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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빛 세상, 흑백 안경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젠더 이분법 뛰어넘기


▶ [무지개빛 세상, 흑백 안경]   ⓒ머리 짧은 여자, 조재

 

타로 상담을 할 때 가장 으뜸인 주제는 바로 ‘연애’다. 질문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상대가 없으면 연애 상대가 언제 나타날지 궁금하고, 상대가 있으면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이 궁금하다.

 

“만나는 분이 있으세요? 호감 가지고 있는 상대가 있으세요?”

그도 없다하면 “언제쯤 연인이 생길지 궁금하신 거네요!”

 

그렇게 타로를 펼치고,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주로 손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손님의 연애 대상은 ‘상대’ 혹은 ‘연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간혹 너무 자연스럽게 ‘여자친구’, ‘남자친구’ 같은 호칭이 튀어나와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이성애자라 생각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매일 주의해야지, 하면서도 매번 반복하게 되는 실수다.

 

이처럼 성별을 특정 짓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내가 겪는 어려움은 따로 있다. 주역타로(내가 다루는 카드는 서양타로가 아닌 동양 주역타로다)의 뿌리, 즉 주역이다. 주역은 동양의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 중 하나로, 천지만물의 끊임없는 변화 원리를 다룬다. 문제는 이 주역의 바탕에 깔린 음양론이다. 천지만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음양론의 핵심. 흔히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음양론이다. 음과 양의 조화를 말하며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만나는 것을 조화롭다고 본다.

 

가부장제 요소들-음인 여성은 유순해야 하고, 양인 남성은 강인해야 하는-은 걸러 재해석할 수 있다하더라도, ‘여자는 음, 남자는 양’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극복하기 어렵다. 인간은 남과 여 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데… 때문에 꼭 음인 여성과 양인 남성이 조화로워야 할 이유도 없다. 주역에서 말하는 음양론을 어떤 방식으로 성소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난감한 순간이다.

 

하루는 게이 친구의 연애 타로를 봐줬다. 효사(주역에서 괘를 구성하는 각 효를 풀이한 말)는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성별이 딱 구분되어 있는 효사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친구에게 감안하고 얘기를 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다행히 친구는 내용을 듣고 수긍하는 눈치였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난 3월, 여성주의 타로인 마더피스 타로 수업을 들었다. 마더피스 타로가 탄생한 배경은 역시나 서양타로의 성차별 요소에 있었다. 마더피스는 남성 중심의 신화 대신 ‘여신’을 중심으로 타로를 재해석했다. 이 타로에 등장하는 인물의 90%가 여성이다. 마더피스를 통해 가부장의 언어가 아닌 내 언어로 나를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더피스는 이처럼 여성 중심으로 타로를 재해석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여전히 젠더 이분법적이며 젠더퀴어의 존재를 담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분명 지금 내가 사용하는 주역타로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역타로를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마더피스가 그랬듯이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 재해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학문이든, 타로든 우리의 삶을 해석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생겨났을 뿐이다. 바뀌어야 하는 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를 인식하는 틀이라고 믿는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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