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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보수의 반격이 시작됐다?!

수잔 팔루디의 <백래시>로 들여다 본 반격의 유형



저널리스트 수잔 팔루디가 약 30년 전인 1991년에 발간한 책 <백래시>(backlash, 국내에선 2017년 아르테에서 번역서 출간)는 미국에서 1980년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원인과 흐름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백래시는 사회 변화나 정치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와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다. 주로 성적,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제로 작용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2세대(2nd wave) 페미니즘 운동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장에 나가있던 남성들의 자리를 메운 많은 여성들이 전쟁 후 일자리를 잃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한 배경 하에,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전통적 여성성을 강요받는 여성들의 고통을 다룬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성 신화>(The Feminine Mystique, 1963)가 발간되었고, 1966년에는 전미여성동맹 NOW(The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가 발족됐다. 페미니즘은 많은 여성에게 영감을 주었고, 여성들은 사회 변화를 촉구했다.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로 1972년 성별(sex)과 상관없이 평등권은 사회 그 어떤 곳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남녀평등 헌법수정안(The Equal Rights Amendment, ERA)이 의회를 통과했다. 또 1973년에는 대법원이 유명한 ‘로우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 판결로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다.


▶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을 분석한 수잔 팔루디의 <백래시>(backlash, 아르테, 2017) 표지 이미지

 

하지만 세상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성과를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성들이 열심히 쌓아 올린 성을 무너뜨리고자 공격을 시작했다. 아내가 가정에서 헌신적으로 자신을 보필해야 한다고 믿는 남편들, 일자리를 여성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남성노동자들,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게 그냥 싫었던 남성들… 이들은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이 줄어들고 여성들이 가정보다 일을 선호하는 것 등을 위기로 보며, 페미니즘이 우리 여성들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통적 가족 안에서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 역할을 요구하며 여성을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위치에 두고 싶어 하는 뉴라이트(신 보수주의) 진영의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정말 페미니즘이 세상을 망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 기반을 둔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정계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이 나라의 시계를 1954년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다’(362p)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뉴라이트는 왜 백래시에 집중했는가?


뉴라이트는 페미니즘이 ‘도덕적 가치보다 물질주의를 더 드높이는 죄(여성들을 탐욕스럽게 만드는 것)와 전통적인 가족 지원 시스템을 뒤흔드는 죄를 저질렀다’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최초의 집단이기도 했다.(363p)


이들이 이렇게 열을 올린 이유는 다름 아닌, 기독교 신도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복음주의 교회 신도들이 꾸준히 교외와 도시로 이주해 가고, 젊은 세대는 종교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TV 설교의 시청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363p) 그리고 많은 여성 신도들에 의지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설교사들은 여성 신도들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점점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을 페미니즘 탓으로 여겼다.(366p) 그들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수잔 팔루디에 의하면, 반격의 움직임에는 매번 희생양이 있었다. 미국보호협회에게는 천주교 신자들이 그런 조건에 부합했고, 코울린 목사의 ‘사회정의’ 운동엔 유대인들이 그러했으며, 당연히 KKK단에게는 흑인들이 그랬다. 그리고 뉴라이트에게 주적은 페미니스트 여성이었다.(364p) 그리고 핵심적인 뉴라이트 집단이, 의회가 남녀평등 헌법수정안을 승인하고 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후 2년 내에 활동을 개시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지적한다.


뉴라이트는 쉴새 없이 공격을 몰아쳤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상을 상징하는 법안을 만들고자 했다. 가족보호법(Family Protection Act)이라고 불린 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녀평등 교육의 근간이 되는 연방법을 없애고, 모든 스포츠나 여타 학교 관련 활동에서 남녀가 섞이는 것을 금지하고, 결혼과 모성이 여학생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구타당한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하는 모든 연방법을 폐지하고, 낙태에 대한 조언이나 이혼을 원하는 모든 여성에게 연방의 자금으로 법적 원조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것’ 등.(370p)


그들은 교묘한 언어 전략 또한 펼쳤다.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생명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를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373p)


그들이 전미가족친화동맹(National Pro-Family Coalition),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모임(Concerned Women for America)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가족보호법’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보수 기독교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요즘 한국 보수 기독교 세력이 하는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 이슈에 열을 올리던 그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도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선생님에 대해 항의하고, 성평등(Gender Equality)을 대신해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낙태죄 폐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렇다.


▶ EBS 까칠남녀 게시판 중. 프로그램 초기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현재 게시글은 1만 개를 넘고 있다.


E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까칠남녀’ 폐방 요청 시위도 그러한 움직임 중 하나다. ‘까칠남녀’는 다양한 젠더 불평등과 페미니즘 이슈를 방송에서 다루었는데, 방송 시작부터 일부 사람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왔다. ‘신성한’ 학교에서 ‘문란한’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비판 받았던 페미니스트 선생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선생님은 페미니스트’ 편에 이어 작년 크리스마스와 신년 특집으로 ‘성소수자’ 편을 방영한 뒤로는 더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EBS 앞에서 아이들을 해치는 방송이라고 주장하며 ‘동성애 옹호가 웬 말이냐, 페미니즘 확산하는 까칠남녀 폐방하라, 남성혐오 주입하는 까칠남녀 폐방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결국 14일, EBS가 ‘까칠남녀’ 패널 중 섹스 칼럼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 온 은하선 작가를 하차시키기로 결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은하선 작가는 ‘자위 편’에서 매일 자위를 한다고 한 발언과, 바이섹슈얼로 커밍아웃했으며 성소수자 특집 편에서 성소수자 패널로 나왔다는 이유로 시위대가 하차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기독교계 사립대학인 한동대학교는 최근 교내 동아리가 주최한 ‘성매매를 노동을 볼 것인가’ 주제의 페미니즘 강연을 이유로, 주최 측 학생들과 관련 교수에 대한 징계를 논의 중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향신문 1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해당 동아리의 지도교수로 지목을 받은 교수는 교원인사위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다음날 재임용 거부 통지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한법 개정 논의를 진행해 온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이 일부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세종리더십 개발원 원장 김은경 위원에 말에, 보수 성향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 김정수 위원이 이렇게 답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세력이라고 했는데요,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이 천만입니다. 인구의 4분의 1이 성평등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2017년 10월 20일 자문위원회 전체회의 5차 회의록) 자신들의 세력이 특정 종교 전체를 아우르는 것처럼 과장하며 규모를 앞세워 압력을 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의 한국인의 종교생활 설문조사 결과. 2012년에 비해 2017년 종교인(기독교, 불교, 천주교) 비율이 줄었고 기독교인 비율 또한 줄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일다


그런 그들에게 위기가 오고 있다. 작년 12월 27일,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가 한국인의 종교생활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발표에 따르면,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말한 비율이 2012년 22.5%에서 2017년엔 20.3%로 떨어졌다. 교회 출석률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보수 기독교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적 혹은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한다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문이 풀릴 법도 하다.


EBS 앞에서 항의 시위를 주최한 학부모 단체 공동대표는 “소수자는 보호해야 한다. 다문화가정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그렇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옛날에 변태라고 부르던 사람들이다”(스포츠경향 1월 10일자 보도)라고 말했다 한다. 수잔 팔루디에 따르면, 크리스천보이스에서 발행한 문헌에서 페미니스트는 ‘도덕적 변태’이자 ‘모든 품위 있는 사회의 적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365p) 보수 기독교 세력이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평등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는지 알 수 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이 성소수자에 대해 적극적 반대, 불허 등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퀴어문화축제의 참가 인원이 만 명 이상이 되고 홍대, 신촌을 거쳐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퍼레이드 장소로 이용하면서였다.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가시화를 하면 할수록 더 거세졌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그들의 항의 피켓에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목격하게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페미니즘으로 인한 변화가 눈에 띌수록, 여성들의 승리라 부를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우스꽝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만인의 평등을 선언하고 앞으로 나아갈 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양성평등’과 혼용하겠다고 한 결정이나, EBS의 은하선 작가 하차 사태처럼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백래시의 증거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지금이 페미니즘 운동을 더 견고히 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잔 팔루디가 말했듯이 이것은 지난 운동의 성과로부터 오는 결과이다. 책 <백래시>에는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혐오와 차별의 벽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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