쁜 년’으로 그려지고 그 하위에 위치한 중간작가, 보조작가를 괴롭히면서 대립 구도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새죽>의 인물들은 어쩔 수 없는 권력구조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누구도 악하지 않다.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권력구조의 문제를 어떤 한 인물에게 뒤집어 씌우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 대답은 굉장히 심플했다.


송현주 작가: “제가 아마 주변에서 본 사람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크게 권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엔 보통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거랑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히려 전 (제가 경험한)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어요.”


이경민 감독: “어떤 캐릭터를 악역이라고 설정하지 않고 그 캐릭터들이 놓여있는 권력관계, 갑을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을 했어요. 그 관계라는 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새죽>에는 정말 재미있는 남성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새죽>의 유행어라고 할 수 있는 “벽준아, 메모해”의 벽준이다. 눈치라고는 1도 없고 백치미가 돋보이는 이 캐릭터를 보면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2016, 폴 페이그 감독)에서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가 ‘케빈’이 떠올랐다. 그동안 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에게 부여했던 백치 캐릭터를 미러링한 ‘케빈’ 말이다.


아직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그런 남성캐릭터를 넣은 <그새죽> 제작진의 기발함과 대담함에 경의를 표하며 ‘벽준’ 캐릭터가 혹시 ‘케빈’의 영향을 받은 건지 물어봤다.


송현주 작가: 그러고 보니까 (제작 단계에서 고스트버스터즈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저도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그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벽준’ 같은 남성캐릭터를 이야기 속에 집어넣는 게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왜 이 남자는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하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를 만든 거죠.


▶ <그새죽>의 등장인물들 ⓒ출처: 시트콤협동조합


제2, 제3의 <그새죽>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려면


이렇게 재미있는 콘텐츠를 우린 왜 더 많이 볼 수 없는 걸까? <그새죽>의 경우에는 “상업적인 용도의 콘텐츠가 아니고 투자사의 입김이나 압박이 없었기 때문에 또 ‘노동조합’을 다루는 만큼 오히려 제작 환경에도 조금 더 신경 쓰면서 자유롭게 스탭과 스토리를 구상할 수 있었다”고 감독과 작가는 이야기했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제작을 의뢰받고 제작비를 받아서 제작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결국 제작비를 협찬이나 투자에 의존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 제작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현주 작가는 “제가 예전에 쓴 글들을 한번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들이 다 남성인 거에요.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또 그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여성 캐릭터를 자꾸 쓰고 있는 거죠. 그 자각을 하면서 그런 글쓰기를 그만두고 여성캐릭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게 사실 오래되진 않았어요.”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성작가가 쓰는데도 왜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나 입체감 있는 여성캐릭터가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다수의 기호’라고 하는 논리 속에서 설명되곤 한다. 정말 ‘다수’라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기존에 없었거나 조금 다른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제작 시스템과 구조에 물음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그들은 공통적으로 ‘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여성들의 인생이 너무 많은데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런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그새죽>과 이경민 감독, 송현주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더 많은 여성들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간격을 맞춰 같이 달릴 수 있는 더 많은 동료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웹시트콤 <그새끼를죽였어야했는데> 1화 보기 http://bit.ly/2FPAi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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