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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젠더 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콘텐츠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7.12.05 08:30

젠더폭력의 아픔을 ‘같이’ 극복하는 방법

<페미니즘과 논다>⑤ 넷플릭스에서 페미니즘 발견하기 Ⅱ



‘여성 이슈’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성범죄를 포함한 젠더폭력이다. 여성운동은 오랜 시간 젠더폭력에 저항해왔지만, 그럼에도 가장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젠더폭력을 근절하자’는 말이나 캠페인 혹은 강력한 처벌 정책으로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과 관념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치, 사회, 경제와 복잡하게 엮인 고리들을 하나하나 풀면서 끊어야 한다.

 

매일 젠더폭력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종종 이 분노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에 품고 있다가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 그걸 발견하고 위로를 받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내기가 아직 어렵다면, 먼저 스크린 앞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스크린 너머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들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그리고 폭력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소개한다.

 

▶ <오드리 & 데이지>(Audrie & Daisy) 배너 이미지 

 

다큐멘터리 <오드리 & 데이지>(Audrie & Daisy, 보니 코헨, 존 셍크 감독, 2016)

 

성폭행을 겪은 10대 여성 오드리와 데이지 그리고 또 다른 1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이미지가 얼마나 10대 여성들 그리고 10대 남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성범죄와 연결되는지 발견하게 된다.

 

다큐에서 조명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오드리의 일화에서, 오드리는 성폭행 피해 사실이 학교 전체에 퍼진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끝났어’ 라고 말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하고 공격받기 쉬운 대상인지 알고 있고, 그걸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데이지는, 성폭행 이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다 겪는다. 동네 사람 누구나 서로를 알고 엮여있는 마을이었던 탓에, ‘문란한 여자애 하나 때문에 동네 망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은 다 풀려났다. 사건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비난은 데이지에게로 더 쏟아졌다.

 

정말 끔찍한 건, 사건을 담당했던 보안관의 인터뷰다. “이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소년들이 항상 비난을 받는다는 거에요.” 사건 담당자조차 데이지 때문에 애먼 소년들이 사건에 연루되고 범죄자로 비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망가지고 상처 입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직접 만나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대중 앞에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터뷰를 한다.

 

“아무도 제 이야기를 안 하면,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I decided that, if no one is gonna talk about it, then I will.)

 

성범죄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떤 감정의 프로세스를 거치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ㅎㅎ’라는 메시지를 성폭행 피해자가 절대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들어보길 권한다.

 

▶ <오드리 & 데이지>(Audrie & Daisy) 무비 트레일러 중에서 

 

다큐멘터리 <아이 엠 제인 도>(I’m Jane Doe, 메리 마지오 감독, 2017)

 

‘제인 도’(Jane Doe)라는 건 어떤 범죄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신원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여성을 칭하는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인 도’로 남기를 원하는, 미국의 온라인 성판매 피해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명이 나오진 않지만 다큐에서 얼굴을 드러낸 여성들은 모두 10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하거나 실종되었다가, 다양한 광고가 올라오는 백페이지(Backpage.com)에서 발견된다. 속옷만 입고 야한 포즈를 한 사진과 함께 올라온 성판매 광고 글에서 말이다.

 

가출한 10대 여성들은 포주들에게 늘 타깃이 된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유혹부터 시작해서, 집을 나온 어린 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말들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그 뒤로는 지옥의 시작이다. 포주들은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마약부터 투여한다. 마약에 중독된 여성들은 점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고, 돈은 다 포주에게 간다. 점점 벗어날 방법이 없어진다.

 

포주들은 ‘백페이지’라는 사이트를 공공연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오히려 현재 미국 법은 제3자가 사이트에 올린 글에 대해 사이트 운영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운영자를 보호해 주고 있다.(통신품위법 Communication Decency Act CDA 230조)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이트에 남아있는 피해여성들의 사진을 방관하고, 여성들-특히 미성년 여성들을 이용하고 성노예로 부려먹는 포주와 공조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백페이지’를 고소한다. 2010년 3월 첫 고소를 시작으로 CDA 230조로 인해 매번 벽에 부딪히면서도 피해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의회에 나가서 증언하고 의원들을 압박하기도 하고, 언론 앞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움직임으로 인해 의회에서도 ‘백페이지’ 운영 책임자들을 소환하고 조사에 나선다. 이 다큐가 제작 완료된 2017년까지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성범죄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고, 그것은 곧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인 도’의 이야기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끔찍한 공포 중 하나이다. 피해자 가족의 증언인, 이런 일이 평범한 가정의 나에게 일어날지 몰랐다는 말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다큐를 보는 내내 떠나질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나는 제인 도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묻혀 지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마블의 제시카 존스>(Marvel’s Jessica Jones) 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드라마 <마블의 제시카 존스>(Marvel’s Jessica Jones)

 

제시카 존스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차도 던질 수 있고 주먹으로 벽도 부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런데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킬그레이브라는 남성에게 지배당해 끔찍한 데이트 폭력을 겪는다. 킬그레이브는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카 존스는 킬그레이브에게 조정 당해 자신의 능력을 사람을 해치는데 쓴다. 그러다가 겨우 킬그레이브를 죽이고 탈출에 성공하는데…. 사실 그는 죽은 게 아니었다. 킬그레이브는 제시카 존스가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며 집요하게 스토킹한다.

 

제시카 존스는 자신의 능력을 펼쳐서 세상을 구하는 것 따위에 관심 없다. 자신이 행했던 범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혼자 고립되어 살아간다. 사립탐정으로 일하면서 직접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나 가끔 해결하면서 돈을 벌어 먹고 살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킬그레이브에게 조정 당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여성의 사건을 알게 되면서 상황이 변한다. 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제시카 존스는 그의 악행을 멈추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킬그레이브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제시카 존스는 젠더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또한 생존자이다. 제시카 존스의 영웅 이야기는, 기존에 많이 보았던-멋있는 액션을 하며 세상을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이야기는 그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다른 피해자들을 어떻게 돕는지, 가해자와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준다. 영웅은 신이 아니어도, 최신 기술로 무장된 수트가 아니어도, 뛰어난 무술 없이도 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 <투 더 본>(To the bone, 마티 녹스 감독, 2017)

 

‘이 영화는 실제로 섭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작했으며 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유의 바란다’는 안내문으로 시작하는 영화.

 

주인공 앨런(나중에 이름이 일라이로 바뀐다)은 섭식 장애로 인해 음식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로 죽기 직전이다. 많은 병원과 의사를 거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의사를 통해 재활 치료소에 들어간다. 가정 집을 활용해서 운영되고 있는 그 곳에서 일라이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일라이가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섭식 장애가 생겼는지에 대해 나오지 않지만, 계속해서 살을 빼야 한다고 집착하는 모습이 나온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젠더 폭력의 결과다. 아름다운 얼굴, 날씬하면서도 굴곡 있는 몸매를 어린 시절부터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여성이 되지 않으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고, 사랑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는 많은 여성들이 한 번씩 가지게 되는 공포다.

 

일라이는 몸무게가 더 줄어들면 자신의 몸이 정말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여동생이 ‘언니 그러다 죽으면 정말 죽여버릴 거야’ 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줄어든 몸무게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띤다.

 

이 영화는 사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깡마른 몸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 인해 섭식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트리거(trigger)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성들을 치료하는 남성 의사의 쿨하고 때론 거만한 모습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게다가 다큐에선 섭식 장애 여성들이 이 병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 ‘여성 이미지’의 압박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섭식 장애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더 가시화되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아가 이 영화에 대한 동의든 비판이든, 경험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Crazy ex-girlfriend) 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Crazy ex-girlfriend, 코미디 드라마)

 

현재 시즌3이 방영 중인 이 시리즈는 하버드와 예일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 잠시 사귄 전 남친을 쫓아 웨스트 코비나라는 작은 동네로 삶의 터전을 옮긴 레베카의 연애와 성장을 담은 뮤지컬 형식의 코미디이다.

 

레베카는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경력의 잘 나가는 여성이지만 엄마의 기대에 늘 미치지 못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연애에 서투르고 삶을 어떻게 지탱해야 할 지 늘 불안하다. 사람들이 보는 자신과 스스로가 보는 자신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약물에 기대보기도 하고, 나는 정말 괜찮은 여자야 라고 다독이며 나아가려고 하지만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된다.

 

사회는 유독 여성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 일하는 여성, 그리고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여성’에 대해서 말이다. 여성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성공한 여성들에게 과도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리고 이제는 주체성 있는 여성에 대한 기대치도 있다. 때로는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이 방관되기도 한다. ‘이제 돈 좀 번다면서 알아서 살 수 있는 거 아냐?’라고. 구태의연한 사회적 관습과 제도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레베카는 그런 사회에서 좌충우돌하며 살면서 친구들과 연대를 형성하며 나름의 방식대로 성장해 가려고 하는 우리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걸 ‘미친 짓’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그럼 어때? 당신이 날 ‘미친 전 여친’이라 불러도 나는 나대로 살아갈 거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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