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비혼은 내게 실존적 문제이다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선천적 비혼주의자



외롭지 않겠어요?

 

나는 비혼(非婚)주의자다.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면 대번에 돌아오는 반응은 “외롭지 않아요?” 혹은 “나중에 외롭지 않겠어요?” 이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결혼과 출산을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일장연설이 늘어지기도 한다. 매번 같은 질문과 일방적 훈화를 당하고 나서 나름대로 맞받아치는 레퍼토리가 생겼다. 때로는 대답하는 척하면서 내 쪽에서 다다다 몰아붙이기도 한다.

 

“왜 비혼은 꼭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세요? 기혼은 안 외로운가요.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예요. 노후가 문제라면 남편에게 노후 보살핌을 받는 여성이 얼마나 되나요? 혼자 사는 여성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통계도 있어요. 저는 결혼을 거부할 뿐이지, 끌리는 상대가 있으면 그때그때 연애도 하고 동거할 거예요. 굳이 결혼해야만 함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제게는 사랑스럽고 고마운 동물 가족들이 있답니다. 지금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살 거고요. 가족이나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야 해요.”

 

비혼주의라고 하면 으레 외로움 따위 느끼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거나 독립적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는데, 나는 강인은커녕 물렁물렁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다. 어둠, 고요, 냉장고 소리, 시계 초침 소리, 무서운 예감, 나 홀로와 같은 나열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혼자 살 때는 밤마다 스탠드 하나는 꼭 켜놓아야 잘 수 있었다. 겁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생활을 공유했던 동생의 존재도 내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각자의 침대가 있었지만 굳이 좁은 침대에 포개져서 잠들었던 시간이 쌓이면서, 혼자보다는 둘이 잠자고 밥 먹고 생활하는 게 익숙해졌다. 혼자일 때에도 나는 보이지 않는 타인의 빈자리를 느낄 만큼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는 게 자연스럽다.

 

부모님이 이혼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

 

한때는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결혼뿐이라고 믿어서 결혼을 꿈꾸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교제는 결혼이라는 화두가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들어왔던 계기였다. 처음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나를 보자고 했을 때, 남자친구는 나에게 자기 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일렀다. 어머니가 여태까지 자기가 만났던 두 명의 여자친구 모두를 싫어했다고. 첫 번째 여자친구는 연상이어서, 두 번째 여자친구는 키가 작고 통통하다는 이유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스물한 살의 나는 이런 다짐을 했다. ‘꼭 귀염받는 여자친구(미래의 며느리)가 되어야지!’


▶  낯선 나  ⓒ그림: 칼리

 

긴장하며 찾아간 식사 자리. 처음 마주한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만남은 무척 어색하고 홀로 분주해지는 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여자의 도리’를 배워왔기 때문일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밥을 먹자마자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어머니가 과일을 깎아주신다고 할 때도 여유롭게 앉아있는 남자친구나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 혼자만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내가 지금 과일을 깎겠다고 해야 되나? 오버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너무 눈치 없어 보이면 어떻게 해.’ 내 안에서는 무수한 목소리가 윙윙거렸고, 결국 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깎아주신 과일을 먹었다.

 

며칠 뒤 남자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여자는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와의 교제를) 잘 생각하라고 말했어.” 내가 그렇게 예쁜 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과일을 더 적극적으로 깎겠다고 할 걸, 조금 더 상냥하게 웃을 걸…’

 

그 뒤 남자친구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내가 몇 번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나를 향한 시선은 더욱 비틀어졌다. 남자친구에게 대놓고 “너는 왜 굳이 걔를 만나냐”는 말을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가만히 부모님 얘길 듣고 있다가 내용을 나에게 전달한 남자친구도,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으레 판단한 그 부모님의 태도도 무례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이혼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 ‘나중에 너네 시집갈 때 상대 집에서 뭐라고 생각하겠니. 너희에게 정말 미안하다.’ 괜한 염려라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말씀이 어느새 나를 찌르고 있었다.

 

환영 받는 ‘예비 며느리’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한 살 연상 남자친구를 만났다. 사귀고 얼마 뒤 그와 동거를 시작했는데, 몇 달 뒤 남자친구 어머니가 우연히 우리의 동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예비 며느리’가 되었다. 하루는 어머니에게 네 통 넘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내가 안 받으니 내 동생에게까지 전화해서 언니가 연락이 왜 안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중에 전화하니까 “네가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내가 오해하잖니” 라고 말문을 여시고, OO은 출근 잘했냐고 물어보았다. 아들에게 직접 물으면 될 것을 굳이 나와 동생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게 불편했지만,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어느 날에는 그의 어머니가 다짜고짜 우리 카페에 찾아와서, 요즘 자신이 아들이랑 사이가 안 좋다면서 가족이 행복하려면 중간에 있는 여자가 잘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여자가 욕먹는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했던 건, 그의 어머니가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그의 전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알고, 쉽게 이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엄마 밑에서 딸이 뭘 보고 자랐겠냐고 그를 타박했다고 한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각방을 썼음에도 참고 견디며 이혼을 하지 않았던 그의 엄마 입장에서, 타인의 이혼은 너무나 가볍고 무책임해 보였나 보다. 나는 그의 전 여자친구 얘길 듣고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너와 헤어졌을 거야” 라고 남자친구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물한 살의 내 모습이 이입됐기 때문이다. 내 말에 그는 전 여자친구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전 여자친구는 자주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집 그렇게 이상한 집 아닌데, 나도 사랑받고 자랐는데…”

 

나의 부모님도 이혼했다. 엄마에게는 여러 명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며느리 환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드디어 나는 못마땅한 존재가 아닌 환영받는 ‘예비 며느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있는 그대로 예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미움을 받아도, 예쁨을 받아도 그 관계에 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살뜰해 보이는 관계 속에 처음부터 나는 없었다.

 

부모님은 틀렸다. 내가 결혼하기 힘든 이유는 부모님이 이혼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 자체에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확고하게 결혼 생각을 접었다. 한때는 진지하게 결혼도 생각했던 그였지만, 관계가 확장될수록 비혼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그는 변화된 내 태도와 신념에 서운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서운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실존적 문제에 버둥댔다.

 

당시에 매일 되뇌었던 말 - 나는 부모님의 간섭이 싫어서 집도 나오고 자유롭게 사는데, 왜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런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거지. 그를 사랑하는 것뿐이지 그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건 아닌데. 누군가의 자식이 아닌 개인으로 온전하게 사랑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 내게로 흘러가는 길  ⓒ그림: 새벽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

 

며칠 전 가까운 지인의 청첩장을 받았다. 누구의 장손, 누구의 장녀. 각자 부모님의 이름이 크게 박힌 청첩장이었다. ‘집안끼리의 만남’이라고 규정된, 결혼의 억지스러운 조합을 느꼈다. 물론 그 조합이 서로 존중하고 고유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관계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십 대 초반부터 며느리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두가 평온한 그 부엌에서 혼자 과일을 깎던 남자친구 어머니의 모습에 내가 겹쳐지는 것도, 손님으로 가서 남자들 중간에서 혼자 어정쩡하게 고요한 폭풍을 맞았던 내 모습도, 그런 나를 자연스럽게 여겼던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들, 나를 둘러싼 정상적인 공기가 싫었다.

 

내가 비혼을 고집하게 된 데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다. 동거를 경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대로 함께 살아도 충분하다고 여기게 된 점, 동물가족과 살면서 종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갖게 된 점, 지구를 위해서라도 인간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생긴 점, 반항적인 성향 탓에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은 점,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된 점. 그리고 역할극이 아닌 내 고유의 존재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지금 내 주위 환경의 영향도 크다.

 

이미 나에게는 식구가 있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종종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충만한 관계 속에 나는 존재한다. 사랑받는 며느리, 싹싹한 아내, 이혼한 집 딸, 그 무엇도 아닌 내 모습 그대로.  (홍승은)  feminist journal 일다 ILDA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