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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무는 즐겁다

퀴어문화축제에서 마마무를 볼 날이 올까? (mossi)


지난 6월, “놀 줄 아는” 마마무가 돌아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는 타이틀로!

 

처음 데뷔했을 때 마마무(MAMAMOO)를 보고 사람들은 “신인 같지 않은 신인”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그들의 가창력, 무대 매너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 지가 어언 3년.

 

▶ "나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돌아온 마마무(MAMAMOO)    ⓒRBW

 

데뷔 3년차 마마무가(10년은 무대에서 뛰논 것 같은데 이제 3년이라니) 여타 걸그룹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실력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이 지점을 다루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걸그룹’이라고 정의내릴 것이며 어떤 것을 ‘실력’이라고 할 것인지 논의해야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 걸그룹이란 기획사에 의해 상업적으로 트레이닝된 ‘상품’으로 봐야할 듯하다. 따라서 걸그룹의 실력이란, 원곡을 2배속으로 돌려도 동선이 흐트러짐 없이 칼군무를 선보이며 격렬한 동작에도 음정은 물론 표정 하나 흔들림 없는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마마무의 실력은 위에 말한 것들과는 좀 다르다. 마마무의 실력은 규격화된 시스템에 의해 훈련된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놀 줄 아는 그대들 덕분에 나는 즐겁소

 

마마무의 컴백은 최근 격무에 시달리는 나에게 엄청난 활력이 되고 있다. 타이틀곡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은 물론, 뒤에 다룰 “아재 개그” 또한 들어도 들어도 웃음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에게 기쁨을 주는 걸그룹은 마마무만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걸그룹이 주는 기쁨은 죄책감을 수반한다.(우리는 이것을 전문 용어로 guilty pleasure라고 부르지요.) 가창 실력과 안무 동선은 물론 얼굴과 몸매 라인까지 ‘매끈하게’ 만들어진 걸그룹을 보면 아무 느낌 없었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나이 반 토막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면서도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동시에 나는 거대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걸그룹을 보고 또 보는 내 자신을 죄스러워하며 ‘앜, 레드벨벳 컴백했어!!!’라는 비명을 속으로 삭힌다.

 

그런데 “마마무 이번 타이틀 들어봤어?”라고 말하는 내 마음은 떳떳하다. 마마무가 출연한 음악방송을 찾아보는 내 마음도 떳떳하고,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반복적으로 보며 히죽거리면서도 떳떳하다. 이런 떳떳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 마마무(MAMAMOO)의 타이틀곡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뮤직비디오 중에서

 

무대 위에서 ‘즐기는’ 것은 마마무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무대가 정말 즐겁다’는 듯이 노래하고 춤춘다. 내가 아는 한 ‘무대를 즐기는 것’은 아이돌이 갖춰야 할 필수조건 중 하나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네가 정말 무대를 즐겨야 관객도 그걸 느껴” 라고 말한다. 우리는 ‘즐김’마저 상품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대 위의 아이돌들이 정말 즐거운지 잘 모르겠다.(실제로 즐겁다면 다행이겠으나 ‘즐거워 미치겠어’를 연기 중이라면 안쓰러움은 나의 몫인가.)

 

마마무의 즐거움은 그들의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며 재밌게 ‘논다.’ 노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고 떳떳하다.

 

“아재! 아재!” 하고 소리치는 호기로움

 

마마무는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경계를 허무는 시도들을 한다. 대표곡 중 하나인 “음오아예”는 취향 저격 당한 사람에게 당당하게 ‘다가가겠’다는 내용인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언니”다.(몰랐던 취향의 발견인 겐가!)

 

타이틀곡은 아니었으나 그에 준하는 인기를 누린 “1cm의 자존심”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인 자기들의 키를 가지고 재밌게 노는 곡이다. 근데 이 언니들, 단순히 키가 크다 작다 수준의 말장난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장신인 척 난리 우월한 척 난리”라고 을러대는 목소리에는 호기가 넘친다.(이게 단순히 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를 지적하는 걸로 들린다고 해도 과도한 해석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마마무의 행보가 항상 파격적이거나 대중문화의 범주를 완전 벗어난 건 아니다. “넌 is 뭔들”에서 “귀여운 척 섹시한 척 이쁜 척 그런 거 안해도”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이번 타이틀 “나로 말할 것 같으면”에서도 “노출 그런 거 안 해, 그럴 필요 없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모든 걸 다 한다. 특히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데칼코마니”의 경우 내 눈에는(노래 가사를 빌어서 말하자면) 좀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보였다. 다른 걸그룹들도 할 수 있을 법한 ‘섹시 컨셉’을 굳이 마마무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컴백 무대를 보며 ‘아, 내가 성급했구나’ 했다. “아이고, 언니들 몰라뵀습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타이틀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을 두고 ‘큐티 허세’라 부르는 것은 기획사의 보도 자료인지 방송국 담당 작가의 수작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이번 타이틀곡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버전의 퍼포먼스다. 마마무의 섹시가 다른 걸그룹과 다른 이유는, 이들은 ‘내가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서’ 포오즈를 취한다.(비록 그것이 어울리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퍼포먼스의 매력은 언밸런스에 있는데, 가령 “아주 시크해”라는 가삿말과 달리, 이 부분은 하나도 시크하지 않다!(그럼 어떠리! 본인이 시크하다는데!)

 

▶ 마마무(MAMAMOO)가 컴백 무대에서 선보인 “아재 개그” 댄스 영상 중에서 

 

개인적으로 이번 컴백 무대에서 (좋은 의미로) 박장대소한 것은 “아재 개그” 무대였다. 일단 이 노래는 “아재! 아재!”하면서 아재(=아저씨)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벌써 웃음이 터질려고 그래) 시도 때도 없이 ‘아재 개그’를 날리는 아저씨들이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웃어주려니 힘이 들고 화를 내려니 힘이 들어서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마마무는 이런 ‘아재 개그’를 음악으로 끌어들여서 재밌게 논다, 어떻게? 이렇게!

 

아재개그 아저씨군

삐뚤빼뚤 지그재그

쟤쟤쟤 쟤 봐라 

엄머머 쟤 좀 봐라

아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군

 

이 무대가 왜 호쾌하게 느껴지는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일상의 아재 개그에 지치신 분들은 마마무의 ‘아재 개그’ 무대를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아재 개그 날리는 아저씨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은 분노를 품은 분들의 성에는 차지 않을지 모르나, “아재 개그? 아저씨네 아저씨” 하면서 깔깔호호 뛰뛰빵빵 뛰어노는 언니들을 보면, 기분이 꽤 괜찮아진다.

 

마마무에게 무대는 실험장이자 놀이터

 

잘 노는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덩달아 나도 같이 즐겁게 놀고 싶어진다. 마마무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 무대란 하나의 실험장이자 놀이터란 느낌을 받게 된다. 매순간 즐거울 것. 나만 즐거운 게 아니라 네 명이 호흡을 맞춰가며 함께 즐거울 것. 우리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보여줄 것. 그들에게선 이런 마음이 느껴진다. 동시에 그들은 일과 놀이, (걸그룹으로) 요구받는 것과 (뮤지션이자 퍼포머로) 수행하는 것 사이에서 즐겁게 흔들리며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행보를 선보이는 멋쟁이들에게 ‘퀴어 팬덤’이 존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걸그룹으로) 요구받는 것과 (뮤지션이자 퍼포머로) 수행하는 것 사이 경계를 넘나드는 마마무. ⓒRBW

 

마마무 팬덤 ‘무지개 무무’는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모임 후원을 진행했다. 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에서 모임 후원 방식의 예시로 ‘마마무팬모임’을 언급했는데, 이걸 본 ‘무지개 무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움직였다는 것이 해당 블로그 글에서 확인한 사실. (http://blog.naver.com/fkz02/221014718070)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17회를 맞고 있고, 해마다 참가자들은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 축제에 모이는 사람들이 수많은 퀴어+퀴어 지지자+퀴어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당장 올해가 아니더라도 그리 멀지 않은 어느 해 퀴어문화축제에서 마마무를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냐고? 최근 내가 굉장히 감동적으로 본 영화 <런던 프라이드>(Pride, 매튜 워처스, 영국, 2014)에는 광부 노조를 지지하는 퀴어 후원 파티에서 공연할 뮤지션을 섭외하면서 “(퀴어 파티 무대에 서는 것이) 반드시 퀴어 뮤지션일 필요는 없다”라는 설득의 과정이 나온다. 가끔은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하니까, 내가 보기에 마마무는 ‘재밌는 걸 즐기는’ 언니들이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언니들이니까, “축제 무대에 한번 나와 주세요!” “퀴어는 마마무를 사랑해요”라고 계속 러브콜을 보내면, 마음이 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나 자신이길’ 원한다. 그것이 나에게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든 받지 못하든, 나 자신으로 당당하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 마마무는 무대 위에서 항상 ‘나 자신으로’ 당당하고 즐겁다. 그걸 보는 나 역시 마마무가 즐겁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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