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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저항하는 ‘용기 근육’ 키우기

<남순아의 젠더 프리즘> 용기를 내는 것은 습관이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남순아님은 페미니스트 영화인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폭력은 목격자에게도 고통을 준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커서 용감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부모님이 사주신 위인전을 읽으며 나도 몸을 사리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부모님은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까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하셨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대부분의 불의와 폭력에 침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떤 폭력의 경험은 친구들과 함께 가해자와 시스템을 욕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어떤 경험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면 오랫동안 폭력의 순간에 머물렀다. 가해자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나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머릿속에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없이 반복했다.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곱씹을수록, 그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내가 견딜 수 없이 밉고 무기력해졌다.

 

이런 감정은 내가 피해자가 아닌 경우에도 들었다. 다른 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목격했을 때였다. 폭력을 목격했는데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마치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해자가 폭력을 멈추길 바랐지만 제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해자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내가 참견해도 되는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할 시점을 놓치기 일쑤였고, 이후엔 침묵한 스스로를 비난했다.

 

▶ 아타(我他)  ⓒ일다: 천정연 作

 

작은 불의에 침묵하고 넘어가는 우리들

 

한 번은 친구가 영화 현장에서 겪은 폭력을 이야기해줬다. 그 현장에서 나이와 경력이 가장 많은 남성 헤드스탭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적은 친구에게 촬영 내내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가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다른 스탭들 중 가해자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침묵했다고 했다.

 

침묵한 스탭들 중 몇몇은 나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그들이 침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라면 가해자에게 맞서고, 친구의 곁을 지켰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많은 일들을 모르는 척 해왔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침묵한 동료들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막상 폭력을 목격했을 때 문제제기를 하고 피해자 곁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그가 속한 조직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 권력을 기반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것은 가해자의 권력에 맞서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르는 척하면 조용히 피해자가 홀로 떠안고 갈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들어, 가해자가 마음 놓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용인하는 조직의 문화에 문제제기하는 일이 된다.

 

내가 친구의 곁을 당연히 지킬 것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자 두려워졌다. 당장의 작은 불의에는 침묵하지만 정말 큰 불의에는 싸울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불의들에 침묵하던 내가 정말 큰 불의를 목격했을 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한지, 비겁한지 스스로가 미워졌다.

 

▶ 한국여성민우회 노동팀이 만든 <평범한 용기: 직장 내 성희롱, 모두를 위한 안내서> 2015 ⓒ남순아

 

그즈음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평범한 용기>(직장 내 성희롱, 모두를 위한 안내서)라는 소책자가 나온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신청해서 읽어보았다.

 

“그간 성희롱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 간의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거나 피해자가 너무 예민해서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또 질문하게 됩니다. 직장 내 성희롱이 과연 둘만의 문제일까요? 성희롱 사건이 일어날 때 이를 지켜보는 직장 동료들도 방관자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피해자에 준하는 업무 능력 저하를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책자를 읽고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 스트레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나는 목격자였다. 폭력을 목격했음에도 침묵할 때마다 나는 나의 비겁함과 마주해야 했다.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이 자기혐오로까지 확장되었던 것이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용기 있게 된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용기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하다가, 작은 것부터 도전해보기로 했다. 함께 일하던 10살 많은 남성 헤드스탭이 내 머리를 쓰다듬은 것에서부터였다.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지 정리해서 화장실에서 연습한 뒤, 그에게 가서 “내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행동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사과를 받았다.

 

사과를 받은 것보다 내가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말하지 않고 넘어갔을 때 느끼는 무기력함과는 달랐다. 내가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뒤로도 의식적으로 용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용기내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책상 앞에 붙여두었던 포스트잇.  ⓒ남순아

 

용기라는 것은 근육과도 같아서, 작게라도 용기 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강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단단한 것처럼 느껴져도 어떨 때는 화를 내도 될만한 것인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고민하느라 말할 시점을 놓치고 또다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분위기가 껄끄러워지는 게 두려워 말하지 못할 때도 많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구호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정말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같은 사람들이 서로의 용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연결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는 앞으로 살면서 계속 찾아나가야 할 과제다. 부당한 일에 저항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새롭게 용기낸 사람의 곁을 지키고 그의 용기를 지지하며, 각자의 용기 근육을 키우며 우리가 지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_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용기 있게 된다. 용기는 습관이다.” -메리 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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