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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재앙, 원전 사고의 기억

<죽음연습> 그린피스 “용납할 수 없는 위험” 캠페인에 참여하며



※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하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눈 이경신 님의 연재칼럼 “죽음연습” 마지막 회입니다. 3년간 꾸준히 소중한 글을 기록해주신 작가님과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난 달 29일, 국내 최대 규모인 140만 킬로와트급 원자력발전소인 신고리 3호기가 최초 임계(우라늄이 중성자와 반응해 연쇄분열 시작)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신고리 4호기도 운영할 예정이며 신고리 5,6호기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187개소 원전단지 중 11개소, 즉 6%만이 6개 이상의 원전을 밀집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고리 원전은 앞으로 설비 용량이 1만 메가와트를 넘는, 무려 10개의 원전이 밀집된 초대형 원전 단지가 될 것이다. 원전의 밀집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핵발전을 안전하다 할 수 있을까?

 

핵발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원전 반대론자들이 위험을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껏 일어난 원전 사고들은 비현실적인 공상이 아니다.

 

1954년 6월 구 소련에서 인류역사상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한 이래 70년 동안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는 원자로 노심용융(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것) 사고가 모두 네 차례 일어났다. 1957년 영국의 셀라필드 원전의 화재, 1979년 3월 미국의 쓰리마일 섬 원전의 냉각탑에서 원자로의 중수가 흘러나온 사건, 1986년 4월 26일, 대기로 1백 60톤의 방사능을 유출시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지진과 해일로 야기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들 수 있다.

 

여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헝가리, 일본 등 대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었을 핵발전소 사고들-핵연료봉 파손, 경수로관 수소 폭발, 원자로 압력 용기의 부식, 폐연료봉 과열, 변압기 화재 사고 등-까지 고려한다면 불안감에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핵발전소 사고가 그 어떤 사고보다 위험하고 두려운 이유는 시공간적으로 긴 시간,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는 사람만이 아니라 전 지구 생태계를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또 대를 이어서도 복구가 쉽지 않은 심각한 피해를 가져온다. 물론 원전 주변 주민들이 겪을 인명과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840만명 넘게 피폭당한, 1986년 체르노빌


▶  강은주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아카이브, 2012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고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참사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 사고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을 대기로 유출시켜 원전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당시 소련은 원자로 터빈 발전기의 관성력을 실험하다고 벌어진 사고라고, 거기다가 작업자의 실수까지 겹쳐 폭발이 일어났다고 공표했다.

 

4월 26일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발전용 터빈에 도달해야 할 증기가 차단되고 냉각펌프에 전달된 전력이 감소함에 따라 냉각수가 줄어들어 온도가 급상승했다. 이어 핵연료의 급격한 분열이 일어나고 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원자로가 폭발해 원자로 덮개가 날아가고 1000톤 가까운 방사능 물질이 대기로 유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 심각한 사고를 곧바로 사고기 인근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인접한 벨라루스에도 숨겼다. 대기로 유출된 방사능 오염물질 70%가 고스란히 벨라루스를 뒤덮도록 진실은 은폐되었다.

 

사고 다음날 사고 원전 반경 3킬로미터 내의 마을주민들이 맨몸으로 대피해야 했고, 며칠 후 30킬로미터 내의 주민들, 방사능 고위험 지역의 주민들도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사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사고 수습에 소방관, 군인, 광부, 시민들이 동원되었고 이들은 얼마되지 않아 목숨을 잃거나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죽어갔다. 살아남은 이들도 평생 고통을 받으며 약으로 연명해야 했지만 희생에 대해서는 찬사 이외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2000년 4월까지 사고 수습에 나선 사람들 5만 5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또 강은주의 자료 조사에 의하면, 당시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만 해도 84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 피해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5천 편 이상의 논문과 보고서를 종합한 알렉세이 야브로코프 박사는 저서 <체르노빌>에서 2004년까지 원전 관련 사망자만도 98만 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했다. 갑상선 이상 등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1백 만 명이 넘고, 그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류 최초 핵단지 연쇄폭발, 2011년 후쿠시마

 

비극적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서서히 망각해갈 즈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지진 해일이라는 자연재해가 야기한 인류 최초의 ‘핵단지 연쇄폭발’ 사고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사상 최대인 리히터 9.0도의 지진이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다. 이어 대지진이 불러온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침수시켜 발전소 전원이 끊겼고 원자로를 냉각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날 저녁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3킬로미터 내 주민들에게는 피난을,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주민들에게는 옥내 대피를 지시한다.

 

다음날인 12일에 1호기, 13일에 3호기, 14일에 2호기와 4호기가 연이어 폭발한다. 이 사고로 격납용기와 건물 외벽이 파손돼 내부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었다. 사고의 등급은 체로노빌 사고와 동급인 7등급으로 분류되었다.

 

동국대 박진희 교수는 사고 6개월 후에 쓴 글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핵발전”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출된 세슘 137의 양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68개 분이며, 요오드 131은 히로시마 원폭 당시의 3배이고, 골수염과 백혈병을 유발하는 스트론튬90은 히로시마 원폭 당시의 3배에 조금 못 미친다고 적고 있다.

 

1호기가 폭발한 날 사고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내의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떨어졌다. 4기가 모두 폭발한 다음날, 정부는 반경 300킬로미터까지 피난을 확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구상했을 지경이었다. 사고 일주일 째 되던 날에는 30킬로미터 반경까지 대피구역이 확대되었다.

 

체로노빌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사고 원전 인접 주민뿐만 아니라 사고 수습에 동원된 군인, 소방관, 경찰, 노동자의 희생이 잇달았다. 2012년 2월 일본 경찰청·부흥청 자료에 의하면 사망자 1만5천853명, 행방불명 3천282명, 대피인원 34만2천509명, 경제 손실 약 220조원이었다. 하지만 누출된 방사능이 인간의 삶과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사능의 확산이 광범위하고 토양, 대기, 해양에까지 심각하게 오염시켰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비록 일본 정부에서 사고 원전의 폐쇄를 결정했다고 해도, 반핵운동가인 이현석이 강은주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발전소 폐쇄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전을 하지 않더라도 핵연료봉을 식히려면 10년 동안 계속 발전설비를 가동해야 한다. 발전소를 뜯는 데만도 20,30년이 걸린다고 한다. 과학잡지 <네이처> 2011년 4월호에서는 토양 오염 제거를 포함한 원자로 폐기 완료에 100년이 소요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폐로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폭될 위험이 높아 희생자는 계속 늘어갈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가 거듭될수록 재앙의 수위는 높아져 갔지만, 사고로 인한 희생자의 수,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원전 찬반 입장에 따른 논란만 분분하다. 다만 원전 사고의 결과가 인류 및 지구 생태계에 재앙이라는 것만 확인해줄 따름이다.

 

무엇보다 원전 사고는 기계적 결함뿐만 아니라 사람의 착각, 부주의, 그릇된 판단, 조작 실수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언제든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재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의 재’와 핵폐기물을 생성하는 원전


▶ 정남구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시대의창, 2012. 


그렇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핵발전소가 위험하지 않은 걸까?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재’와 핵폐기물 문제를 생각한다면 핵발전소의 안전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0만 킬로와트의 현대식 원자로가 하루에 우라늄235 3킬로그램을 태운다고 한다. 1년 동안 소비되는 우라늄의 양은 1천 킬로그램이 넘는다. 그렇다면 원자로가 1년간 생성한 ‘죽음의 재’, 즉 방사성 물질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1천개 이상이 방출한 방사성 물질보다 더 많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재’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저준위 폐기물(장갑, 작업복, 신 등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와 같이 방사능 농도가 높은 폐기물)을 포함한 핵폐기물의 위험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가동 중인 원자로만 아니라 핵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도 위험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가 약 1만 1천 톤이나 쌓여 있고 해마다 700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 핵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방사선과 열을 계속 내뿜는 사용후 열연료는 냉각수 안에 3년간 식혀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고준위 핵폐기물에서 핵연료로 쓸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재처리한다면, 쓰레기가 좀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은 핵쓰레기는 깊은 땅 속 어딘가에 파묻어 방사능이 약해지길 10만 년은 기다려야 한다. 저준위 폐기물의 경우도 반감기가 3백년은 된다고 하니 핵쓰레기가 하루 아침에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가동하고서도 핵폐기물 최종 처리장을 확보한 곳이 핀란드와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사실이다. 해결되지 않는 핵폐기물 문제만 보더라도 원전에 의존해 전기를 얻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부터도 교훈 얻지 못한 한국 정부

 

핵발전은 복잡해서 인간이 완벽하게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원전 사고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사후 대책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대책도 없이, 원전 정책을 마구잡이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방송과 언론 매체를 이용하고 교과서까지 손보면서 원자력 에너지의 긍정적 이미지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서조차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이야말로 수출 동력이며 인류 복지와 녹색 성장을 위한 길이라고 선전하며 2024년까지 34기, 2030년까지 40기로 원전을 늘려가겠다면서 원전 사랑을 과시했다. 정부는 바뀌었지만 지금도 원전에 의존하는 정책은 변함이 없다. 그린피스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국내 원자력 홍보 예산이 무려 2백억이 넘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원전 사고 방재대책 예산은 44억5천 수준에 그쳤다.

 

현재 총 2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원전 밀집도가 높은 나라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난다면 그 어느 곳보다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 반경 30킬로미터에는 16만 명이 살고 있었지만, 고리 원전의 경우 반경 30킬로미터 권역에는 3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  사사키 다카시 저, 형진의 역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돌베개, 2013.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제1원전 주변 주민들의 일상은 완전히 변했다. 여기저기로 옮겨지다 죽음을 맞은 요양병원 안의 노인들, 방사선 위험에 대한 이견 다툼과 피난 관련 갈등으로 이혼하는 부부들, 유기농업에 종사하며 친환경 마을을 꾸려온 사람들의 자살, 방사능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이주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 원전 사고 수습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들, 피난 후 직장을 잃은 사람들 등.

 

경계구역에서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되면서도 죽을 때 죽더라도 살던 곳에서 죽겠다며 피난을 거부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평생 살던 곳을 등지고 떠나서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막막할 것이다.

 

사사키 다카시의 재난일기를 보고 그냥 넘기기 어렵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에 살고 있는 사사키 다카시는 원전 사고 당시 정부의 피난 지시를 거부하고, 치매인 아내와 함께 자택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 <모노디아로그스>에 매일매일 재난일기를 기록했다.

 

“오늘 오후 6시 현재의 환경 방사능 수치가 0.60으로 기억하는 한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을 무턱대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수치 위에 평상치는 0.05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수치로도 평상치의… 60 나누기 5… 12배.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조차 모르는 불안. 그래서 우선은 예전의 평상치로 돌아가기를, 예전의 평화롭고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13년 4월 15일 일기, 사사키 다카시,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 2013)

 

방사능 수치가 최저치로 내려와서 0.60밀리시버트(mSv)라면, 이틀 만에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정한 (자연방사선과 의료방사선으로 인한 피폭량을 제외한) 일반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치 1밀리시버트를 넘는 양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이미 몸도 대지도 방사능에 오염된 상황에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을 갈구하는 사사키 다카시의 마음은 원전 사고로 일상이 바뀌고 파괴된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원자력(핵) 에너지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며 끊임없이 홍보해온 것과 달리 원전에 의존한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형편없이 무책임하고 무능한지, 원전 사고가 안겨준 배움에 대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느낀” 대로 생생하게 써내려간 사사키 다카시의 재난일기는 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 최대 규모인 고리 원전에 신규 원전, 신고리 5,6호기가 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용납할 수 없는 위험” 그린피스 캠페인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 덧붙이는, 작가의 마지막 인사말

 

지난 2012년 10월에 시작해서 3년 넘게 연재해 온 <죽음연습> 칼럼을 51회로 끝맺습니다. 긴 여정 동안 지치지 않고 <죽음연습>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경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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