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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을 강요받는 사람들을 위한 셀프 디펜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존엄한 인간으로 노동할 권리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활동성 좋은 바지를 고르고, 검은색 티셔츠를 꺼내 입는다. 티셔츠에는 KMG(Krav Maga Global) 로고와 INSTRUCTOR 글자가 큼직하게 인쇄돼 있다. 내가 셀프 디펜스 강사임을 알려준다. 준비한 테크닉들을 파트너와 최종 연습해본다. 공격자 역할을 하는 파트너는 큰 가방에 쉴드와 손미트, 스펀지 막대, 전완 보호대, 연습용 칼을 챙긴다. 나는 수업안을 다시 한 번 훑어본다.

 

셀프 디펜스 강의는 기본 강사 두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상황을 보여주고 이해시키고 방어와 반격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공격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좋은 파트너는 ‘나쁜 놈’이 되는 연습을 한다. ‘나쁜 놈’들의 행동과 태도를 공부해서 연습한다. 욕설을 배워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최대한 다치지 않게 급소를 맞고, 넘어지도록 움직임과 장비를 연구하고 관리한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제대로 ‘나쁜 놈’이 되어야 학생들이 셀프 디펜스를 잘 배울 수 있다.

 

갑자기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강의실 문을 열었다. <알바파워업스쿨>에 참가한 알바노조 예비 간부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한다.

 

이 글은 지난 1월 21일 알바노조 <알바파워업스쿨>에서 진행한 셀프 디펜스 베이직 150분 수업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알바노조 셀프 디펜스 수업  ⓒ스쿨오브무브먼트

 

서비스직 알바 노동자를 위한 셀프 디펜스

 

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수가 비정규직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흔히 ‘알바’라고 불린다.

 

“알바니까 진상손님이 와도 참습니다. 회사는 너 왜 이렇게 손님에게 불친절하냐. 손님은 막말을 하지만, 욕을 하지만, 여성이라고 무시를 하지만, 회사는 그래도 손님한테 그게 뭐냐고 이야기합니다.” ―맥도날드 크루 <알바노조, 알바K의 이야기, 27편>

 

알바노동자들은 불안한 고용 상태에서 매일 매시간 낯선 사람들을 대면하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친절할 것을 강요당한다. 이것은 사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가 뒤집어 놓은 우선순위다. 그래서 반드시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또, 낱낱의 개인이 아니라 노조라는 조직으로 함께 맞서 싸울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셀프 디펜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셀프 디펜스는 관찰, 판단, 말, 표정, 몸짓, 행동 등 나를 안전하게 하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셀프 디펜스는 육체적인 보호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스캐닝(scanning)

 

많은 알바노동자들이 낯선 사람들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한다. 이 경우에도 스캐닝은 중요하고 유용한 셀프 디펜스 요소다. 스캐닝은 주변을 잘 인식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에 대한 인지 역시 스캐닝이다.

 

대화 제스처

 

▶ 대화 제스처: 두 손을 포갠 자세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화 제스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위험 징후에서 사용한다. 상대에게 경계하고 있다거나 방어를 하겠다는 의도를 보이지 않고 방어 태세를 갖추는 테크닉이다.

 

1) 두 손을 포갠 자세: 두 손을 포개어 배 위에 둔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을 배 위에 두고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개는 게 기본이다. 공손해 보이고 경청하는 자세와 같다. 그러나 매우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왼손을 방어용으로, 오른손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2) 자유롭게 손을 쓰는 자세: 말하면서 손을 들어 사용한다. 대화할 때 손을 많이 쓰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미 손을 올리고 있는 것이 방어할 때 훨씬 더 신속하고 유리하다.

 

중재 제스처

 

대화 제스처 상황보다 더 위험을 느낄 때 사용한다.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흥분을 가라앉히거나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테크닉이다.

 

1) 진정과 화해 의도: 자신과 상대를 모두 진정시킨다. 상대의 위협, 공격, 공격성을 상대에게 확인시킨다. “왜 그러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실제 물리력 사용을 시도한다면, 방어와 반격의 태세로 전환한다.

 

2) 곤경에 처한 방어자: 상대가 행패를 부리거나 곧 폭력을 행사할 것처럼 보일 때, 상대와 거리를 벌리며 두 손을 펼쳐 어깨 높이 정도에서 충분히 앞에 놓는다. 상대와 나 사이에 경계선을 치는 것과 같다. “진정하세요”, “그만하세요”, “하지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이 상황을 볼 수 있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CCTV 녹화를 통해서 당신을 곤경에 처한 방어자로 인식시킬 수 있다.

 

학생 인터뷰


▶ 중재 제스처  ⓒ스쿨오브무브먼트


Q 크라브 마가 테크닉을 사용해본 적이 있나요?

 

A “네. 중재 제스처를 사용해봤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환자분들의 병실로 찾아가 직접 대면해서 여러 약들을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입니다. 동료들이 선호하지 않는 일 중에 하나죠. 종합병원에서는 여러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응급실만큼 심각한 경우는 별로 없지만, 임신한 약사가 환자에게 뺨을 맞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루는 제가 관상동맥 중재술 병력이 있는 50대 남성 환자분에게 약을 건네 드리며 수술 전에 잠시 끊어야 하는 약들을 알려드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약봉지를 제 눈앞에서 위협적으로 들이대고 마구 흔들면서 “그럼 약을 따로 포장하지! 왜, 내가 무슨 약인 줄 알고 헷갈리게 이렇게 포장해와!” 라고 소리쳤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두 손이 가슴쯤으로 올라가며 살짝 물러섰습니다. 그때 수업 시간에 배운 중재 제스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더는 물러나지 않고 안전한 거리에서 들어 올린 손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따로 포장하면 약을 따로 두 봉지를 드셔야 하고, 그러면 더 불편하실 텐데요.” 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옆에 있던 가족 분들도 말리셔서 잘 해결됐습니다.

 

병원에서는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한 지침이 없습니다. 환자는 고객이고, 고객을 소위 공격자 취급을 해서는 안 되니 거의 가만히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배운 대로 정말 제스처와 말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를 대면하는 일이 힘들지 않게 되었어요. 대처법을 알고 있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분위기 좋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제3자 방어와 훼방꾼 보내기

 

▶ 제3자 방어, 동료와 안전하게 이동하기 ⓒ스쿨오브무브먼트


제3자 방어는 충돌이 발생하려는 둘 사이에서 동료를 보호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수업에서는 동료를 보호하는 방법과 당황해서 얼어붙었거나 흥분해서 움직임이 굼뜨고 판단력이 흐려진 동료를 보호해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을 교육했다.

 

제3자 방어에서 ‘동료와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이 움직임의 원리로는 ‘훼방꾼 보내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훼방꾼은 동료와 달리 위험인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훼방꾼 보내기를 할 때는 훨씬 더 주의 깊은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

 

칼 공격을 방어하는 셀프 디펜스

 

2016년 12월 14일 새벽,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50대 남성 손님이 35세 알바노동자를 살해했다. 이 손님은 숙취해소 음료를 사려다가 알바노동자가 봉투 값을 달라고 하자 격분하며 집에서 칼을 가져와 그를 찔렀다고 한다.

 

욕설, 난동은 편의점 알바의 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바노조가 전,현직 편의점 알바 36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2016년 11월),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의 폭언/폭행 경험율은 68퍼센트로, 세 명 중 두 명은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편의점 안전관리 수칙이라든가 비상시 매뉴얼이 없다. 도둑이 들거나 범죄 현장이 되었을 때 대처방법, 화재 등 자세히 인수인계 받은 적이 없었다.”(뉴시스, 편의점의 늪?, 2016년 12월 19일자)고 말한다.

 

안전한 거리 만들기와 도움 요청

 

칼을 든 공격자를 방어할 때는 최대한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공격자는 표적에 쉽게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고, 우리는 귀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유용한 일상용품이 곁에 있고 활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의자나 가방 같은 일상용품은 방패처럼 사용할 수 있고, 긴 우산이나 대걸레는 막대기처럼 활용할 수 있다. 열쇠나 동전, 휴지 같은 작은 물건들은 얼굴(눈)을 향해 던지기에 좋다. 이런 일상용품은 바로 곁에 있어야 쓸 수 있고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미리 사용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응급처치나 등반훈련처럼 미리 연습해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112에 신고할 비상벨이 있다면 누르고, 직접 112 긴급 통화를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그러나 직접 할 수 없다면 “저 사람이 칼로 찌르려고 해요!” “칼이 있어요! 도와주세요!” “112에 신고해주세요!”라고 분명하고 강력하게 외쳐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고, 그들이 당신을 도와 경찰에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레귤러 킥

 

가장 쉽게 찰 수 있는 킥의 종류로 위쪽 방향과 앞쪽 방향으로 빠르게 차는 킥이다. 낭심(음낭), 명치, 턱 등 급소를 차는 것이 좋다. 다리는 팔보다 더 강하고 더 멀리 뻗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킥으로 방어하는 것이 낫다. 킥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에 있어야 한다. 이 거리는 공격자가 우리를 찌를 만큼 충분히 가까운 거리로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찰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 레귤러 킥   ⓒ스쿨오브무브먼트

 

360디펜스와 팜 힐 스트라이킹

 

360디펜스는 갑자기 몸을 향해 뭔가 오면 손으로 쳐내는 본능적 반응을 발전시킨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접근과 접촉, 공격을 막는데 사용한다.

 

팜 힐 스트라이킹(palm heel striking)은 손을 펼쳐 손바닥의 딱딱한 아래 부분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내 손을 다치지 않고도 빠르고 강하게 공격할 수 있다. 360디펜스로 칼 공격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턱과 얼굴을 향해 팜 힐 스트라이킹을 강하게 날린다.

 

대체로 칼을 들고 찌르는 사람은 단 한 번 찌르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찌른다는 것이 입력돼 있다. 그래서 방어와 반격을 동시에 하는 것이 좋다. 충돌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공격자가 여러 차례 찌를 수 없게 된다.

 

사건의 종료

 

위험 현장에서 빠져나와 안전하게 피신하거나, 공격자가 포기하고 도망치거나, 우리의 방어와 반격이 성공해 공격자를 쓰러뜨리거나, 경찰이 출동해 공격자가 체포되는 것, 이런 결과로 더 이상 우리가 공격당하지 않는 것이 사건의 종료다. (그 뒤에는 옷을 들춰 온 몸을 구석구석 잘 살펴봐야 한다. 초긴장, 흥분된 상태에선 통증을 못 느끼기도 하고, 혈관과 근육 모두 수축돼서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당장은 피가 많이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설사 칼에 찔렸더라도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돈보다 사람이 중시되는 사회를 위하여

 

“친절을 강요받는 사람들을 위한 셀프 디펜스” 부분에서 ‘친절’로 포장된 제스처 안에서 발휘할 수 있는 셀프 디펜스 기술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칼 공격을 방어하는 셀프 디펜스”에서는 ‘살아남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친절함을 강요하는 것 자체, 사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자체가 진정으로 변해야 될 문제다.

 

셀프 디펜스 수업이 무력감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면, 노동조합 활동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노동할 권리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바주제에 노조 하냐?’ 이런 말 참 많이 들었습니다. 알바니까 노조 하겠습니다. 알바니까 노동운동 하겠습니다…. 우리는 존엄하다. 알바 노동자는 존엄하다. 알바도 노동자다. 6030원짜리 기계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싸우겠습니다.” ―맥도날드 크루 <알바노조, 알바K의 이야기, 27편>

 

알바노동자들과 알바노조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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