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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디펜스, 이기고 지는 것은 없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아무도 지지 않았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동산 위에서 찬 공기 마시며 뛰고 웃었던 수업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우리는 대전 청년잡지 보슈(BOSHU)와 행복한 페미니스트, 알바노조 대전충남지부의 초청으로 충남대에서 여성 셀프 디펜스 수업을 열었다.

 

교문을 들어가 약간 굽이진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니 우리 수업을 위해 교실을 정돈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최하란입니다.” 하고 얼굴을 쓱 들이밀고 강의실 안을 살폈다. 수업 장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운동하는데 지장을 주거나 위험한 것은 없는지, 어떤 곳에 서야 참가자들이 우리의 동작을 이해하기 좋은지, 출입문이 어디 있는지, 환기나 냉난방 상태는 어떤지 등을 확인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다.

 

강의실은 작아 보이는 공간이었다. “선생님, 좀 좁지요? 3월이고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강의실은 이미 다 차서 잡기가 어려웠어요…”, “괜찮아요. 해봐야죠.” 라고 대답하고 함께 간 동료 강사와 강의실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복도와 현관, 공터 등.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이 공터에서 약간 소리 지르고 달려도 될까요?” “음… 선생님, 그러면 여기서 조금만 가면 농구장이 있는데, 거긴 어떨까요?”

 

그리하여 참가자들은 큰 강의실이 이미 다 차버린 덕분에 벽도 천장도 없고 나무가 있는 동산 위에서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함께 달리고 웃을 수 있었다. 검푸르게 보이는 밤하늘과 따뜻해 보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헉헉거리며 뿜어 나오는 하얀 입김들. 어둠과 빛에 대한 눈의 감각과 적응, 유의사항에 대해 소개할 수 있던 것도 생각지 못한 보너스였다.

 

▶ 어둠과 빛에 대한 감각과 적응  ⓒ스쿨오브무브먼트

 

싸우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수업 전 일요일, 나는 우리 수업이 ‘저항하는 여자가 이긴다’라는 제목으로 홍보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주최 측에 연락을 취해 ‘저항은 가능하다’라고 수정해주실 것을 부탁했고 즉시 변경됐다. 이번 기회로 몇 가지 생각을 더 분명히 정리했고, 이 글로 공유하고 싶다. 이 기록은 생각을 더 분명히 정리할 기회를 준 주최 측과 참가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저항하는 여자가 이긴다’였지만, 작년에는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는 셀프 디펜스 수업 제목을 봤다. 나는 두 제목이 모두 20세기 초 영국에서 서프러제트(suffragette)로 불리는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원제: My Own Story Inspiration for the major motion picture Suffragette)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저항하는 여자가 이긴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모두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과 저항에 대해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매우 좋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셀프 디펜스 수업이나 캠페인에 사용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과 셀프 디펜스(자기방어)를 위한 행동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통점을 보면, 셀프 디펜스에도 싸움의 요소가 있다. 심각한 경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인생이 모두 걸린 육체적 싸움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이 부당하고 다른 한편이 정당하다는 점도,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셀프 디펜스에서는 회피, 도망, 심지어 부당한 요구에 응하는 것까지도,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안전하다면 적극 권장한다.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과는 매우 다른 점이다.

 

▶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언어 테크닉에 대한 설명 중. ⓒ스쿨오브무브먼트

 

예를 들면, 흉기를 든 사람이 돈을 요구할 때 대부분의 안전 전문가들은 돈을 주라고 조언한다. 돈이나 지갑, 가방 그 어떤 것도 자신보다 소중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수업에서는 돈이나 지갑, 가방을 망설임 없이 즉시 건네주는 것도 연습한다. 왜냐하면 요구에 응하는 것도 아니고 싸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멍해지는 것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요구에 응하다가 다시 싸울 수도 있다. 강간의 경우, 요구에 응하는 척해서 싸울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둘째,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하며, 구조적 상황보다 개인으로 접하는 상황이 더 많다.

 

한번은 한강변에서 달리기를 하던 내게,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던 남자가 큰 소리로 성희롱 발언을 하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싸울 수가 없다. 며칠 잠복을 해서 잡아낼 가치도 없었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는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저항하고 싸우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저항과 싸움은 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 싸울지 말지는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아예 싸울 기회가 없는 상황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싸움의 요소가 있다고 해도, 셀프 디펜스가 싸움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없다

 

공격자가 내게 욕을 했거나 날 업신여기고 조롱했지만 내가 혼내주지 못했다면, 내가 지는 것일까? 공격자가 날 겁주고 무시하고 심지어 육체적으로 때리거나 추행까지 했다. 나는 그만큼 공격자에게 겁을 주거나 육체적으로 되갚음 하거나 신고해서 법적 처벌을 받게 하지는 못했다. 그럼, 진 것일까?

 

피해자, 피해생존자, 생존자 아무도 지지 않았다. 과거에 싸우지 못했거나 지금 저항하지 않는 누구도 패배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일들이 정말 많다. 싸울 게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모든 것들과 매번 싸울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 충남대에서 열린 여성 셀프 디펜스 수업 참가자들과 함께 ⓒ스쿨오브무브먼트

 

이기고 진다의 관점을 가지면 오히려 이겨내기 힘들 수 있다. 바로 공격자가 원하는 것이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이 사회의 꼭대기가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또 졌구나.’ 하는 패배감과 무력감, 그래서 서로 냉소하고 거리를 두는 것.


우리의 셀프 디펜스 수업은 삶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을 예방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북돋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기고 진다는 관점은 없어야 한다. ‘저항은 가능하다’라는 부제도 한시적이길 기대한다. 우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는 걸 돕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항은 가능하다. 사실이다.  _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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