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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페미니즘’을 논하다
생존이 걸린 집밥의 미래와 에코페미니즘 

 

 

한국의 집밥엔 미래가 없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집밥엔 미래가 없다. 왜냐하면 청년들에겐 집도, 밥상도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월세 방에 살면서 수입 농산물에 식품첨가물이 가득 담긴 가공식품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런 삶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까?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미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디 희망도 품지말자.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이다. 나 또한 희망을 이야기해왔고 현실을 부정하고자 했지만 결국 미래가 없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특히 우리의 밥상엔 미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밥을 먹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라는 말은 잠시 접어두자).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구호는 수많은 음식 관련 책들에서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나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면, 초국적 농식품 기업과 수입 농산물, GMO(유전자변형식품)라는 식민주의자에 의해 점령당한 한국인의 밥상을 먹는 당신의 몸은 그들의 식민지이다. 제발 인정하길 바란다. 당신의 몸은 주권이 없는 피식민지라는 것을.

 

▲  토종팥.  우리 밥상은 토종 농산물 대신 수입 농산물과 GMO식품에 점령당했다.   © 김신효정 
 

집밥의 혁명? 밥상의 재료들은…

 

요즘 집밥이 열풍이다. 백종원의 쉽고 간단한 집밥 차리기는 ‘탈(脫)엄마’의 전도사로서 마치 누구나 스스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사회가 온 것처럼 보인다. 반면 진정한 ‘손 맛’이 없는 백종원의 밥상을 비판하는 황교익은 집밥을 ‘엄마가 차려준 밥상’으로 다시 소환하였다. 이러한 집밥 논쟁에 김원정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은 1인 가구든 4인 가구든 남녀노소 모두가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집밥 노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밥상 또한 젠더 이분법과 시장경제를 넘어서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밥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그 집밥이 차려지기 위한 밥상의 재료들이 어떻게 생산되느냐이다. 식용 GMO(유전자변형식품) 수입국 세계 1위이자 GMO 완전식품 수입 최대 국가인 한국에서 판매되는 식용유, 장류, 두부, 물엿 등은 대개 GMO 콩이나 옥수수로 가공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첨가물 가득한 수입쌀로 가공된 삼각 김밥을 먹고, 공장식 축산 환경에 갇혀 GMO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고기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가득한 달걀을 먹으며 GMO 콩으로 가공된 된장 맛이 나는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각종 암, 불임, 아토피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GMO 식품의 안정성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의 식탁이 위험해 지더라도 그래도 대안은 있지 않을까? 생협을 통해 구입한 유기농산물로 밥을 차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텃밭에서 갓 딴 채소에 유기농 양념을 뿌리고 친환경 밥상을 차려내는 킨포크식 밥상은 소수의 사람들과 특정 계급에게만 가능한 밥상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내가 먹을 밥상과 가족들이 먹을 밥상을 차려야 한다. 요리는 지속적인 노동이며 때로는 시간이 아깝다. 여전히 요리와 같은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GMO든 가공식품이든 간에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은 내일 다시 일터로 나가기 전에 고된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준다. 더구나 도시에서 집밥을 영양가 있게 차리거나 홈메이드 푸드를 사먹으려면 때로는 최저임금 시급보다도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요리는 여유로운 취미일 수 있지만, 매일 누군가의 밥상을 차려야하는 음식 노동자에게는 고된 노동이다.

 

위험한 밥상, 대안은 있는가?

 

▲  호랑이줄무늬콩(위) 토종 동부콩(아래)  ©김신효정 
 

GMO를 비롯한 수입 농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3%대이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주식인 쌀 생산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더 암울한 미래가 예견되고 있다.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시킨 박근혜 정부가 이제는 GM(유전자변형) 쌀, 고추를 비롯한 농작물을 상용화하겠다는 것이다.

 

보조금으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수입 농산물이 한국의 밥상을 점령함으로써 한국의 농민들은 생산 원가도 벌지 못하고 빚을 견디다 못해 농업을 포기해왔다. 이미 한국인의 밥상에는 GMO 가공식품과 수입농산물이 넘쳐나는데,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안전하지 않은 밥상을 차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할 것이다. 가난할수록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가난할수록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은 병원비를 내야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과연 언제부터 우리에게 무조건 많은 양의 동일한 맛의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농업의 목표가 되었을까? 동일한 크기, 동일한 질량, 동일한 맛, 동일한 유전자의 콩, 옥수수, 밀로 우리의 밥상은 점령됐다.

 

그러나 아직도 토종 콩은 그 종류만도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다. 선비잡이콩은 다른 콩보다도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 밥에 넣어 먹으면 밥맛이 달다. 이런 밥콩에는 밤콩, 대추콩, 푸르대콩 등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우리는 단일한 GMO 콩만을 소비한다. 몬산토라는 초국적 농식품 기업이 계발한 GMO 콩은 식용유, 두부, 곡물 사료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맛도 형질도 모든 것이 동일하다.

 

우리는 단일한 작물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양, 다양한 맛, 다양한 생물의 생산성을 높여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절실하다. 더 많은 양을 추구하는 생산성의 가치에서 벗어나 음식의 맛과 영양을 함께 고려하는 생물다양성으로 ‘밥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이 말하는 것

 

페미니즘은 타자화되어왔던 여성, 인종, 장애인,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페미니즘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이자 세계관이다.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며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를 내어왔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 아래 여성들에게만 부과되어 왔던 가사노동, 돌봄과 같은 재생산 노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몇몇 페미니스트 그룹은 여성들이 집과 부엌에서 떠날 것을 이야기했다. 집과 부엌을 떠난 여성들이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하고 동일한 임금을 받길 고대했다. 그러나 자본 중심의 발전과 개발의 흐름 속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젠더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임금노동에 매여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페미니즘의 목표가 과도하게 일을 하고 GMO와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  경북 상주의 여름 토종밥상   © 사진: 문준희 
 

에코페미니즘은 다른 ‘발전’을 이야기해왔다. 에코페미니즘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화폐 가치로만 측정해왔던 기존의 발전 패러다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올라타고 가야하는 성장의 사다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화폐 가치로만 측정되는 GDP(국내총생산)는 우리의 삶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GDP는 우리가 가진 삶의 문화와 다양성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급하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에는 돈이 오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한 번의 스키 경기를 위해 500년이 넘은 숲의 나무를 자르면 GDP는 올라간다. 나무를 자르면서 발생한 비용과, 숲을 헤치고 스키장을 짓는 건설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집밥에 대해 남성의 노동이냐 여성의 노동이냐 라는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논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1인 가구가 25% 이상이고 과로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집밥은 가족만의 밥상도 아니며 개인의 요리 취미나 여가로만 이야기될 수도 없다. 집밥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기업과 시장이 가져갔던 식량에 대한 주권을 우리가 되찾아 와야 한다. GMO 밥상을 걷어차고 계절과 생명이 담긴 밥상을 차려야 한다.

 

지구는 온갖 생명이 함께 의존하고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의 그물이다. 지금 여기에서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밥상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이다. 김신효정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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