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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여자’라서 직장에서 겪은 일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5.11.23 08:30

취업전선에서 ‘남자인 게 스펙’이구나

[청년 여성의 일 이야기] 여자라서 직장에서 겪은 일들



※ 본 연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와 오마이뉴스(ohmynews.com)에 공동 게재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류형림 활동가입니다.

 

열정 페이, 무급 인턴, 삼포세대… ‘청년’에게 붙이는 이런저런 말들이 늘어나고 ‘청년’을 걱정하는 기사도 연일 쏟아진다. 그런데 온 대한민국이 ‘청년’에 대해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올해 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들은 20-30대 여성 스무 명을 만나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먹고 살기는 괜찮은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는지 인터뷰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 아닌 이상 누구나 먹고 살기 녹록치 않은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청년’이자 ‘여성’이자 ‘노동자’인 그녀들이 놓인 상황에는 분명히 ‘다른 경험’이 존재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줄기차게 일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팍팍한 현실에 놓인 “할 말 진짜 많다”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기자의 말]

 

여성합격자 비율이 높아지자 당황한 회사

 

스무 명의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남자인 게 스펙”이라고 말한다. 사회에 나온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외’되는 경험을 통해, 여자는 남자보다 더 독하게 노력해야만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죽어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지민(28세, 정규직)은 채용 과정에서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제외’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응시자의 점수만 보고 신입사원을 채용했을 때,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남성합격자의 비율보다 높았다. ‘이례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상황이 되자, 사내에서는 신입 여직원들을 두고 “여학생들 같다”며 악의적인 소문이 돌았다.

 

“정말 점수만 보고 뽑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자가 많이 뽑힌 거죠. 그때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이렇게 여자가 많아서 어떻게 하냐, 나중에 얘네 결혼하고 애 낳으면 한 번에 없어지잖아, 어떡해. (…) 남자가 많았으면 이런 말 절대 안 나왔을 거잖아요. 반대 상황이 되니까 욕을 먹는 게 너무 화가 났고…. 회사에서는 ‘얘네 사회인이 아니다, 아직도 여학생들 같다’ 이런 식으로 인신공격하는 뒷소문이 도는 거예요.”

 

이후 채용 과정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그러자 예전처럼 남성합격자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면접 점수는 사실 조작하기가 쉽잖아요. 남자들한테 많이 주고, 그래서 저희 이후로는 계속 남자가 80%고 저희만 이례적으로 여자가 많은 기수가 되었어요.”

 

박봉 + 야근 = ‘여초 회사’

 

인터뷰이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 중에서 여성 비율이 90% 이상일 정도로 높은 분야가 있다. 이른바 ‘여초 회사’ 중에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연구나 홍보를 대행하는 회사, 중소무역회사가 있다. 이러한 회사에서 인터뷰이들은 야근이 일상적일 정도로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업무량에 비해 낮다.

 

한솔(33세, 정규직)은 기업의 홍보를 대행해주는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여성의 비율은 90%이다. 한솔은 남성의 비율이 낮은 이유를 “월급”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받아야한다고 이야기되는 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선택하지 않는 분야라는 것.

 

“성비는 저희는 남자가 굉장히 적고요. 전체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보시면 돼요. 왜냐면 이런 업무들이 여성이 조금 더… 하기 쉽고, 일반론적으로 남자들이 벌어야 된다고 하는 노동임금과 여자들이 벌어야 하는 노동임금이 약간 사회적인 차이가 있잖아요? 남자가 조금 더 벌어야 된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행사는 그런 남자들이 다니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이쪽으로는 잘 안 들어와요.”

 

이를 증명하듯이, 정규직이 된 후에 한솔의 업무는 늘어났지만 월급은 현재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 낳으면 일을 그만둬야 하나?

 

20-30대 일하는 여성들 스무 명 중에서 대다수가 자신이 다닌 회사에서 육아를 병행하면서 일을 지속하는 여자선배를 만나보지 못했다. 역할모델이 되어줄 여자선배가 없다는 사실은 후배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결혼해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게 되면 일을 그만둬야하나? 업계에서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남성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태은(27세)은 결혼한 이후에 일하는 여성개발자를 본 적이 없다.

 

“(다녀본) 회사가 두 개밖에 안됐지만, 결혼한 이후에 일하는 여성개발자를 본 적이 없어요. 내가 만약에 (여기에) 있다가, 애기 낳고 뭐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지금도 (결혼한 여성개발자는) 안 뽑는데, 내가 결혼하고 공백 기간을 거쳐서 다시 입사를 하려고 해도 뽑을까 싶어요. 그거 때문에 고민을 진짜 많이 했죠.”

 

태은은 지금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지만,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자신도 일을 포기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서른) 둘셋에 결혼해서, 애기는 거의 안 낳을 생각이 많고… 그런데 결혼을 하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지금 남자친구가 원하면 둘이 논의를 해서 애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결정을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일을 포기할 것 같아요.”

 

연봉 5백만 원 차이, 대체 근거는 뭐야?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때 근거로 제시되는 지표 중 하나다. 실제로 여러 명의 인터뷰이에게 성별 임금 격차가 적용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우연(32세, 정규직)은 인사 담당자였기 때문에 성별에 따라 연봉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그녀를 통해 직접 파악할 수 있었다. 우연이 다니던 회사에서 남성과 여성의 연봉은 심하면 4백~5백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심하면 4백에서 5백까지도 나요. (…) 첫 직장에 있었을 때에는 인사 사수한테 ‘법에 저촉되지 않냐?’고 이야기를 하니까 사수가 하는 말이 ‘직무가 다르다고 보고해버리면 된다’고 얘기를 했었어요.”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해, 남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생계부양자이기 때문에 임금을 여성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제시되곤 한다. 여성들은 직급과 업무가 남성들과 동일해도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게 ‘관행’처럼 되어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난 20~30대 여성들 중에는 가정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가장이 여럿 있다. 이들 중에도 남성에 비해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자신의 생계를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꾸려나가는 여성들도 다수였다.

 

‘여자’가 아닌 ‘동료’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

 

20~30대 여성들이 괜찮은 직장의 조건으로 꼽은 것 중 하나는 “나를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는 회사”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 동료가 아니라 ‘여자’로 대우받고 있었다. 우연이 다니던 회사에서 여성 비율이 높은 팀은 “꽃”이라고 불렸다. 지연은 남자 상사에게 “꼬맹이”라고 불렸다. 태은의 회사에서 남자 상사들은 신입 여직원을 꼭 사장님 옆자리에 앉혔다.

 

“한 번은 영업상무가 ‘해외영업팀(여성 비율이 높은 팀)이 우리 영업본부의 꽃이지.’ 대놓고 얘기하는 거를 들은 적도 있었어요.” (우연, 32세, 중소기업 정규직)

 

“회식이나 이런 거 하면은 꼭 사장님 주변에 여직원을… 사장님이 대놓고 ‘○○씨 와서 앉으세요’ 이러는 건 아니지만, 고 밑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것들이 꼭 자리 배치를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여직원을 막 끌어다가 앉혀요.” (태은, 27세, IT회사 개발직) 


 

여직원은 ‘동료’가 아니라 ‘여자’로 여겨지기에, 여성들은 직장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니 잘해준 것뿐인데 친하게 지내면 스캔들이 난다. 그렇다고 모두를 경계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고립된다.

 

“여기가 남성들이 많으니까,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여성이) 더 인제 주목이 되는 거죠. (…) 먼저 성적 대상으로 보인다는 거? 이성으로 이렇게… 된다는 거. 그거를 처음에 어떻게 처신을 잘하지 않으면 여자들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고립되죠. 친구가 거의 없어요. 회사에서.”

 

그래서 태은은 회사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나대면서” 활발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동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저는 더, 오히려 (…) 친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요. 오히려. 내가 한두 사람이랑 친하면 ‘이상해, 쟤는 뭐야?’ 하는데, 여러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면 ‘쟤 원래 성격이 활발해’ 그냥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어나가요. 오히려 좀 더 나대고… 그냥 조용히 있으면 안 돼요. 이런 회사에서. 이런 사회에서는 여자가 얌전히 있으면 그냥 그렇게 고립되다가… 관두겠죠. 회사 생활이 다 같이 일하는 건데.”

 

살아남기 전략은 야근?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여성을 동료로 대우해주지 않는 직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매순간 고민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그저 열심히 일하다가 소진되어버리고 있었다. 20-30대 여성들은 일을 ‘열심히’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했다.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해진(23세, 무기계약직)에게 괜찮은 일자리의 조건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야근 없는 것!”이었다. 해진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한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졌다.

 

“야근은 안하는 날을 헤아리는 것이 더 빠를 것이에요. 거의 매일 야근을 한다고 보면 되요. 길게 할 때는 12시까지 하기도 하고, 복지관에 밤잠을 자기도 하고 그래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말 긴급한 사례 관리가 들어왔을 때는 그렇게 하기도 해요. 자고 가는 것은 특이하기는 한데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은 아니에요.”

 

과도하게 일을 많이 맡아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해가며 묵묵히 해낸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임금이 오르지도 않는다. 알아주는 이도 없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파견직, 자체 계약직을 거치면서 1년 8개월 동안 무려 일곱 번의 계약서를 쓴 윤진(30세, 대기업 계약직)은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처음엔 윤진도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을 했지만, “삶이 영위가 안 되니까” 지금은 할 수 있는 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꾸, 네가 비정규직이면 계속 증명을 해서 정규직이 돼야할 거 아니야, 이렇게 약간 말이 안 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예요. 왜냐하면 생각을 해 봐요, 내가 막. 계약직에서 정규직 하겠다고 120%를 하다가 정규직 됐다고 50% 하고 그럴 거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 100%하면 내가 삶이 영위가 안 되니까 70% 80%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계속하는 거예요. 싫으면 말고. 약간 이렇게 바뀌었어요. 접근 방식이 바뀌면서 사실 웬만하면 늦게까지 안 하기 시작했죠. 한 8시면 퇴근하고.”

 

어디 가서 말하겠어, 우리의 이야기

 

‘금수저’라도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계급과 학벌을 기준으로 정해진 출발선. 늘어가는 파견직, 계약직 등의 불안정한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를 잡기 위해 스펙을 쌓을 시간도 돈도 없는 청년들. 그나마 간신히 얻은 직장에서는 낮은 임금과 긴 노동 시간으로 현재를 저당 잡히며 제자리걸음을 해야 하는 현실.

 

모두가 힘든 현실 속에서 ‘청년 여성’에게는 ‘나이 어린 여자’라는 취약한 위치가 더해진다. ‘청년’ 문제가 지속적으로 공론화되는 상황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청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또 다른 사각지대다. ‘여성’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하고, 승진에서 제외되고, 임금을 적게 받고, 성희롱을 당하고, 아이를 낳으면 일을 그만둬야하는 상황이 변할 때만이 그제야 우리는 일할 만하다고, 살 만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를 통해 그녀들을 만나면서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는 괜찮지 않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그리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아니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 소책자 <나만 힘든가? - 20~30대 여성들의 일 이야기>

 

민우회가 만난 일하는 20~30대 여성 스무명의 경험과 <20~30대 여성들의 일하며 겪은 불안과 빡침 말하기대회 - 어디 가서 말하겠어>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소책자 <나만 힘든가? - 20~30대 여성들의 일 이야기>가 11월 넷째 주에 발간됩니다. 배송료만 부담하고 무료로 받아보세요. (문의: 02-737-5763, equallove@womenlin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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