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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매 여성 비범죄화’ 이전에 필요한 것

[잇을의 젠더 프리즘] “성판매 여성…” 페이스북 삭제 사건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세상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 완전변태에 속해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지난 8월 5일,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가 삭제되어 버렸다. 그러자 페이스북 코리아의 삭제 조치에 항의하는 #성판매여성안녕들하십니까_페이지_검열에_반대합니다 해시태그가 만들어지고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8월 8일 밤 10시경, 내가 이 글을 쓰는 사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가 복구되었다. 다시 조용해지고 있는 이 사건을 굳이 이야기하고자 한다.


▶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첫 게시물


페이스북 코리아는 지난해부터 성차별 혐의로 질타 받아왔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고발한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페이지를 수차례 삭제했고, 작년 5월에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언을 게시하던 “강남역 10번 출구 자유발언대” 페이지를 ‘페이스북 정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했다(이후 해당 페이지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반면, 여성을 조롱하고 위협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김치녀” 페이지 등은 방치해왔다.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는 ‘성판매 여성’ 당사자가 익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페이지다. 한 대목을 보라. “저는 성산업이 아닌 곳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장 이 현실을 살아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불법인 존재로 낙인 찍혀 인간미만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페이지는 왜 페이스북 정책에 맞지 않았을까?

 

해당 페이지의 첫 번째 글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맺는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페이지 외에도 “모던바 근무자의 업무일지”, “성노동자 대나무숲”,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 등의 페이지는 모두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만들어졌다.

 

“저의 목소리를 가지려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묻는 해당 페이지 운영자의 호소를 보며 작년 10월의 일이 떠올랐다. 여성성소수자 떠들기 대회 “마이 젠더 쉐이크”(MY GENDER SHAKE)에서 한 트랜스젠더 성노동자가 연사로 무대에 섰다. 나는 ‘평가하지 않고’ 오직 벅찬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연사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를 어떻게 ‘꺼림칙하게’ 여기는지를 가감 없이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이 무엇을 보호하는 법규이기에 자기를 처벌하느냐고 질문했다.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닌 자기 경험에 기대어 커뮤니티 내부와 외부에 말하는 그 시간과 공간이 귀한 만큼 고마웠다.

 

질문을 가장한 비난이나 함구시키려는 개입을 받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광장’ 혹은 ‘무대’라는 방식일 것이다. 여성성소수자를 가시화하기 위한 무대 행사에서, 청중들은 ‘거의 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있는 조건에서’ 여성성소수자이자 성노동자이기도 한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실 정말 드문 일이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성노동자는 음란하거나 무기력한 한 장면으로, 비명과 신음으로만 존재하고, 이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과 관계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내게 닥치는 자극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상황을 내 언어로 규정하고, 발화의 장을 만들며, ‘성판매 여성’으로서 겪은 경험을 자신의 교차적 역사와 통합하고(그 역사에는 피해와 고통도 있다),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주체성이다. 그러나 들을 귀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말을 닫게 하는 압력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삭제에 대한 항의 성명 중에서

 

내가 모 여성단체에서 활동할 때 가장 마음에 걸린 장면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성폭력 주제의 토론회였는데 한 변호사가 ‘성매매 때문에 성폭력도 증가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후 한 성노동자가 의견을 개진하려 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변호사의 발언이 성노동자를 성폭력 문화의 복무자, 또는 사리분별을 잃은 피해자로 단정 짓는 측면이 있다는 걸 지적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발언권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은 경청되지 못했다.

 

‘성판매 여성 비범죄화’가 정부의 공약이 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성노동자의 발언권이 가로막히는 일은 적지 않을 것이다. 성매매처벌법을 개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집중되었던 논의 구도를 다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것(그리고 다양한 입장들이 양립할 수 없는 듯이 말하는 것) 이전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생존권과 연결된 문제인만큼 ‘성판매 여성 비범죄화’가 중요한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판매 여성’이라는 범주 바깥에서 여전히 ‘범죄화’되는 영역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컨대 노동 형태상 알선자이자 판매자에 해당하게 되는 경우(‘알선’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스스로가 알선자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어떻게 될까? 또는 ‘여성’이 아닌 성노동자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 채 ‘투명인간’으로 남게 되진 않을까? 정책의 변화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성판매 여성 비범죄화’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먼저 선입견을 걷어내고 제대로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벌되지 않는 것’은 단지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므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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