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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가장 일상적인 수탈’을 증언한 여성들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릴레이 서평②


※ 알리스 슈바르처의 저서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출간 기념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릴레이 서평을 연재합니다. 두 번째 필자 쥬리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성적 자유를 누린 경험이 별로 없는 성교육 강사단

 

청소년 성평등 교육이나 성교육을 하게 될 강사단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성’을 주제로 한 강의를 진행할 때가 있다. 참여자는 주로 40-50대의 여성이고 자녀가 있는 어머니의 입장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강의의 경우 보통 진행에 앞서 참여자들에게 빈칸을 채워보도록 요청하는 문장들을 제시한다. 2분여의 시간 동안 참여자들은 돌아가면서 아래 문장에 자신이 채운 빈칸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지금 나는 성적으로 ___한 사람이다.”

“청소년기 나는 성에 관해 ___한 생각을 했고 ___를 했었다.”

 

처음 이 문장들을 제시하기 시작한 이유는, 청소년(혹은 자신의 자녀)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려는 분들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는 ‘성적으로 자유롭고 싶은’, ‘개방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또는 ‘한물간’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기 자신에 대해서는 성에 대해 ‘나쁜 것이라고 생각’, ‘무관심’,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며 ‘몰래 로맨스 소설을 읽’거나 ‘혼자 상상’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응답이 다수였다.

 

이 문장 채우기 프로그램을 몇 회 정도 진행하고 난 뒤, 나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40-50대 여성들 다수는 청소년기에, 어쩌면 지금까지도 성적 자유를 누린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위치인데 스스로의 성적 권리조차 인정받거나 존중받은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 알리스 슈바르처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전 유럽을 뒤흔든 여자들의 섹스 이야기)

 

엄마가 딸의 섹슈얼리티를 적극 통제하는 이유

 

“그이가 너무 원했거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려웠어요. ‘절대로 안 된다면 할 수 없지. 우리 사이는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보군.’ 그가 행여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어요.” 그녀의 첫 경험은 고통과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이 범벅이 된 그런 것이었다. -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중 ‘힐데가르트’의 인터뷰

 

만약 어머니의 성적 경험이 즐거운 것이었다면, 고통보다는 쾌락에 가깝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면 어머니는 딸의 섹슈얼리티를 가장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섹슈얼리티의 통제가 ‘너를 위한 것’이라는 어머니의 변명은 사실 어머니 자신의 성적 경험이 그토록 고통스러웠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어머니는 청소년기 나의 섹슈얼리티를 가장 가시적으로 억압하는 사람이었다. 미니스커트나 굽 높은 구두 같은 것들은 그녀가 허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입으면 남자들의 눈요깃감으로 전락한다”, “세상(남자들)이 얼마나 무서운데…”라며, 그녀는 허락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연애와 섹스는 당연히 용인되지 않았다. 용인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용인해달라고 말을 꺼내봤자 좋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미니스커트와 구두를 몰래 챙겨나가 밖에서 갈아입고 일을 본 뒤 다시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연애와 섹스는 밖에서, 남몰래 했다.

 

지금에 이르러 내가 엄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상흔들을 수용할 수 있는 까닭은, 엄마도 스스로가 가진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반응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전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고 이듬해 나를 출산했다. 딸이 남편감으로 데려온 남자가 마뜩찮아 결혼을 반대하던 외조부모를 설득하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아빠가 엄마의 인생에서 유일한 연애 상대였다는 이야기는 최근에야 처음 들었다. 나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첫 연애상대와 어떻게 결혼할 결심까지 했을까, 왜 그랬을까.

 

엄마는 자기를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녔던 여자친구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연애를 할 수도 있었을 법한 남자도 있었다고 말했지만(이 여자친구와 남자의 존재에 대해 엄마는 돌리고 돌려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내가 엄마가 한 말을 조합해 해석한 것이다), 어쨌거나 연애 상대는 아빠가 유일했다. 물론 연애 경험의 횟수는 성적 경험의 질과 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 보수적이고 엄격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가 성적 권리를 인정받고 존중받았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혼과 섹스, ‘정상적인 폭력’을 증언하다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는 40여 년 전 독일에서 발간되어 전 세계적인 호응과 논란을 이끌어낸 인터뷰집이다. 이 책에서 여자들은 섹스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녀들은 페니스는 ‘성교의 기본’인데 나만 그게 안 되는 게 괴로웠다고, 어떤 성구매자도 자신을 남편이나 남자친구만큼 악랄하게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혹은 발기불능인 남자를 만나 차라리 속이 편했다고 증언한다.

 

“남편은 매일 밤 그걸 원해요. 자기는 그래야만 한대요. 내가 원치 않을 때 남편이 요구해오면 가능한 빠르고 편하게 일을 끝낼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지요. 그래서 아주 편리한 자세를 찾아냈어요. 절반쯤 등을 구부려 남편 쪽에 대주는 자세를 하면, 남편 쪽을 보지 않고도 일을 치르게 해줄 수 있어요. 그러는 게 남편 쪽에서도 너무 좋대요. 그렇게 해주면 남편도 이제는 내가 정상이래요.” -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중 ‘도르테아’의 인터뷰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마음 속 어딘가에 있던 실 하나가 툭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친 소음을 동반하고 피가 낭자하거나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는 종류의, 그래서 일상에서 툭 튀어나와 예외적인 것처럼 보이는 폭력이었다면 오히려 덜 잔혹하다 느꼈을까. 나의 어머니는 1980년대에 십대 시절을 보냈다. 여자들에게 한국의 상황은 다르지 않거나 혹은 더 나빴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이고 정례화된 폭력, 가장 일상적인 수탈을 증언한 이 책은 읽기 편한 책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서 더 읽혀야 하는 책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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