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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사람들 가운데 여러 이유에서 자가용차가 없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지구환경을 위해서 자가용차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철도노동자인 그는 반생태적인 자동차문화를 반대하기에 당연히 운전면허도 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그는 주위에서 특별한 사람,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비록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자가용차를 구입하지 않고 대중교통과 두 다리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내게, 그와 같은 존재는 분명 힘이 된다.
 
‘자가용차가 없는 것이 문제’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자가용차는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꼭 구비해야 하는 생활필수품이 된 듯하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부와 권력의 과시물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 살면서 중고 소형 자가용차 한대조차 없다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의 표시로 간주되고, 자가용차가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는 현대인을 간단히 ‘자가용차를 소유한 자’와 ‘자가용차를 소유하고 싶은 자’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고 한 모양이다.
 
우리 아파트만 보더라도, 노인세대를 제외한 중.장년 세대의 경우 자가용차가 없는 집은 거의 없다. 게다가 한 집에 자가용차가 두 대, 심지어 세 대까지 있는 집들도 있다. 주위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 비하면 주차공간이 덜 부족하다고 하지만, 한 세대당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채 1대가 되지 못하는 오래된 아파트라서 주차공간을 확보하려는 입주민 사이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이웃 단지의 차가 우리 아파트에 주차되어 있다’, ‘한 세대가 여러 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파트 차량등록을 하지 않고 주차비를 안내고 있다’, ‘주차해 둔 차량이 손상되었다’ 등과 같이, 아파트 민원의 상당수가 주차와 관련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언젠가 아파트 동대표들에게 “자가용차를 갖고 있지 않은 세대는 자기 몫의 주차공간을 강제적으로 무상 제공하는 셈이 되니까, 명절 때마다 작은 선물을 해주는 등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주어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건의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동대표가 내 생각이 생뚱맞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차를 사요.”라고 성의 없이 답변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대답 속에는 ‘세대당 최소 한대의 자가용차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자가용차를 구입하지 않은 것이 문제 아니냐? 억울하면 차를 사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매달 동대표회의 때마다 아파트 내 주차공간 확보가 주요 안건이 되어 골머리를 썩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보더라도, 자가용차 없이 지내는 이웃에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식이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듯싶지만, 자가용차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필수품을 마련 못한 딱한 이웃일 따름이다. 게다가 차를 살 여유가 있는데 사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별종으로 논외가 된다.
 
그런데 자가용차를 갖는 것이 이웃과, 사회와, 자연에 심각한 피해를 가중시키는 일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 이웃에게 끼친 피해가 미안해서라도 그런 손쉬운 대답을 무성의하게 즉각 꺼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마땅할 일인 듯싶은데 말이다.
 
자가용차가 주는 피해, 이득을 넘어
 
오늘날 자동차가 끼치는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포함하고 있는 오염물질-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화합물 등-은 인간에게 천식과 같은 호흡기질환, 심장질환,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화학스모그 오존, 지구온난화 등을 야기해 생태균형을 파괴시켜 동물과 식물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상식이 된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소음, 도로와 주차시설 확충을 위한 경작지 감소 및 자연 훼손,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도 어찌 놓칠 수 있을까. 특히 자가운전으로 인한 경제적 지출과 시간낭비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자가운전자는 이렇게 응수할지도 모르겠다. 자가용차 덕분에 직장 출퇴근도 편리하고, 마트에서 대량으로 장보는 일도 가능하며, 자녀들을 놀이방, 학교, 학원 보내기도 좋고, 휴일에 놀이공원, 관광지에 놀러 가기도 손쉽다고. 또 가족들이 멋진 장소에서 외식하려면 자가용차는 필수이고, 멀리 있는 일가친척들을 방문할 때도 자가 운전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혹시라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거나 다리가 부자유스런 장애인의 경우는 자가용차 없이는 힘들다고.
  
그렇다면 자가용차가 진정 해답일까?
 
다소 가까운 거리라면 자전거를 이용해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자전거 길을 확보하거나, 직장 통근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가까운 장터를 이용하거나 소량으로 자주 장을 보는 것, 직장 내에 또는 집 가까이 놀이방을 늘리는 것, 자녀들의 학교나 학원 역시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라면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 휴일에 근처 산이나 하천, 미술관, 공연장 등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
 
몸이 심하게 아프지 않을 때는 근처 병원을 찾도록 하고, 많이 아프다면 119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 멀리 있는 일가친척도 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편지나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해서 자주 안부를 묻는 것, 지체장애인들이 보다 자유롭게 대중교통, 전동휠체어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 등을 통해 자가용차 없는 일상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 숙고해 본다면, 각자의 수준에서 더 나은 해결책들을 왜 못 찾겠는가.
 
물론 자동차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또 자가용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가용차 없이 일상을 꾸리려면 처음에는 불편한 점들이 한둘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가용차가 없어 편리하고 이득이 되는 점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체험도 변하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녀들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또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있는 차를 팔아 버리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자가용차 사용횟수를 줄이는 시도는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가용차 없는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자가용차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고, 자가용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유별나거나 딱한 일이 아니라 삶의 당연하고 책임 있는 태도임을 인정하는 데부터 자연사랑, 이웃사랑의 작은 첫걸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자. 이반 일리히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미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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