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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와 성공 없이도 자립하여 노래하기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어떤 음악가로 살 것인가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기 전, 그러니까 음악가란 자고로 텔레비전에 나오거나 멋진 공연장에서 수많은 관객의 환호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불과 몇 년 전과는 생각이 전혀 달라졌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야 당연히 정형화된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그 차이는 너무나 커서 경험해 보지 않은 수많은 다른 일들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가져선 안될 것만 같다고 느낄 정도다.

 

▲ 노래하며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본다.  ©이내

 

이런 알쏭달쏭한 이야기로 글을 여는 까닭은 돌아보니 “길 위의 음악가”라 자칭하며 운 좋게 겪어온, 나의 묵은 편견을 깨어주었던 시간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조금씩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들이 늘어나면서 “네가 유명해지면 좋겠다” 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처음에는 나도 “몇 년 후에 대박이 올 거래요” 너스레를 떨며 진짜 그런 날이 오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울에서 한번 활동(?)해보겠다는 계획도 잠시 세웠다.

 

그런데 어떤 순간, 내가 노래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익명의 다수, 대중이 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작은 자리에서 노래할 때 ‘동네가수’라고 인사를 하고 사람들과 가까이 만나며 느끼는 충만함이 점점 더 커지면서 든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명하지도 않은데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 혼자 우스워하기도 하지만.

 

공연장을 지나던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서울에서 작은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카페이기도 한 세련된 공연장에 훌륭한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공연 시작 전, 서울에 사는 친구 두 명과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온 두 명의 관객이 있었다. (알고 보니 친구의 지인이었고 <일다>의 독자였다. ^^)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노래를 불러야지 마음을 먹었다. 이런 장비를 한 번 사용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경험이냐고, 기획을 해준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홍보를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며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비록 장비는 없지만 그 건물 옥상에서 노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다. 그래서 깜짝 이벤트처럼 분위기 잡고 노래를 하다가 중간에 관객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  옥상에서 이어진 무대.    © 이내  

 

분위기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중에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멋진 데가 있었냐며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그곳에 모인 분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부르며 소풍 온 듯 한바탕 놀게 된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없어진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나면 관객은 바로 감상을 들려주고, 노래 사이사이에 자신의 꿈을 넣어 함께 부르고 돌림노래로 합창을 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박수를 치고 웃는다. 그리고 나면 꼭 되돌아오는 인사는 “아,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주어 고마워요.” 그 말은 내가 똑같이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인사가 된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모인 그녀들과 함께

  

▲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모인 그녀들과 함께한 시간. © 이내 
 

어느 날 성매매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의 자조모임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고 작은 공연을 보는, 그녀들이 스스로 기획한 공연이었다. 동네 카페를 빌려 오롯이 그녀들을 위해 보내는 시간에 영광스럽게도 초청을 받게 된 거다.

 

대여섯 명이 둘러 앉아 정성껏 준비된 밥을 먹었고,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노래를 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연 후에 나에게 들려준 그녀들의 감상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보통 노래는 자신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이내씨 노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 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잘 견뎌낸 내 자신이 대견해요.”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하며 힘을 낼 거에요.”

그렇게 나는 커다란 응원을 돌려받았다.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자”들과 함께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친구가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크로키한 그림들로 작은 전시를 열었다. 전시의 제목은 “피곤한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자연스러운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전시의 이벤트로 “작업자들”이라는 소담회를 열었는데 그곳에 초대받았다. 그림책을 만드는 화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주말에 프리마켓에 나간다는 친구, 소설을 쓰는 작가, 일상을 계속해서 그림으로 그리는 노동자,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가 등이 소담하게 모인 자리였다.

  

▲  "작업자들"로 초대받은 <피곤한 사람들> 전시 포스터. 
 

이들은 공통적으로 스스로를 ‘작업자’라고 말하는 것에 손사래치고 있었다. 그저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의심하고 고통에 빠지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연약한 속내들이 한 곳에 모이니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를 준비한 친구가 시작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보며, 바로 ‘동네가수’로 출동하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는 것은 자고로 마음을 풀어주니까.

 

그 사건 이후 나는 뭔가 연륜 있는 선배 작업자로서 그에게 엄청난 칭송을 받게 되었지만(하하), 사실 당당함보다는 약함이 모여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줘서 실은 내가 더 고마운 자리였다.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며 자립하기

 

이러한 자리 외에도 급하게 섭외된 친구의 동문회 모임, 동네 카페에서 행사 진행을 맡은 동네 친구의 긴급 요청, 오래된 음악 바에 맥주 마시러 갔다가 부르게 된 노래(그러면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사준다), 우연히 모인 친구들 앞에서의 신곡 발표 등등. 기타 한 대와 노래만 가지고도 눈 앞에 앉은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눈빛과 이야기를 (그에 더하여 앨범 판매와 소정의 공연비까지!) 잔뜩 얻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최근에 스스로의 활동을 ‘자립음악’이라고 규정한 음악가가 ‘인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일종의 독점과 같은 면이 있고,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기도 하기에 꼭 좋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다수와 만나는 것을 원하는가, 라는 스스로를 향한 나의 질문에 어떤 힌트를 주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나 성공이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할 수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노래를 짓고 부른다는 것이 꼭 기존에 있는 방식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작은 자리에서 적은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며 눈을 맞추고 어깨를 내어주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는 실험들을 일단은 이어가야겠다. 다만, 계속해서.  싱어송라이터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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