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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부르는 죽음

<죽음연습> ‘생명력의 불평등’에 관하여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다가 안산 모자의 비극적인 사건을 접했다. 아사한 50대 초반의 어머니 곁에서 정신지체인 20대 아들이 여러 날 굶어 피골이 상접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이 돈이 없어 굶어 죽다니! 끔찍한 일이었다.

 

안산 모자 사건은 자연스럽게 작년 2월에 있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극빈의 상황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동반자살한 사건인데,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면서 만성질환을 앓던 큰 딸과 직업이 없는 둘째 딸을 데리고 살던 중에 어머니가 실직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지하 셋방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다 함께 죽음을 택한 것이다.

 

사건 당사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느냐, 아니냐를 논하기에 앞서, 가난이 이들의 죽음을 재촉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불평등이 사람을 죽인다”

 

▲ 예란 테르보른 <불평등의 킬링필드> 원서 (The Killing Fields of Inequality) 표지 
 

스웨덴 출신의 사회학자인 예란 테르보른은 저서 <불평등의 킬링필드>(문예춘추사, 2014)에서 빈곤과 교육 정도, 사회적 지위, 실업과 상대적 박탈감이 개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당긴다고 주장한다. 이 사회학자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불평등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인간이 인간 구실을 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방해물이 될 뿐만 아니라 건강, 질병,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불평등을 ‘실존적 불평등’, ‘자원의 불평등’, 그리고 ‘생명력의 불평등’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에 억눌려 활동에 제약을 받는 여성, 정복자에게 지배받는 식민지 국민, 상위 계층에 대한 ‘하위’ 계층, 지배민족에 대한 선주민이나 이민자나 소수민족, 또 극빈자를 위한 수용소나 의료시설을 지어놓고 생색내기 바쁜 권력자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는 극빈자나 장애자, 너그럽지 못한 양성애자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동성애자, 상위 카스트에 의해 천대받는 ‘불결한’ 천민 카스트, 위계사회의 낮은 계층에서 유린당하는 사람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이런 것들이 인격적 자율성과 인정과 존중의 불평등을 낳고, 남 못지않은 기능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격의 실존적 평등을 부정하게 만든다.” -예란 테르보른 <불평등의 킬링필드> 2부 ‘평등과 불평등이 말하는 것들’ 중에서

 

성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등과 같은 ‘실존적 불평등’은 개개인이 권리를 존중받고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자기계발을 하는 데 있어 명백히 장애가 된다. 예란 테르보른에 의하면, 실존적 불평등이 현대에 와서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근래에 들어 한 부모 가정의 자녀와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새로이 부상하는 ‘실존적 불평등’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그리고 ‘자원 불평등’은 인생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과 자원을 공평하게 얻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 정도와 소득 정도, 빈부의 차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명력의 불평등’은 건강을 유지하고 기대수명 만큼 사는 데 걸림돌이 된다.

 

‘실존적 불평등’도, ‘자원 불평등’도 개개인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에 ‘생명력의 불평등’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교육을 받은 자보다 그렇지 못한 자, 고등교육을 받은 자보다 그렇지 못한 자, 부자보다 가난한 자, 소득이 없는 자, 실직한 자보다 소득이 있는 자가 수명이 짧으며, 이들 사이의 평균수명의 차이가 적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자국의 노동자보다 이주 노동자가,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생계를 꾸리기에 충분한 급여를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힘들고, 그러다 보니 빈곤에 노출될 가능성도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절대적 빈곤뿐만 아니라 상대적 빈곤도 질병의 노출 가능성을 더 높이고,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런데 ‘실존적 불평등’이 개선될 때조차 생명과 건강에 있어서 계급 불평등이 굳어지는 추세이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생명력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안산 모자 사건이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들이 예란 테르보른이 분석한 ‘불평등에 의한 죽음’과 충분한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장애인 아들을 둔 한 부모 가정, 경제적 추락으로 인한 가난. 50대 초반인 어머니의 기대수명에 못 미치는 이른 죽음이라는 내용을 가진 안산 모자의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2011년 겨울, 굶주린 채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최고은 작가가 떠오른다. 당시 최 작가는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삼 십대 초반의 여성이 질병에 시달리면서 그토록 이른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위킹푸어(근로빈곤층)의 불평등, 여성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일상적인 굶주림이 만연한 세상

 

▲  프랜씨스 라페 등 저, 허남혁 역 <굶주리는 세계> (창비, 2003년 10월) 
 

먹을거리가 넘쳐서 마구 버려지는 오늘날, 최 작가나 안산 어머니처럼 굶주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난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도처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죽고 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굶주림이 기근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굶주리는 세계>(창비, 2008)에서 전 세계적으로 약 8억 명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린다고 전한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굶주림으로 “사흘마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의 수와 맞먹는 어린이들이 숨진다”고 한다.

 

가난해서 굶주리고 굶주림으로 인해 질병에 취약해지고 예방이 가능한 질병에도 목숨을 잃는다. 불평등이 심한, 빈부격차가 큰, 정치적으로 비민주적인 국가나 사회에서 빈곤과 굶주림으로 인한 희생은 더 크고, 가난과 배고픔은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한다고 한다.

 

먹을 것이 넘치는 데도, 영양실조에 걸리고 질병에 노출되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면, 성실하게 일하는 데도 빈곤에 허덕이고 굶주림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이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데는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의 몫도 분명 존재한다. 다른 누군가가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간다면 같은 사회의 구성원인 나를 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굶주림을 없애는 것을 도울 수 있다. 굶주림의 근원이 어디서 일하는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이행하는지, 어디서 쇼핑하고 저축하는지 등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굶주리는 세계> “굶주림에 대한 신화를 넘어서” 중에서

 

굶주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우리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지 않고, 만성적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굶주림, 죽음을 야기하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에서 그치지 말고, 가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더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 사회를 바꾸려고 하기에 앞서 지금껏 내가 살아온 방식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바꿀 수 있는 용기부터 가져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깊이 와 닿는다.

 

차별과 불평등에 동조하지 않도록, 남들을 빈곤으로 내몰지 않도록, 질병과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에 무심하지 않도록 애쓰는 일, 나아가 차별과 불평등, 빈곤과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향해 노력하는 일, 모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걷어낼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라면, 지금 내 자리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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