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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1908년 3월 8일, 뉴욕 러트거스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노동자들이 외쳤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아이들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

 

거리로 또 거리로!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

 

UN은 1975년에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그러나 세계 여성의 날은 어느 날 갑자기 받은 선물이 아니라, 뉴욕의 의류와 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이 형편없는 임금과 노동 조건에 맞서 싸운 저항의 역사다.

 

1857년 3월 8일, 뉴욕의 의류와 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성적 괴롭힘, 불공평한 대우에 맞서 싸웠다. 2년 뒤, 그들은 첫 번째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50년 후인 1908년 3월 8일, 여성노동자들은 다시 변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번에는 요구 사항에 ‘아동노동 금지’와 ‘여성 참정권 보장’이 포함됐다. 이듬해 미국에서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됐다.

 

▶ 1908년 미국 방직공장의 아동노동. ⓒCorbis Bettman/ Bettmann/ CORBIS

 

여성노동자들의 분노는 1909년 “2만 인의 반란”으로 알려진 13주 연속 파업으로 폭발했다. 많은 파업 참가자들이 십대였다. 그들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직물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했고, 일을 마치면 좁고 더러운 셋방으로 돌아가 퉁퉁 부은 다리와 발목을 붙잡고 잠들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위험한 기계에 아슬아슬 매달려 일해야만 했다.

 

여성노동자들은 깡말랐고 일부는 굶주려서 허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겨울 내내 흙먼지와 눈보라를 맞으며 피켓팅 대열을 지켰다. 경찰의 폭행으로 온몸이 멍들고 피를 흘리면서도 파업을 지켜냈다. 이 파업 노동자들은 여성 평등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됐다.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이며 사회주의자인 클라라 제트킨이 뉴욕 여성노동자들의 감동적인 투쟁의 날인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

 

1911년 3월 8일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 여성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외치며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집회가 열렸다. 러시아의 여성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시위가 “소용돌이치는 여성의 바다가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고 썼다.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여성과 의회’, ‘노동여성과 상호부조’, ‘주부와 정치는 어떤 관계가 있나’ 같은 글들을 읽고, 보통 선거권과 성평등 문제를 토론했다.

 

뉴욕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참사와 장례행진

 

1911년 3월 25일,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의 화재로 146명(여성 123명, 남성 23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20세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재였다. 희생자는 대부분 16세에서 23세의 유대인과 이탈리아인 여성 이민자였고, 제일 어린 희생자는 14세였다.

 

공장은 건물의 8층부터 10층까지 있었는데, 그들은 대피하지 못하고 건물에 갇힌 채 불타 죽거나 질식해 죽었다. 일부는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 죽었다. 사장이 노동자들이 작업대에서 빠져나와 쉬지 못하도록 모든 계단과 비상구를 잠가놨기 때문이다.

 

참사를 낳은 공장의 조건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의류와 섬유산업의 여성노동자들은 소방 시설이 없는 건물에서 가연 물질들 속에 파묻혀 지냈다. 밖에서만 열 수 있는 문으로 들어가 밀폐된 방에 갇힌 채, 쉬지도 못하고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씩 일해야 했다.

 

▶ 1911년 뉴욕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 참사로 파업 중인 여성노동자들. 

HBO 다큐멘터리 <Triangle: Remembering The Fire> ⓒHBO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8만 명의 노동자들이 퍼붓는 비를 뚫고 장례 행진을 했다. 그 모습을 25만 명의 시민들이 비장하게 지켜보았다.

 

정부는 여전히 침묵했고, 법은 즉시 바뀌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의 “빵과 장미” 파업

 

제임스 오펜하임은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죽음을 기리며 1911년 12월 “Bread and Roses”(빵과 장미)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 아름다운 구호는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 40개 이상의 다양한 국적, 25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놀라운 연대를 건설했던 1912년 빵과 장미 파업(메사추세츠 로렌스 직물노동자 파업)으로 계승된다.

 

메사추세츠 로렌스는 직물산업 도시로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로 북적였다. 3만2천 명의 여성, 아동, 남성노동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14세 미만의 아동들도 가혹한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혼잡하고 위험한 건물에서 살았고, 여러 가족들이 한 집에 살기도 했다. 아이들의 절반이 6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공장노동자의 36퍼센트가 2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으며, 그들의 기대 수명은 39세였다.

 

1912년 1월, 메사추세츠 주 정부는 드디어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새로운 노동개혁 등록법을 제정했다. 여성과 어린이는 주 54시간 이상 노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로렌스의 전형적인 주간 노동 시간은 56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법에는 줄어든 2시간의 임금을 보호하는 문구가 없었다. 새 법은 곧바로 임금 삭감에 이용됐다.


▶ 영화 <빵과 장미>(켄 로치 감독, 2000) 포스터 이미지


그러자 로렌스의 거의 모든 방직공장에서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올바른 노동시간 단축과 아동노동 금지, 안전한 노동 조건 확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투쟁을 “빵과 장미” 파업이라 부른다.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주의자였으며 노동조합의 지도자였던 로즈 슈나이더만의 유명한 연설, “노동자는 반드시 빵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장미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는 아름다운 시와 투쟁으로 거듭나게 됐다.

 

“빵과 장미”는 2000년 제작된 1990년대 LA의 빌딩 청소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여성이주 노동자들의 실제 투쟁을 다룬 영화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켄 로치 감독)로 재현되기도 했다.

 

“빵과 장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생존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한 것임을 상징한다.

 

행진 또 행진!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세계 최고의 자살률, 아동과 청소년의 수면 부족,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 과로사, 최하위 수준의 성평등 지수… 2017년 3월 8일, 이곳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빵과 장미” 모두 필요하다.

 

“틀에 박힌 고된 노동을 하는 그들의 영혼은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여성이 봉기한다는 것은 인류가 봉기한다는 것.

더는 틀에 박힌 고된 노동과 게으름, 한 명의 안락을 위한 열 명의 혹사는 없다.

삶의 영광을 함께 누리자. 빵과 장미, 빵과 장미”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빵과 장미> -제임스 오펜하임(1911)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두컴컴한 부엌과 잿빛 공장 다락이

갑자기 드러난 햇빛을 받는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 빵과 장미”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우리는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들은 여성의 자식이고, 우리가 또 그들의 엄마이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착취당하지 않아야 하지만

마음과 몸 모두 굶주린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죽었다.

빵을 달라는 아주 오래된 그들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르며 외친다.

틀에 박힌 고된 노동을 하는 그들의 영혼은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여성이 봉기한다는 것은 인류가 봉기한다는 것.

더는 틀에 박힌 고된 노동과 게으름, 한 명의 안락을 위한 열 명의 혹사는 없다.

삶의 영광을 함께 누리자. 빵과 장미, 빵과 장미.

 

※ 존 바에즈(Joan Baez)가 부른 “Bread and roses” 듣기: https://youtube.com/watch?v=LWkVcaAGC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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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doitnow61.tistory.com BlogIcon 늙은도령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에게 잔인했지요.
    도덕적 정당성을 중시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의 재상산을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의외로 좌파 진영에서도 여성의 권리에 늦게 눈을 떴습니다.
    19세기의 자본주의를 기준으로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와 생산관계의 사회적 공유만 중시했던 초기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였고요.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60~70년대를 관통한 패미니즘 운동으로 마르크스주의도, 사회주의도, 자유시장 경제도, 사회민주주의도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재생산의 중요성, 선호의 다양성, 평등주의적 정의, 성담론, 가부장주의의 타파 등등이 여성의 권리에 눈을 떴지요.
    물론 7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고전파 경제학과 신보수주의의 만남이 신자유주의로 뭉쳐지며 인권운동으로서의 패미니즘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패미니즘 운동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요.
    정말 갈 길이 멉니다.
    우리나라는 정의론의 입장에서도, 정치철학과 경제철학, 사회철학, 교육철학 면에서도 패미니즘의 가치를 무시합니다.
    여성의 날을 맞아 갈수록 악화되는 여성의 권리에 우려를 표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최고의 단계에 오르려면 반드시 패미니즘 운동이 주류로 떠오르는 시기가 10년은 계속돼야 합니다.
    그런 날을 기대합니다.
    2017.03.08 21: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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