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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도 퀴어문화축제를 즐기고 싶다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부당대우 겪은 청소년들의 실태


※ 필자 정욜님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장입니다. -편집자 주

 

‘첫’ 부산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오는 23일 토요일, 서울과 대구에 이어 부산에서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다. 올해 서울시청 광장에는 7만이 집결했고, 대구백화점 앞에 1천 명 넘는 시민들이 모인 것을 감안하면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는 해운대역 광장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해운대구청이 도로 점용 허가를 내지 않은 상황이라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구청 측은 행사가 겹쳐서 허가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전에 같은 행사가 열렸을 때 ‘자유한국당 대표의 토크콘서트’가 개최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겁한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수 기독교계의 항의 때문에 입장이 난처하다고 밝히는 게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서울과 대구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부산에서도 ‘2017, 레알러브시민축제’라는 이름으로 보수 기독교 신자들의 맞불집회도 예정되어 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보류하고 외면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지방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다.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정말 성소수자 혐오 선동의 패악질에 위축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10월에는 제주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내년에는 매달 각 지역에서 성소수자 자긍심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회를 살면서, 성소수자들에게 퀴어문화축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성소수자 단체들과 지지단체들이 마련한 부스 행사에 참여하고, 퀴어문화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퀴어문화축제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부스 모습.  ⓒ띵동 제공

 

축제에 참여했다고 욕설, 폭력 겪은 청소년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은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나서, 그 후유증과 관련한 상담을 몇 건 진행했다. 축제를 통해 만끽했던 자긍심은 축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부모님에게 발각되면서 산산조각 났고,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띵동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를 7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 간 진행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설문조사에는 총 257명이 참여했는데, 응답자의 평균 나이는 18세(2000년생)다. 그중 서울 또는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217명(84.4%) 가운데 약 45.5%(101명)가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실을 보호자가 알게 되었다고 답했고, 그 이후 36.3%(37명)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그런 년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너만 유독 그딴 식이냐,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커밍아웃할 생각 절대 하지 말라고, 너는 하면 끝이지만 부모한테 주는 상처는 엄청 크다 이러고… 성소수자 근처도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렇게 살지 마. 이건 죄악이야…”

“티내지 말라고, 동네 쪽팔려서 못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2017) 응답자들의 답변 중에서

 

보호자로부터 겪은 부당 대우에는 위 사례와 같은 폭언/협박(24명)이 가장 많았고, 휴대폰이 압수되거나 검사를 받는 등 사생활을 침해당한 경우(15명), 외출금지 등 이동의 제한(15명)을 받았다고 응답한 청소년들도 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구입한 물품이 압수(9명)되거나 심지어 아래 사례처럼 폭행(4명)을 당한 이도 있다.

 

“새벽 1시쯤 부모님께 퀴퍼 물품을 들키고, 핸드폰의 사진을 들켜서 다 뺏기고 불태우고 폰도 망가져서 혼자 고쳤습니다. 커튼고정 시키는 기다란 봉으로 10대 정도 허벅지를 맞아 피멍이 들고 식칼을 던지셔서 팔에 스쳐지나가 살짝 베였습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이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한 현실은 너무나 참담한 것이었다. 부모들이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더럽고’ ‘문란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교계의 선동과 보수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축제에 참여해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한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혐오세력의 선동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꿈꾸며

 

이처럼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후 부모님 등이 알게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축제에 참석하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 중에서 40명(15.6%)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제 가족은 호모포비아입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기가 매우 무섭고 또 다른 폭력을 당할까 무서웠습니다.”

“가고 싶었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주위 시선이 두려웠다.”

“혹시나 보수 기독교재단이랑 부딪힐까봐.”

“부모님이 그런 델 왜 가냐, 너 동성애자 아니잖아, 거기 게이들이 키스하는 곳 아니니, 못 간다며 반대하셨습니다.”

“엄마는 나한테 커밍아웃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아마 (축제에) 가서 뭘 샀다면 다 버려졌을 것이고, 갔다 왔다는 자체로도 심하게 혼났을 것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2017) 응답자들의 답변 중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부모님의 반대로,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아웃팅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선동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평소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선뜻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띵동은 고민이 많아졌다. 누구나 즐겁게 참여하고 ‘자긍심’을 표현할 수 있는 퀴어문화축제에 ‘두려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후 부당한 대우를 겪은 사례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당한 37명의 응답자 가운데 7명만이 띵동 등의 단체에 상담을 요청했다. 어쩌면 이러한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차별과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띵동은 이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더 안전하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할 수 있도록 <나를 지키는 안내서>(2018년 발간 예정)를 준비할 계획이다.

 


부산 퀴어문화축제에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참여할 것이다. 서울과 대구까지 오지 못했던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생애 첫 퀴어문화축제를 생각하며 기대와 망설임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축제에서 띵동은 대표 프로그램인 ‘띵동식당’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날 예정이다. 용기 내어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길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이들이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늘 함께할 것이다.

 

※ 「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에 참여해 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말하기 쉽지 않은 경험을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에 이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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