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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산복도로북살롱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산복도로를 누비는 중구1번 마을버스

 

스무 살 무렵, 이스라엘 공동농장인 키부츠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살렘 여행을 했다. 그 때 한국인 가이드가 산 중턱에 집들이 이어져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아마 부산에서 오신 분들은 이 모습이 익숙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 집이 있는 모습이 낯설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듣기로는 6.25 한국전쟁 때 전국의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산 위로 더 위로 집들이 들어섰고, 그게 지금은 부산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산복도로’는 산 중턱을 쭉 이어서 있는 이차선 도로를 말한다. 작년부터 나는 부산의 이 대표적인 산복도로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공원과 도서관, 그리고 도시에서는 얻기 어려운 좋은 공기와 팔 다리에 근육을 키워주는 수많은 계단을 가지게(?) 되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이런 동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을버스다. 오랫동안 운행된 것이 분명한 중구1번 마을버스에서는 인심 좋은 기사님들과 정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승객이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게다가 롤러코스터 같은 오르막 내리막을 자유자재로, 반대편 차들과 서로 양보하며 운행하는 모습에서 자주 감동한다. 가끔 부산에 여행 오는 분지 출신의 친구들에게는 일부러 이 버스를 관광코스로 포함시켜 주기도 한다.

 

마을버스에서 발견한 책방, 산복도로북살롱


▶ 산복도로북살롱 전경.   ⓒ산복도로북살롱 페이스북


자주 이용하는 이 마을버스의 노선 위에서 어느 날 재밌는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작은 노란 건물의 간판에는 ‘산복도로북살롱’이라고 적혀있었다. 우리 동네 산복도로에 서점이 생긴 것이다. 귀갓길에 들러 보았더니 작은 책방에서 맥주도 마실 수 있고 밤에는 산복도로의 또 다른 매력인 멋진 야경이 책방 창문 너머로 펼쳐졌다. 아직 많은 책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 서가가 텅 빈 느낌도 인상적이었다.

 

책방 운영이 처음이라는 대표님은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들의 교육을 고민하다가, 교육이란 게 단지 내 자식들에게만 향하는 관심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문화적 일들을 벌이는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신중하게 하나씩 책을 골라 천천히 서가를 채워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잘 몰라서 맨땅에 헤딩중’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굉장히 화통한 친한 동네 아줌마(이런 표현이 좀 죄송하지만)같은 모습이 오히려 신선했다. 산복도로북살롱을 시작한 계기처럼, 정말로 거의 매주 책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꾸준히 열고 계셔서 늘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요즘 나는 ‘동네가수’라는 이름으로 여러 곳을 찾아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정작 우리 동네에서 노래하게 될 기회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산복도로북살롱의 대표님은 서점 공연답게 내가 작년에 만들어서 공연 다니며 앨범과 함께 팔고 있는 손바닥 소설집 <작은집>의 북콘서트를 기획해 주셨다.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다정한 중구1번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복도로를 지나면 도착하는 곳에서 ‘동네가수’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공연을 하게 되니 마을버스에 탄 것처럼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노래를 부르는 내 뒤로는 야경이 펼쳐졌다. 노래를 들으러 와준 관객들에게 풍경을 양보할 수 있어서 기뻤다. 동네 책방 공연이었지만 관객들 중에는 서울에서 온 여행자, 대구에서 와준 부부, 또 끝나고 바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들고 온 친구들이 있어서 작은 책방의 보이지 않는 공간이 넓어졌다. 책방 대표님과 책모임을 꾸준히 하고 계신 분들도 함께 해 주셨는데, 오순도순 모인 관객들은 야경이 예뻐서인지 모두들 표정이 예뻐서 나는 그 얼굴들을 풍경처럼 보게 되었다.

 

‘누구나 다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 대표님은 내 공연 끝나고 ‘산복도로북살롱’을 그동안 찾았던 작가, 음악가 분들도 그와 비슷한 맥락의 얘길 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알고 보면 모두가 한 길 위에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 저녁이 되면 산복도로북살롱 창문으로 멋진 산복도로 야경이 펼쳐진다.  ⓒ촬영: 윤규택

 

故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며…

 

나는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고 나서, 추모하는 마음으로 계속 외던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않고>라는 시를 공연 중에 낭독했다. 우연히 읽게 된 시가 어르신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연을 찾아주신 분들의 표정에서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공연답게 노래 한 소절, 이야기 한 자락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뜨고, 입 꼬리가 올라가는 모습 하나 하나가 다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산복도로북살롱의 대표님이 공연 중 내가 낭독한 시가 담긴 그림책을 선물로 주셔서,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연 며칠 전 페이스북에 내가 그 시를 올린 것을 보고 세심하게 미리 준비해 두신 것이다. 3집 앨범 제작을 위한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후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앨범의 이름을 <되고 싶은 노래>라고 정하게 된 것도, 이 시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3집 앨범 <되고 싶은 노래>는 시의 마지막 문장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에서 따 온 것이다. 단 한 번도 ‘망설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며 매일같이 헤매었다. 삼십대 중반에서야 찾게 된 노래라는 도구는 그런 ‘망설임’ 속의 잠깐의 ‘분명함’이 되었다. 노래는 또, 사람들 앞에서 부르고 나누면서 삶을 다짐하게 만들어 준다.


▶ 산복도로북살롱 대표님과 함께.   ⓒ촬영: 윤규택

 

내가 사는 굽은 산 길 위에 작은 책방이 생겨서 동네가수라고 나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며 ‘되고 싶은 삶’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마을버스처럼 정겨운 삶,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는 삶, 답을 계속해서 구하기 위해 몸을 바지런히 하는 삶, 작은 마음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삶,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꺼내고 그 마음들을 서로 웃으며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삶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이내)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 프로젝트 밀어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tumblbug.com/songs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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