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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페미니스트 ‘마녀사냥’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는 어떻게 난파되었나①



“안녕하세요.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입니다. <난파>란 ‘난교파티’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어지러운 물결’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난교’라는 워딩은 여성의 성해방을 지향합니다. 진정한, 평화로운, 예쁜 상냥한, 건강한, 허락한, 설득하는, 진짜, 순수한 페미니즘 안 합니다.” -2016년 11월 25일자 <난파> 페이스북 페이지 소개글

 

작년 11월 25일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리고 단 5일 만에 난파(難破)됐다.

 

<난파>는 배를 띄우자마자 난파된 채 20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 진짜 ‘난교파티’를 열어서가 아니다. 소모임 이름 때문이다. <난파> 구성원들은 학과 내에서 숨죽여야 했고 온라인상에서는 신상이 털리고,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제소까지 당했다. 학업에 있어서까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난파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대학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학내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집단적 괴롭힘을 당하고 학습권까지 박탈당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허락받는다.

 

▶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가 붙인 <난파> 지지 연서명 대자보를 한 학생이 읽고 있다. 

 

“낯부끄럽다, 이름 바꿔라”

 

2016년 11월 25일에 <난파>를 결성한 학생들은 학교와 학과, 소모임 이름을 단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3일 후, 같은 과 출신 대학원생 A씨는 <난파> 구성원 중 한명이었던 지리교육과 학생회장을 따로 불렀다. “그 학회가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 하고 싶지도 않고 사실 관심도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건 딱 그 단지 이름 하나야. (…) 난교라는 게 사전적 의미가 굉장히 사실 낯부끄러운 (…) 내 요구 사항은 하나야. 단체 이름을 변경해 주든가 고려대 지교를 빼주면 좋겠어.”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2017년, 48호) 참조

 

<난파> 측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A선배님께 답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소모임 이름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이름을 이렇게 짓게 된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그러자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며 난파 이름이 “성적 혐오감이 들게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게시했다.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난파> 측은 A에게 동의를 구한 후, A의 글을 <난파>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자 이 글에 A씨를 비방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며, 지리교육과 학생들과 외부인들 간에 일명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다.

 

<난파>는 네티즌들에게 과격한 언사를 삼가줄 것을 부탁하는 공지를 게시하고, 댓글을 통해서도 과열 양상을 수차례 말렸다. 그러나 <난파> 소모임원들은 A씨에 대한 조롱과 인신공격, ‘키보드 배틀’에 직접 가담했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학과 내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력과 공격이 시작됐다.

 

“그땐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됐어요. 너무 공격이 심했어요. 카카오톡 메시지가 막 900개씩 와 있고, 수업에 들어가면 다 쳐다보고 전방위적으로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공격했죠. 학교 커뮤니티 내부에서 얼굴 다 털리고 디씨인사이드, 일베 같은 데도 올라갔죠. 인격적 살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백기 투항하는 심정으로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면 끝나겠지’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이고 뭐고 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소모임원 푸라푸라(별칭) 씨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파> 구성원들은 ‘과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소속원분들의 불쾌함을 묵과했다, 학우들을 향한 인신공격을 방치했다’ 등의 내용을 담은 사과문을 올렸고, 11월 30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폐쇄했다.

 

부적절한 모임명 짓고 악성댓글 방기한 죄?

 

▶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학생회 1차 임시총회 결과 공고


게다가 <난파> 소모임 구성원들을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제소를 당했다. ‘부적절한 소모임명’과 ‘악성댓글 방기’가 제소 항목이다.(양성평등센터는 사건 발생 20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조사위원회’를 열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 또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후 소모임원은 학과 교수에게 불려가 면담을 했고, 일부는 부모님이 대학에 호출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작년 12월 2일, 난파가 구성된 지 일주일 만에 지리교육과 1차 임시학생총회가 개최됐다. 지리교육과 학생회 학생회칙에는 징계에 관한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실 확인이나 소명 절차도 없이 <난파> 구성원에 대한 징계 안건이 상정됐다. 징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난파> 소모임원들은 10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사과를 해야 했다.

 

12월 5일에는 지리교육과 내에 ‘난파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대표는 지리교육과 학과장이 맡았다. “일련의 사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알리고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밝힌 ‘난파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에서 “난대위는 익명성에 숨어 비인간적, 비도덕적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아울러 그것도 집단이 몰려가 린치를 가하는 잘못된 문화에 대하여 교내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합니다. (…) 인간에 대한 혐오주의를 조장하는 단체와의 관련성이 확인될 시에는 이에 대해서 책임을 끝까지 묻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12월 8일에는 <난파> 소모임원인 지리교육과 학생회장 ‘탄핵’ 안건 발의를 위한 지리교육과 2차 임시학생총회가 개최되었으나, 정족수 미달로 상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후 학과장은 지리교육과 학생회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학생회장 자격 정지’를 공고했다. (학생회장은 다음 학기 개강총회(2017년 3월)에서 자진 사임했다.) 학생들의 민주적인 투표로 선출된 학생회장의 활동을 학과장이 ‘간단하게’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

 

양성평등센터에 제소된 상태에서 <난파> 소모임원들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이들은 “제소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하면 더 큰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렇게 고립된 채로 우울증, 무력감, 공포감에 빠져 방학을 보냈다.

 

특정 과목 수강 불허…‘학습권’ 침해까지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고 2017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됐을 때, <난파> 구성원 9명 중 3명이 이번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에 휴학을 했다.

 

나머지 소모임원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학교 측의 또 다른 탄압이었다. 지리교육과에서 “당사자들 간의 분리 원칙(지리교육과 학생들과 <난파> 소모임원들 간)에 따라” ‘야외지리조사’ 과목 수강을 불허한 것이다. 이 또한 학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야외지리조사 과목은 졸업논문을 대신해서 수강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졸업 시기와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였다.

 

학과장은 이 결정에 대해 “(학생들 간의) 갈등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미필적이든 온라인상 심한 언어폭력 가해가 있었다”면서, “가해자들을 불편해 하는 학생이 다수라고 판단해 교수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연합뉴스 2017년 3월 6일자 ‘고려대 지교과, 일부 학생에 특정과목 수강신청 불허 논란’)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의 ‘성인권 보호와 침해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2015년 1월 16일 양성평등센터 제정) 4장 18조에 따르면 ‘피해자와 피신고인의 분리 조치와 접근 및 연락금지 명령’은 양성평등센터장이 취할 수 있는 조처다.

 

학과장은 무엇을 ‘폭력’이라고 보고 누가, 어떤 ‘가해’를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는 명백하게 편파적인 결정이자 권력 남용이라는 것이 <난파>측의 입장이다. <난파> 소모임원들은 졸지에 징계를 받는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학내 시스템에서 어떠한 사실 확인이나 소명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학습권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푸라푸라 씨는 “양성평등센터가 제정한 규정을 빌미로 불합리한 조치를 당했음에도, 왜 나서지 않느냐고 <난파> 소모임원들이 양성평등센터에 문제 제기했지만 ‘양성평등센터와 상관없이 학과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일’이라는 답변 이외에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페미나치’ ‘메갈년’ 낙인찍는 분위기에서 위축돼

 

올해 3월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는 <난파> 사건에 대해 난파 측을 지지하는 연서명을 조직했다. 총 39개 단위와 951명의 개인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연대의 흐름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난파> 구성원들은 “연대를 피부로 체감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연서명 또한 같은 학교 내 개인이나 단체들보다 학교 외부에서 더 많이 했다는 것.

 

▶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가 조직한 <난파> 사건 대자보 연서명

 

왜일까? 지난 5월 11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난파 대토론회>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난파>를 향한 마녀사냥 분위기 때문에 쉽사리 나서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사범대를 다니는 익명의 학생은 “사건 당시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과의 단톡방에 ‘<난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누르는 사람 있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는 말이 올라온 걸 보고, 뭔가를 드러냈다가는 나조차 공동체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당시 학내 분위기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내 친구도 연서명을 했는데 그걸 보고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다고 하더라. 페미니즘 학회나 소모임들이 입지가 그렇게 크지 않고 학내 여론이 너무 안 좋다보니까 겁이 났다”, “양성평등센터가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니까 내가 <난파>를 지지 했을 때 누가 나를 지켜준다거나 신상이 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어서 두려웠다”, “사범대에서 누가 연서명을 했는데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든지 ‘너 연서명했다더라’하면서 비꼬았다” 등이다.

 

이런 증언들은 당시 학내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푸라푸라 씨는 “학내에 <난파> 사건에 대해 ‘페미나치, 메갈집단이 선배 하나를 린치했다’ 이런 구도로 소문이 와전되어 있었어요. 정말 여론이 안 좋았죠” 라고 말했다.

 

<난파>의 몇몇 소모임원은 학과에서 학습권을 침해당한 사건을 4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국가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공동체에서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삭제

 

난파 측은 “<난파>가 난파되는 과정은 ‘공동체’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균열을 내는 소수자에 대한 삭제이자,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삭제”였다고 진단한다.

 

또 다른 소모임원인 톨레랑스(별칭) 씨는 “지리교육과 구성원들은 ‘페미니즘을 탄압하는 게 아니다, 우리 과의 명예실추에 대한 것이다’라고 했지만, 한 졸업생이 총회에 와서 ‘어려서 페미니즘 같은 거에나 쉽게 빠지고’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난파> 탄압이 젊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맞물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의 나영 활동가는 “<난파> 사건을 보고 작년 김자연 성우가 ‘Girls do d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가 ’메갈‘이라고 비난받으며 퇴출당한 게 생각났다”고 말했다.

 

나영 활동가는 이어서 “남성들이 이렇게 연대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사례가 대학 안에서 발생하면 회사나 사회에 나가서도 여성들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우려하며, “‘난교파티’라는 소모임 이름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토론은 할 수 있을지언정 탄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재시동) 현상으로 신생 페미니즘 소모임이나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 교지가 다량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페미니즘 이슈를 제기한 대자보가 찢기는 등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행동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건치 씨는 “페미니즘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는 사이버불링(특정인을 사이버 상에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을 넘어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죽이고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메갈이다, 워마드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라고 낙인찍고 혐오하고 (공동체 밖으로) 배출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고려대학교 안에도, 밖에도 또 다른 <난파>들이 있다는 말이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과 배제, 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난파>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러한 거대한 공포와 고통을 겪으면서도 페미니스트들이 말하기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참고자료: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2017년 4월 48호)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 사건 경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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