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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릇 안에 담긴 치유와 성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가 함께 사는 바닷가 가마쿠라의 집에 아버지의 부고가 도착한다. 14년 간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한 세 자매는 별 감흥 없이, 반쯤은 의무감으로 장례식장에 향한다.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고 그와 함께 살면서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담아낸다.

 

세 자매와 이부(異父) 여동생의 ‘가족 되기’


▲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포스터


시골마을 온천여관에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의붓엄마, 이복동생과 함께 살아온 스즈는 또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장례식 장면에서 스즈의 의붓엄마는 자신에게 부담되는 접객을 스즈에게 떠넘기려 한다. ‘스즈는 어른스럽고 똑똑해서 괜찮다’는 미명 하에 가족들이 어린 스즈에게 지웠을 짐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큰 언니 사치는 어른구실 못하는 어른들로 인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스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세 자매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큰 언니를 중심으로 서로를 돌보며 삶을 일구어 왔다. 그리고 자매는 그 터전 안에 이부(異父) 동생인 스즈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사치의 제안은 복잡함 없이 단순하고 쉬워 보이며, 네 사람의 ‘가족 되기’ 과정은 큰 갈등 없이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 지역 음식인 잔멸치 덮밥을 함께 먹고, 매실을 따고 매실주를 만들며, 유카타를 차려입고 불꽃놀이를 하는 등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네 사람이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에피소드들은 예쁜 화면과 해사한 웃음 속에 그려지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네 자매의 맑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든다.

 

마음을 열고, 원망과 그리움을 토로하며

 

영화는 더 없이 예쁜 그릇 안에 네 인물의 치유와 성장을 담아낸다. 책임감 없는 엄마를 원망하던 사치는 미움을 내려놓고 엄마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고, 요시노는 일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법을 배운다.

 

스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엄마 탓에 한 가정이 망가졌다는 이유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상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니들 옆에 머무르면서 그것은 자기 책임이 아님을, 어른들의 무책임을 자신이 대신 사과할 필요는 없음을 깨닫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중 한 장면.

 

스즈는 세 자매와 이복 여동생이라는, 일반적이지는 않은 조합의 이 가족 안에서 자신의 아빠, 그리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언니들에게 아빠와의 소소한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턱 밑까지 쌓인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엄마는 바보”라는 말로 토해내면서 스즈는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운다.

 

떠나보냄과 간직함에 대한 짧은 일기

 

이 영화에서 네 자매는 죽음으로 매개된 이벤트에 세 번 참석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해, 할머니의 제사에 임하고, 마지막으로는 가까웠던 이웃 아주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그들은 떠나보내는 법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첫째 사치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머무는 터미널 케어 병동에서 일하며 상실에 임하는 태도를 수련하고, 둘째 요시노는 고객이자 가까운 이웃의 죽음을 대하며 전에 없던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상실은 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여동생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새로 얻었고, 할머니의 제사에서는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이웃 아주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네 자매가 가족이 되어,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중 한 장면.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더 잘 간직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세 자매의 키가 한 해 한 해 새겨져 있는 벽면에 스즈의 키를 표시하는 장면은 시간과 기억을 쌓은 공간에 스즈의 존재가 새겨졌음을, 떠나보냄의 기억을 공유한 네 사람이 비로소 가족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그늘이 드물며, 언뜻 비치는 그늘에도 밝은 빛이 어른거린다. 크게 도드라지는 갈등이 없는 매끈한 드라마에는 이전과 같은 서늘한 성찰은 없다. 하지만 떠남과 상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이번 영화의 장면들에서도 진하게 묻어 나온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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