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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이~ 왜 웃지 않아?” 알바 성희롱 백태

[나의 알바노동기] 근로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것들


※ <일다>는 청년여성들의 가감없는 아르바이트 현장 경험을 기록합니다. “나의 알바노동기”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빵들과 같이 진열대에 오른 것 같았던 빵집 알바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된 알바 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에 전단지 몇 백 장을 아파트 수십 곳에 붙이던 눈물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후에는 다양한 곳에서 ‘알바’로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일을 꽤 잘해내서 항상 사장님이나 매니저와 친했고 승진 제의까지 많이 받았지만, 모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의 성,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처음 일했던 곳은 마포역 근처에 있는 한 빵집이었다. 낮에 가본 마포역은 빌딩 천지에 호텔도 있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는데, 저녁이 되니 뒷골목의 룸살롱들이 화려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내가 일하던 빵집이 있었다. 손님들이 빵을 가져오면 계산해주고 포장해주는 게 일의 전부일 줄 알았는데, 중요한 사실을 깜빡했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빵집에 간다는 것이다.

 

매일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왔다. 들어오자마자 반말은 기본이고 ‘아가씨들’, ‘언니’, ‘미스 김’ 호칭으로 시작하여 외모 품평, 인생 조언, 성희롱까지… 빵을 사러 와서 직원의 감정과 미소, 성희롱할 권리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쁜이~ 왜 웃질 않아~ 웃으면서 일해야지”, “몇 살이니, 어디 살아? 왜 이런데서 일해~ 공부해야지”, “아저씨가 일자리 소개시켜줄까?”, “여기서 제일 예쁜 애 나와 봐! 니 얼굴처럼 예쁜 케잌 하나 골라봐라” 등 마치 나또한 하나의 상품인 듯 대했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성희롱에 맞서기는 힘들었다. 막상 이런 말을 들으면 순간 멍해졌다가 몇 초 후에 의도를 파악한 후 기분이 상하지만, 이미 반응하기에는 시간이 지난 상태다. 만약 다시 그 손님을 불러서 항의를 한다면, 내 일자리는? 다음 달 생활비는? 일단 지금 당장 나를 때리면 어떡하지? 밖에 기다리고 있다가 퇴근할 때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간단히 무시하고 ‘저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사과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슬프게도 손님들에게 당한 성희롱은 신고도 할 수 없었다.

 

동료에게 당한 성희롱, 문제는 성별 권력이었다

 

▶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할 때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  ⓒ김하린


감정노동에 지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주방에서만 일할 수 있다는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했다. 나를 카운터에 배치시키면 고객에게 조금의 감정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니저들도 알았기 때문에, 대체로 그릴에서 요리만 할 수 있었다. 많이 바쁘고 몸이 힘들기는 하지만 감정노동 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으로부터 성희롱 당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에게 딱 맞는 알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님을 피하면 뭐하나. 같이 일하는 수많은 남성들이 있는데.

 

남자 직원들은 적은 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기들끼리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고 다른 여성 동료들을 비하하면서 남성들만의 견고한 연대체를 형성했다. ‘OO년 얼굴 기름통에 쳐 박고 싶다’, ‘팔뚝살 CG냐? 어떻게 그렇게 많아?’ ‘너가 화장을 해야 남자들이 환장하지’, ‘너처럼 마르기만 하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등. 폭언과 외모 비하, 성희롱 발언까지 전형적인 여성혐오 발언들을 아주 골고루 구사했다. 내가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면 ‘장난인데 왜 정색하냐’ 패턴까지, 클래식한 페미니즘 책에 나오는 전형적인 마초들 같았다.

 

빵집에서 일할 때는 손님들이 나를 구매할 수 있는 상품처럼 대했는데 여기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남성들은 여성을 구매하고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마음대로 평가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구매자와 알바노동자의 권력 차이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평소에도 여성혐오 발언을 많이 하는 사람이 동행했는데 그날도 역시나 시작부터 아무말 대잔치였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잌이지~ 이게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라니까? 여자는 딱 25살 넘어가면 갑자기 늙고 성격 이상해져~ 너네도 얼마 안 남았어.” 21세기에 책에서나 봤던 고전적인 혐오 발언을 직접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무슨 소리하는 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주위 여성들이 그 남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맞아. 여자는 25살 되면 꺾인다고 하잖아. 그래서 빨리 결혼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분노는 비참함으로 바뀌었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그것이 굉장히 쉽지 않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 동료들과 가진 술자리는 고전적인 여성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아무말 대잔치였다.

 

그날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남자는 취했다는 핑계로 나의 몸을 만지고 껴안았다. 사람이 넘쳐나는 홍대 거리에서, 일행들은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홍대 한복판에서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료에게 왜 제지하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동료는 ‘그냥 취해서 그런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했다. 다른 사람은 내게 ‘왜 단호하게 쳐내지 않았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요즘도 이따금씩 그때가 생각난다. 내가 정말 예민했었나?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했나, 내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했었더라면…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는다.

 

내가 정직원이었다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알바노동자였다. 알바노동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런 제도들은 번듯한 회사의 직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가해자는 가장 높은 퍼스트 매니저랑 친했고, 어떠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매니저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것 가지고 왜 직장에까지 끌어 오냐고 탓할 것만 같았다. 성희롱 예방 교육도 사인만 하고 끝났으므로, 나는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생활을 해내가야 했고, 바로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었으며, 지금까지의 능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아까워서 일을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떠나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상하고 정신도 피폐해져서 매일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버텼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지다가 어느 날은 내게 성희롱을 했던 가해자와 함께 일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 날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버티려고 했는데 그게 안됐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고, 나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는데, 왜 나만 힘든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어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 떠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퇴사할 때,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겨우 그런 일’ 가지고 그만 두냐고 했다. 내가 떠난 후에 가해자와 친했던 퍼스트 매니저는 ‘걔가 꼬셨겠지’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그 사건 이후로 능력을 키워가고 있던 일자리, 직장에서의 인연들, 건강 모두 잃었다. 내가 알아왔던 직장 내 성희롱은 ‘회사’같은 곳에서 ‘상사’가 그의 지위 권력을 바탕으로 성희롱을 행하는 형태였다. ‘알바’하는 곳에서 상사가 아닌 ‘같은 동료’에게 당할 줄은 몰랐다. 그는 나의 직장상사가 아니었지만 남성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지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젠더 권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알바노동자 간에도 젠더 권력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보호받지 못한 채, 지워지는 여성알바의 존재

 

죽여 버리고 싶었다가 죽어버리고 싶었다가 자책했다가 위로했다가 하는 상황들을 어찌어찌 넘기고, 무너졌던 나를 다시 세우면서 여러 알바를 거쳤다. 지금은 섹스토이샵에서 알바를 한다. 손님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면서 들어와서 생각보다 일하기 수월했는데 외국인들은 예외였다. 남자 관광객들이 지나가다가 ‘sex shop’이라는 간판을 보고 깔깔 웃으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열이면 열 성희롱을 한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자신감이 샘솟으면서 여성 직원을 희롱할 용기도 생기는지, 아니면 섹스토이샵에서 일한다고 모든 성적인 농담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돈을 내면 섹시 쇼를 보여 주냐’는 말도 안 되는 말부터, 간판에 섹스라고 뻔히 써져 있는데 아랫도리를 흔드는 제스처를 취하며 이 섹스를 말하는 거냐고 자기들끼리 깔깔 거리면서 묻는다. 심지어는 여기서 성매매를 할 수 있냐며, 안 된다면 가까운 업소가 어디인지 묻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나서 경고문을 붙였다. 성희롱, 성추행을 비롯한 성폭력에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성매매 업소가 아니니 이에 관해 일절 묻지 말라는 경고문을 만들어 부착했다.

 

▶ 현재 일하는 섹스토이샵. 직원에게 성희롱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직접 경고문을 만들어 붙였다.

 

사장한테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을 때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니, 내가 손수 경고문을 만들어 붙이니 ‘그러면 손님들이 무서워서 구매 욕구가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했다. 그러면서 인생 조언이랍시고 모든 상황을 웃으며 넘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사업주의 의무인데 자발적 보호는 물론이고, 지원은커녕 방해나 하는 것이다. 자신이 겪어 보지 않았으니 위협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것이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여성 알바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들이 지워져왔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위협과 두려움, 고난들은 알바노동에서도 존재했다. 알바노동도 소외당하고 여성노동도 소외당하는데, 여성 알바노동자의 존재와 그들이 겪는 어려움들은 사회에서 조명 받지 못하고 문제화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근로계약서에는 적혀있지 않는 웃음과 감정노동을 해야 했고, 자주 진열대에 오른 상품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외부 손님으로부터, 동료로부터 행해지는 폭력을 견디고 나에게 향하는 자책을 견디고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일은 아무리 겪어봐도 쉽지가 않다.

 

더 이상 버티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공격 대상이 되어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바꾸는 삶을 살고자한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겪었던 일들만 나열하는 것 같아서 무기력해졌다가, 이 글이 증언이 되어 누군가의 문제의식이나 공감을 깨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김하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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