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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여성어민들의 네버엔딩스토리

<노년여성의 경험을 잇다> ‘오래된 새 삶’의 길을 찾아


※ 노년여성들이 살아온 생의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이 역사 속에 그냥 묻히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며 다음 세대와 교류할 수 있도록, 노년여성을 만나 인터뷰해 온 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에코페미니즘의 세계를 열어준 나의 스승들

 

15년 전, 나는 에코페미니스트 연구자로 우리 삶 속에 깃든 여성들의 생태적 지혜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드러내고자 새만금 간척사업의 현장 중 한 곳인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갯살림을 해 온 여성어민들의 구술생애사를 채록하고 갯벌생태계와 새만금 사업 반대 주민운동을 참여 관찰했다.

 

▶ 새만금 개발 이전, 갯벌에 의지해온 여성어민들의 갯일.  ⓒ윤박경

 

“나는 이 생합 나오는 것이 그렇게 사랑스럽다구. 이상하게 생합만 나오면 그 소리가 전 그렇게 사랑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생명이잖아요? (…) 나는 생합 나오면은 ‘아휴, 너밖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나와줘서 고맙다.’ 내가 그래유.”

 

“인자 바다는 나의 행복이라고 정말,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바다 덕이라고, 정말. 살면서 너무 힘들어가지고 (…) 우리 신랑이 날마다 집의도 안 들어오고 돈 벌어 갖고 전부 술 먹고 바람피고 노름허고 그냥 미쳐 갖고 다니네, 그러니 나는 어떠겄는가, 잉? 뚜들어 맞고 살고. (…) 그 세월을 그니까 바다 때문에 살었잖아. 바다 나가면 편안해. 너무 편안하고 평화로워. 딱 다섯 시간 동안, 그때는 진짜로 행복한 시간이야. 밤에 잠잘 때 하고. 그래야 바다 가서 웃고 그러지, 집에서는 웃을 수가 있간이?”

 

새만금 여성들은 갯벌과 온몸으로 교감하며 살아온 갯살림으로 에코페미니즘의 세계를 다시 열어 준 나의 스승이자 진정한 살림꾼들이었다. 나는 여성어민들에게서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생명감수성, ‘삶/생존을 놓고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생존(자급)의 관점,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살림의 윤리’를 배웠다. 한평생 갯벌과 함께 살아온 여성어민들의 일상과 갯일을 통해, 여성들의 생태적 지혜와 갯벌생태계에 대한 관리 체계도 배웠으며, 국가 주도의 막개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놀라운 힘을 보았다.

 

이 연구 결과를 2004년에 “새만금, 그곳엔 여성들이 있다”라는 기획 연재로 <일다> 독자들에게 전했다. 그 뒤로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새만금방조제 끝물막이 공사(2006년 4월 21일)가 마무리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2006년의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그날 이후, 나는 새만금에 가지 않았다. 갯살림이 지속되기를 염원했던 여성어민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차마 그분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어가는 갯벌을 보는 것도 두렵고 미안했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동안 새만금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새만금 갯벌을 봐야 했고, 그곳에서도 새만금 여성어민들과 같은 절박한 외침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이 진행되는 두물머리 유기농지와 낙동강에서, 밀양할매들의 절규에서, 후쿠시마 원전과 영덕, 강정, 세월호 참사의 아픔 속에서도 나는 새만금 갯벌과 여성어민들을 봤다.

 

새만금은 끝나지 않았다

 

▶ 2006년 이전과 2016년 현재 새만금 해창갯벌. ⓒ허철희(상) 윤박경(하)


2006년 이후, 나는 ‘새만금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지역주민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풀뿌리 마을운동과 생활운동을 했다. 여성과 청년들을 녹색삶으로 안내하는 교육과 녹색정치 활동도 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파리에서 열리는 UN기후변화총회를 앞두고 한국의 기후변화 현장을 순례하는 보름 동안의 기후여정길에 올랐다. 거기서 다시 새만금을 만나게 됐다.

 

바닷물이 오가던 갯벌은 말라 육지가 되어 버렸고, 주변의 산들은 갯벌을 메우기 위해 깎여 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바다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던 어민들은 택배기사와 같은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로 내몰렸다. 맨손의 여성어민들은 갯벌이 있는 고창이나 다른 지역으로 새벽에 차를 타고 더 힘들게 조개를 캐거나, 인근 농가에서 일용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새만금 개발이라는 이름이 우습게도, 황량한 황무지로 변해버린 갯벌에는 100년 동안 무상임대를 약속해도 기업들이 들어오려 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였다. 이 방치된 땅들에는 복합열병합발전소로 가장된 화력발전소들이 앞 다퉈 들어서려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새만금 갯벌과 어민들의 삶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기록하는 학자와 시민들이 새만금에 있었다. 특히,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새만금갯벌과 어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갖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 매월 1회 정기적으로 새만금 현지조사를 해오고 있다. 교사와 동화작가, 시민단체 활동가, 학자와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저서팀, 물새팀, 식물팀, 문화팀으로 새만금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새만금이 낳은 귀한 성과다.

 

이들은 ‘새만금 갯벌은 죽지 않았다. 새만금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며 부분적인 해수유통만 시켜도 다시 갯벌과 어촌마을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일한 대안인 해수유통을 하기도 전에, 내부준설로 인한 해양생태계 오염과 교란 문제가 최근 대두되고 있다. 갯벌을 농지나 개발용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방조제 내부를 준설해야 하는데, 준설토(흙과 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석탄재 같은 유해 산업폐기물을 안전성 검토도 없이 바다에 쏟아붓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은 더 큰 환경재앙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신자유주의 “돈(crazy_money)” 개발의 광풍에서, 자존을 지키며 인간과 자연이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래된 새 삶/사회’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새만금 갯벌과 여성어민들의 삶을 되살릴 수 없다고 느꼈다. 갈수록 인류 공동의 자원인 바다와 갯벌, 숲과 들, 바람과 물(지하수), 햇볕과 깨끗한 공기 등의 자연이 사유화되어가고 있다. 공동 자원들이 토건국가와 기업의 개발과 투기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새만금 개발과 같은 파괴와 폭력, 재앙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 지금은 사막화되어버린 장금갯벌은 여성어민들이 갯벌로 나가는 입구였다. (2001년)  ⓒ윤박경


나는 새만금 여성어민들과 다시 만나는 작업이,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생태위기와 삶의 위기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오래된 새 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개발 이전, 새만금 여성들의 갯살림 속에는 갯벌이라는 공유 자원(commons)의 관리 체계와 체험적 앎, 살림의 가치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비전, 그리고 ‘좋은 삶_행복’에 대한 여성적 관점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 이후, 모래사막이 된 갯벌을 부둥켜안고서도 여전히 그곳에서 삶을 지속해 온 여성들의 아픔과 고통, 적응과 대안 모색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모아내고 싶었다. 그러면 ‘잘 사는 것’(발전과 성장)에 대한 공공의 성찰과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에 박힌 생합잡이 기화언니의 모습

 

누구나 살아가면서 삶을 안내해주는 풍경이나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백수 인생을 시작한 올 상반기 내내,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거꾸로 걷는 여행을 다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회색신사들에게 쫓겨 호라박사를 찾아가는 모모와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대화 중에, 막다른 길목에서 카시오페이아는 모모에게 ‘뒷걸음쳐봐’라고 외친다. 앞을 향해서만 가는 우리들에게 거꾸로 가는 것이 빠른 길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이다.

 

그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나 역시 미래를 위해 과거로 뒷걸음질을 쳐봤다. 미래는 현재가 과거가 되어야 오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와 연결함으로써 동시에 미래를 열어갈 길을 발견해보려는 나의 엉뚱한 시도였다. 거꾸로 걷는 여행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여는 풍경 하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로 새만금 여성어민이 갯벌에서 생합(백합조개)를 캐는 풍경이다.

 

2001년, 나는 바다의 물때에 맞춰 살아가는 여성어민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새벽 물때에 그녀들과 갯벌에 나가 생합을 캐곤 했다. 소위 ‘먹물’인 내가 평생을 생합잡이로 살아온 그녀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고, “감” 없는 나의 생합캐기는 허탕을 치며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겨울갯벌에서 망연자실 멍~하게 있다가 생합잡이 여성을 무심코 바라봤다. 춥고 지루하던 참에 그녀의 생합잡는 노하우라도 살짝 엿볼 겸.

 

▶ 오래된 새 삶을 품고 있는 여성어민의 갯살림.  ⓒ허철희


바로 그때 어슴프레 동이 터오며 햇살이 그녀를 비추었다. 하늘과 여성어민, 그리고 갯벌이 하나로 이어지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세계가 ‘훅!’ 하고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박혔다. “멍~”에서 “찌릿!”해지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세찬 겨울바람에 고개 숙여 갯벌에서 삶(생합)을 캐내는 여성어민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지극히 조화롭고 평화로운 하늘과 여성, 그리고 자연(갯벌)의 어우러짐이 성스럽기까지 했다.

 

사진 속 생합잡이 여성어민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 이후, 갑자기 열린 배수갑문에 불어난 바닷물에 쓸려 안타깝게 돌아가신 기화언니다. 새만금 현지 조사를 하는 내내 나는 기화언니의 집에 살았다. 언니와 함께 갯벌에 나가 생합도 캐고 언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자매처럼 지냈다. 오랫동안 그 풍경을 무의식의 저편으로 묻어 버렸는데, 그 풍경이 다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 살림의 풍경에는 새만금의 미래가, 더 나아가 지금 현재의 삶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가 담겨있다.

 

갯벌 할머니들의 삶을 내 인생학교로 정하다

 

노년여성의 생애 속에는 생애주기에 따른 경험이 켜켜이 그려져 있다. 그 삶의 무늬 속에는 각각의 세대를 살아낸 여성들이 갖는 지혜와 통찰이 담겨져 있다. 나는 그것이 “오래된 새 삶”의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잇는다는 것’은 세대로의 전승뿐 아니라, 새로움으로 시작될 수 있는 끝이 갖는 지혜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새로움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며 만들어질 수 있다.

 

내가 2000년대 초에 만났던 새만금 여성들은 당시 50대~70대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이 노년이 되거나 몇몇 분들은 돌아가셨다. 나 역시 당시 30대 초반에서 이제 40대의 중년을 향해가고 있다. 나는 현재, 백수다. 다시 새만금을 만나기 위해, 아니 내 남은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뒀다. 남은 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삶의 환절기에 막막함을 해결하는 길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나는 새만금 갯벌과 여성어민들의 삶을 인생학교로 정했다. 삶의 학력을 쌓을 수 있는 새만금 인생학교를 통해, 나는 새만금 갯벌과 여성어민들의 삶/생명이 다시 되살려지는 길을 찾아볼 것이다. 그 되살림의 ‘오래된 새 삶’을 나 역시 함께 살아가보려 한다.

 

30대 초반에 나는 여성들의 구술생애사를 채록하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지게 하는 것에 데 관심이 있었다면, 40대 중년의 나는 여성의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생존과 진짜 행복한 사회로의 변화를 기획하고 살아내는 현장연구가이자 안내자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이제 오랫동안 미뤄뒀던 ‘오래된 새 삶=자급/자존의 좋은 삶’의 길을 찾으러 자연(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해 온 새만금 여성어민들, 제주의 해녀할망, 섬마을의 할머니들을 만나러 간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많이 헤매겠지만,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언니들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 보려 한다. ‘길 안내를 종료하겠습니까?’ 하는 언니들의 유쾌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날까지!   (윤박경)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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