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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 이대로도 괜찮아요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이해받는다는 것



※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작년 여름, 낯선 할아버지로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방 밖에 나오지 않는 중학교 3학년 손주를 어떻게 해야 좋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분이었는데, 멀리 춘천까지 알아보고 전화를 주실 만큼 절실한 마음이 느껴져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심각하게 걱정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손주가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함께 우리 카페에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상기된 목소리로 그럼 손주와 며느리에게 물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곤 전화를 끊으시더니,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얼마 후에 어떤 중년 부부가 카페에 찾아왔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큰아들이 학교폭력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학교 밖에서도 아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이 조금 느리고 여린 편이어서 또래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믿었던 선생님조차 아들을 이상한 아이 취급하니까 자신들도 서서히 ‘우리 아이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학교폭력을 당한 아들의 문제라니, 부부의 말을 듣다가 울컥한 나는 두 분에게 오히려 아드님이 건강한 것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학교의 강압적인 위계질서, 무한경쟁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청소년기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내 부적응이 오히려 새로운 일터와 일상을 창조하는데 훨씬 큰 영감과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들의 존재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았다며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뒤로 아들과 함께 카페에 종종 찾아오셨다. 처음 만난 그 아들은 나와 팀원들에게 “사랑한다, 벌써 정든 것 같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정도로 정과 사랑이 많은 친구였다.

 

그 뒤로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직접 카페에 찾아오거나, 청소년의 부모님이 아이를 참여시킬 프로그램이 없냐고 문의해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혹은 나의 자녀가), 이대로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느꼈다.

 

학교 밖, 사회 속 청소년

 

▶ 인문학카페36.5º 방명록 중에서  ⓒ 홍승은


나는 열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하면 으레 사고를 치거나 지나치게 외향적이어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학교가 개개인을 담지 못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각기 다른 성향과 사정이 있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문화와 폭력적인 학교 내 관계가 적응되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틀린 문제만큼 손바닥을 맞아야 했던 과학시간, 귓등과 목을 어루만지던 남자선생님, 화장을 단속한다고 반 아이들의 얼굴을 휴지로 벅벅 문지르고, 렌즈를 꼈냐며 눈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벌려서 확인하던 학생부 선생님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건 덜 맞으려고 열심히 과학 공부를 하고, 화장하고 렌즈를 끼고 싶은 걸 참고, ‘변태’ 선생님을 이리저리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 얼굴, 교복, 운동화, 양말, 코트색깔, 가방색깔까지 단속했던 또래 선도부는 선생님들과 닮은 모습으로 나를 압박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무시했고, 소위 잘 노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무시했다. 이도 저도 아닌 학생이었던 나는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그 분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막연하게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이 쌓였다. 다르게 살고 싶었다.

 

당시 아빠는 나에게 “학교 따위 안 다녀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중에서야 아빠가 뒤에서 내가 혹시 학교폭력 때문에 너무 상처를 받은 건 아닌지, 사회에서 계속 도태되면 어떡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 카페에 전화를 주었던 할아버지와 카페에 찾아온 부모님의 마음은 그때의 내 부모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드문드문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라 주로 집에서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시간이 많이 생겼지만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검정고시’와 ‘대입’ 아니면 ‘취직’ 뿐이었다. 학교를 나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비슷하게 주어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갔던 심리상담소에서 나는 “음, 너무 이상적인 것만을 쫓는 전형적인 피터팬 유형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투철한 경영학도였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꿈이었던 당시 남자친구에게는 “현실적이고 성실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네요”라는 평가가 따랐다. 그는 날 보며 ‘역시 너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고,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땐 이상적이어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밥 먹듯 들었던 20대 중반. 잠시 인턴 생활을 해보고 취직을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맞지 않은 걸 느끼고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 대학생활, 심지어 시민단체나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느껴졌던 수직적 관계의 불편함과 얼른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성과주의에 질려서 무리를 이탈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불평 덩어리인가보다’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이해받을 곳이 없었다.

 

우리 같이 흔들리며 살아보자

 

▶ 인문학카페36.5º 입간판 - 공감으로 곁을 내주기. 


안 가본 단체가 없을 만큼 오랜 시간동안 ‘이해받을 곳’을 찾아 서성이다가, 우연한 기회에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활동을 했지만, 맞는 곳이 없어서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는(그래서 무척 우울해하는) 청년들.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니 ‘나 이대로 괜찮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맞는 곳을 찾아 헤매지 말고, 스스로 창조하고 싶었다.

 

그렇게 2013년에 인문학카페36.5º를 오픈했다. 예민한 자신을 조금 덜 의심하고, 나만의 이유로 일하고, 서로 존중하며 관계를 맺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만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 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드디어 나는 ‘학교 밖’에서 온전한 자리를 찾은 걸까? 카페를 오픈한지 햇수로 4년차, 요즘도 나는 종종 무기력함을 느끼곤 한다. 돈이 없으면, 월세가 오르면 언제든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무기력과 불안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긴 어려울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나 같은 불안이 있더라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그건 사람들과 ‘함께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공간에는 당시의 나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태까지 이뤄놓은 게 없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중학생, 청소년기의 연장선처럼 끝없이 주어지는 과업에 숨 막힌다는 대학생, 직장생활이 너무 답답해서 그만두고 나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서 한없이 우울해진다는 청년, 불평등한 걸 알지만 당장 명절에는 기름 냄새 질리도록 맡으면서 시댁에서 전만 부치고 왔다고 하소연하는 여성…. 사람들의 고민과 뒤척임 속에서 내 오랜 고민이 겹쳐진다.

 

돌고 돌아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열심히 서로의 지난 시간을 묻고 듣는다. 사실 카페에 찾아와도 나나 팀원들이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는 말밖에 없다. 학교, 직장, 관습 밖에서도 어떻게든 삶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타협의 수위를 조절해가며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여정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뿐이다. 이 사회에서 무기력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함께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살아갈 힘이 생긴다.

 

며칠 전에는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다 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위안이 돼요”라고 말하며 카페에 온 한 분이 웃다가 울었다.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항상 나에게 맞는 뚜렷한 길을 찾아왔는데, 중요한 건 길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만남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방 안에서 혼자 고민하고 있을 할아버지의 손주가, “사랑한다”고 고백해온 그 친구가, “나 괜찮을까” 라는 생각에 고민하며 잠 못 이룰 사람들이 부디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맨 정신일수록 더욱 무기력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같이 흔들리며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홍승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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