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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저는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8.02.24 08:30

“저는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어요”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 두 번째 이야기


※ ‘줌마네’에서 지난해 9월 <인간적으로 돈버는 힘 기르기: 나를 구성해 온 일들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캠프를 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그래서 가시화되지 못한 여자들의 일 경험에 이름을 붙이고 당사자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한 자리였다. 그 1박2일간의 이야기를 참가자였던 오보의 시선으로 담아낸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서른 살의 한 여자가 이력서에는 담을 수 없었던, 지난 시간들 속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 “줌마네 캠프 2017: 인간적으로 돈 버는 힘 기르기.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 참가자들 ⓒ줌마네


밀담들


우리는 이전보다 더 가까이, 큰 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진행자 오솔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춘천으로 2년 정도 내려가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중요한 시기였어요. 모든 일들을 접고 잠시 멈추었던 그 시간들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 시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임금 노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증명서로 발급받을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경험들은 ‘일’이 아닌 걸까요? 지금부턴 사회가 만든 기준을 떠나 나에게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일들, 그 시간과 경험들을 불러낼 거예요.”


작은 도시락가게를 운영하는 씩씩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행복했던 일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봤는데 다섯 개 이상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나마도 가장 최근이 8년 전이고요. 기억 저편에 있던 그동안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던 일들인데, 그 중 하나는 ‘차OO의 마른 팬티’예요. 제가 20대 때 중증장애 아이들 시설에서 일했어요. 아이들이 보통 야뇨증이 있는데 그걸 고치려고 교사들이 매일 시간단위로 훈련을 시켜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맡았던 친구가 드디어 아침에 마른팬티로 일어난 거죠! 그 경험이 제가 거기서 3년을 견딜 수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찬찬히 자신의 기억을 불러냈다. 장애아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었던 일.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한 달을 온전히 함께했던 시간들까지. 그는 이런 일들에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순하지만 자신이 할 도리를 다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이 이야기를 이었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고, 거기에 해석들을 붙이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이런 일들이 늘, 굉장히 좋았어요. 오타쿠적으로 빠져서 이틀 동안 밥도 안 먹고 하나의 인터뷰만 생각한 적도 있었죠. 완전히 몰두하면서 굉장한 행복을 맛봤던 거 같아요. 근데 졸업을 해서도 그런 일을 계속 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모든 게 숫자로 환원되는 세상을 비판하려고 공부를 한 건데, 최근의 학계는 숫자의 그 차가움과 봉건적인 것이 같이 있는 세상이거든요.”


이야기는 계속됐다. 배우 겨울은 생계를 위해 마트 시식 알바, 주차장 도우미, 연기학원 선생님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영화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간 초연은 청소, 바텐더, 주방보조 등을 하며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버텼다고 한다. 모두 버티고 사는구나 생각했다. 난 두 달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회사가 있는데.


▶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경험을 불러오는 시간. 참가자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줌마네


“전 가난한 집 셋째 딸이에요. 낳지 말았어야할 딸이었던 거죠. 그래서 은연중에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했던 같아요. 어렸을 때는 그게 학업 성적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꼭 일하듯이 했던 것 같아요. 없어도 되는 셋째 딸이 아니라 누구 집 공부 잘하는 딸, 이렇게 불리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여행기획자 나윤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 갑자기 상사의 권위를 살려주지 않고 ‘일을 너무 잘 한다’는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은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그동안 일 해왔던 방식과 시간, 비전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졌어요. 정신을 놓을 만큼 상처를 받았죠. 그 일을 기점으로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자기 착취에 가까울 정도로 계속 일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너무 잘해서도, 잘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게 ‘일’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는 저 정도로 열심히 일한 적이 있었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나를 자책했다. 역시, 나빼고 다들 열심히 산 것 같다.


외야석에서


그때 한쪽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일단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어요. 외야석의 아웃사이더였거든요.”


뭐지 저 사람? 고개를 돌려보니 루후나가 막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취업도 진학도 별 의지가 없었고. 절박함이랄까 그런 게 없었어요. 제가 왜 외야석의 아웃사이더냐면, 야구장은 관중들도 홈팀을 응원하면 1루 쪽, 원정팀을 응원하면 3루 쪽에 앉아요.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 앉는 곳이 외야석. 외야석엔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데이트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놀러온 커플들, 대낮부터 거하게 취한 아저씨, 무슨 계룡산 도인 같은 할아버지도 계셨죠. 저는 ‘아무래도 외야석이 내 자리인 것 같아’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게 자신의 천성이고 존재 자체가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뛰는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루후나를 보며 당황스럽기도, 한편 부럽기도 했다.


나는 이력서를 쓸 때도,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할 때도 어떻게 하면 과거의 빈 시간들을 채워 넣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다들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괴로웠고 무엇이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열심히 산 척 해야만 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았다니, 외야석이라니. 당장이라도 손을 들어 “저두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야기는 자정을 넘겨서야 마무리가 됐다. 여운이 남은 사람들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이부자리를 펴고 아찔한 찬물로 샤워를 한 후, 덜 마른 머리칼을 베개 위로 펼치고 누웠다. 살짝 젖혀진 쪽문 틈으로 소똥 냄새가 솔솔 들어왔다. 밀담들 속에 일었던 생각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필자 소개] 오보: 간간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지역신문 모니터링, 스크립트 알바, 라디오 방송녹음, 다큐멘터리 연출부, 영상회사 편집부 등의 일을 해온 구직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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