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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집회는 시민이 아니라 경찰이 만든 것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한 시간(3) 

 

 

지난 14일, 경찰은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416연대(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상임운영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16일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22일 오전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박래군 씨의 손은 양손 가리개로 덮여있었고, 팔까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마치 살인범이나 흉악범처럼 보였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면 흉악범처럼 다루겠다는 국가권력의 강력한 메시지 같아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의 한 명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박래군 위원의 혐의는 지난 4월과 5월에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불법 행위를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416연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월호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을 요구하는 운동을 해왔습니다. 유가족들은 박래군 운영위원에 대한 구속이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2015년 7월 23일 “인권은 가둘 수 없다” 박래군 인권활동가(416연대 상임운영위원) 구속을 규탄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인권활동가 공동기자회견.  © 사진 출처: 재단법인 인권재단사람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중계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애통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라는 울타리가 존재하는지 질문하게 되었고, 이런 사회를 방치해온 구성원 중 하나라는 이유로 자책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이렇게 커다란 사회적 상처를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경찰과 검찰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경찰이 밤늦은 시간에 출석요구서나 사전 연락도 없이, 집으로 찾아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한 대학원생을 체포했습니다. 이유는 지난해 8.15 세월호 범국민대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거 유신정권 하에는, 정권에 대해 언급만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길 전설처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호와 관련한 활동을 하면 그리 되는 것인지, 내가 속한 곳이 독재국가인지 민주국가인지, 지금이 1970년대인지 2015년인지 혼동이 될 정도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권력이 시민들을 겁박하는지, 416참사 1주기 즈음하여 광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유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하게 봉쇄한 경찰

 

2015년 4월 17일, 세월호 참사 1주기의 밤에 유가족들이 경찰에 포위된 채 경복궁 현판 앞 바닥에서 지샌 다음 날.

 

저녁에 시청광장에서는 4160개의 촛불로 만드는 세월호 기네스북 “세살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 진행되었습니다.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행사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지방에서 올라오셨다는 어르신들도 많이 계셔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행사에 참여하고 유가족들이 걱정되어 경복궁이 보이는 광화문 광장 끝으로 갔습니다. 아침 상황과는 다르게 도로를 경찰 차벽으로 다 막아놓지는 않아서 경찰들 너머로 유가족들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지만 반갑기도 해서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데, 저처럼 유가족이 걱정돼 막연히 이쪽으로 걸어왔던 분들이 조금씩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길 건너 유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힘내세요!” “시행령을 폐기하라” 등을 외쳤습니다. 대부분 저처럼 시청광장에 있다가 온 사람들이었고, 여성들이었고, 많은 수도 아니었습니다. 유가족들도 핸드폰 불빛으로 화답했습니다. 전쟁 이산가족으로 38선에 막힌 것도 아닌데, 경찰에 막혀서 고생하고 계신 유가족을 만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눈물이 날만큼 서러웠습니다.

 

▲  2015년 4월 17일, 유가족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가로 막은 경찰들.    © 화사 
 

금세 경찰이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찰 방송차량까지 와서 우리에게 불법집회라며 해산하라고 했습니다. 광장 안의 인도에 있었는데도, 해산하지 않으면 연행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경찰이 차도를 막고 서서 인도로 올라오며 방패로 밀어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시민들은 겨우 스무 명 정도인데 경찰은 백 명도 넘었으니까요.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로를 점거한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피켓을 들고 크게 외친 것도 아니고, 사회 혼란을 초래한 것도 아닌데, 불법 집회라는 둥 연행하겠다는 둥. 그것은 협박이지 결코 공무집행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민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같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려고 광화문역으로 향했는데, 경찰이 광화문 광장 중간을 차단벽으로 막아놓고는 우리에게 한참을 돌아서 횡단보도 있는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통행을 제한하면서 이유도 제대로 못 대고, 관등성명도 못 하고, 이름표도 달지 않은 불법경찰에게 명령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법적 근거 없이 경찰에게 협박을 당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침해 당했다는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물대포와 최루액 쏘아대며 진압해

 

4월 18일,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작가로 함께 참여하고 있는 세월호 추모전시회와 안산의 분향소에 다녀오느라, ‘세월호 참사 1년 전국집중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가는 지하철역(시청역)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경찰의 6중 벽이 세워져서 어떻게 해도 광화문 쪽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으로 나왔습니다. 이곳도 경찰이 출구를 막았다가 조금 전 열었다고 했습니다. 

 

▲ 2015년 4월 18일 경찰차에 갇혀 있는 유가족들    © 최창덕  

 

여전히 유가족들은 경복궁 현판 앞에 고립되어 있고, 유가족이 여덟 명이나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낮부터 들려와서 걱정되어 모인 시민들이 광장 안에 있는데도, 경찰은 계속 시민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연행하겠다고 협박 방송을 했습니다.

 

이날 불법 차벽과 불법 채증과 불법 물대포와 불법 최루액으로 광장 안에 있는 시민들에게 대응하던 경찰은 집회 참가자를 75명이나 연행했습니다. 사복 경찰이 기자인 척 꾸미고 광장 안에 들어와 채증을 하다가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밤 11시쯤 경찰의 포위를 뚫고 유가족들이 광장으로 돌아와서야 이 전쟁이 끝났습니다.

 

영석 아버지는 연행돼서 안 계셨지만, 마침 전에 출출해서 사 놓은 과자들이 있어서 며칠 동안 갇혀계시느라 고생하신 민우 아버지와 나눠먹으려고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경찰들이 몰려왔습니다. 경찰이 두 아버지들의 농성 자리에 있던 미수습자 사진이 인쇄된 피켓을 밟았습니다. 민우 아버지가 화를 내셨고, 바로 수십 명의 헬멧을 쓴 경찰이 우리를 둘러싸며 위협해서 정말 무서웠습니다. 다행히 몇 분 후 무전으로 명령을 받고는 경찰들이 물러갔습니다.

 

경찰병력을 철수하면서 차벽으로 세웠던 차들도 옮겨갔는데, 부서지고 낙서가 된 차량만 남기고 가더군요. 날이 밝자마자 보수 언론에서 촬영하러 오겠지요. 역시나 주류 보수 언론에서는 시위대의 폭력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경찰차 사진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18일에 경찰이 쏘아댄 최루액이 2014년 한 해 사용한 최루액의 두 배가 넘는다는 점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느라고 무단으로 소화전을 사용한 것과, 그 불법성을 지적한 이상호 기자를 연행해버린 사실도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의 진압이 없다면 평화로운 광장
 

▲ 2015년 4월 18일 경찰의 진압 과정에 부상을 당한 동진 어머니. © 최창덕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416연대는 집회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인해 부상당한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접수된 유가족의 부상만 1백건이 넘었고 시민들도 수백 명이 부상을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교통 흐름을 모니터 하는 도로용 CCTV를 비공개로 바꾸고는 집회 참여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거나 채증하는 데에 사용했고, 안전 지침을 어겨 근거리 조준으로 최루액을 쏘았습니다. 하지만 공중파는 세월호 1주기 추모 프로그램을 내보내고는 배·보상금액을 앵무새처럼 발표할 뿐, 현재 유가족과 시민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제 공권력은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구속 수감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경찰의 불법은 용인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한 인권운동가가 구속되다니, 법이 그렇게 자의적이라면 우리가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가 이토록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거리에 오랜 시간 있었더니 몸살이 났습니다. 꿈에서 헬멧을 뒤집어쓰고 시커먼 방패를 든 경찰이 압박해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악몽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얼마나 원통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경찰의 불법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비판의 여론이 커지자 4월 25일 토요일에는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고, 평화롭게 집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유가족이 있는 광장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거나 경찰과의 충돌이 없다면, 광화문은 평화롭습니다.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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