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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서로 전하는 안부 
<이 언니의 귀촌> 친구들과 정선으로 터를 옮기다(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여성 집 짓기 공동체’ 상상해보기

 

장작으로 쓸 통나무를 자르고 패는 일부터 시작해서 물탱크 청소, 주물난로 이동 및 설치, 아궁이 환기 팬 수리 및 타이머 설치 등등 방법을 잘 몰라서, 알아도 힘이 달려서, 연장 다루는 게 겁나서, 해볼 수도 있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일거리를 보고도 넘어가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는 일이 많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 온 남동생네는 전공이며 경력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오래된 집을 구해 서툴게나마 직접 집을 수리하더니 이제는 전기 배선이나 배관 작업 등 웬만한 기술자가 다 되어간다.

 

건축이나 집을 보수하는 일은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여기기도 했지만,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살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보수와 관리에 대해서도 이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었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나…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이 많다. 건축가의 딸로 자란 동거인은 공사현장의 흐름에 대해 익숙하고 목수 팀보다도 더 정확히 예산을 짚어내는 안목이 있음에도, 자기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는 데서 오는 심정을 ‘약이 오른다’고 표현한다.

  

            ▲  버섯 종균 심기   © 웃는돌 
  

집이라는 공간에서 소외되는 느낌, 종종 무력해지고 약이 오르는 심정에 대해 목수 친구들과 얘기 나누다가, 북미 지역에 있는 여성 집 짓기 공동체(머드 걸스)처럼 아직은 상상이지만 우리도 여성 집 짓기 혹은 집수리 프로젝트를 해보면 좋겠다는 그림도 그려보았다.

 

북미의 ‘머드 걸스’(Mudgirls)는 인간의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집, 그 집을 짓는데 필요한 기술을 소수의 사람들만 소유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여성들이 삶과 문화와 경제를 재창조하는 방법으로 집 짓기 공동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방법이 있을 거 같애요. 건축현장이라는 게 분위기도 그렇고, 무거운 자재, 큰 장비를 사용하다 보니 여자들이 엄두를 잘 못 내는 거 같거든요. 제가 아는 여자목수도 기술은 있지만 막상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아무래도 적어요. 그런데 좀더 가벼운 자재들, 쉬운 연장을 사용해서 접근하면 방법이 있을 거 같애요. 사실 집이라는 게 그렇게 크고 어려울 필요가 없는 거거든요.” 함께 여성주의 건축학교를 상상해본 목수 친구의 말이다.

 

집을 짓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잡하고 또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연장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가는 일, 우리 집처럼 겨울철 수도가 얼거나 잘 돌아가던 환기 팬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을 때 어디를 어떻게 살피고 누구에게 연락을 취하면 되는지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간혹 혼자서, 혹은 둘 셋이 모여 흙집을 짓고 계신다는 여성분들 얘기가 들린다. 노고와 노하우로 가득할,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한 과정에서 오고 갔을 그 분들의 생각과 마음에 대한 얘기를 언젠가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안부를 묻다

  

▲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집을 비운 우리에게 윗집에서 물어온 안부  ©웃는돌 
 

# 매년 11월, 5일마다 시끌벅적했던 읍내 장에서 한 해의 마무리 공연을 하고 나면, 매장을 두고 장사하시는 분들만 남고 집에서 키운 농작물이며 나물, 강가에서 채취한 올갱이 등으로 난전을 펴는 분들, 그리고 전국을 다니시는 장돌뱅이 연합 상인들은 이듬해 봄까지 긴 방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4월, 겨우내 조용했던 거리에 각종 묘목과 모종들이 등장하면서 장터는 다시 분주해지는데, 봄철 이곳 장에 가면 모르는 사람들과도 서로 나누는 인사를 들을 수 있다. “겨울 잘 나셨어요?” “이까짓기 뭐 겨울이나. 작년에 비하면 암 것도 아니지.” 긴 겨울을 무사히 보냈는지,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 얼굴에서 동지의식이라 해도 좋을 무언가를 본 것 같다.

 

# 같이 사는 친구가 읍내에 차실을 연 후로는 이곳 토박이거나 귀촌을 하신 분들을 만나는 일이 늘었다. 어느 날 찻집에서 처음 보는 분들과 마주앉게 됐는데 이런저런 차담을 나누다 “거기 골짜기에 두 처녀가 이사 왔다는 얘긴 들었는데 뭐 먹고 사는지 그렇잖아도 걱정했어요” 하신다. 작은 마을에서 풍문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부담일 때도 있지만,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아버지로서 걱정이 되더라는 말씀에 남겨두었던 경계심이 미안해졌다.

 

# 오랫동안 고생해온 아저씨의 폐질환으로 아랫집 식구들은 지난겨울 몇 달 동안 집을 비웠다. 덕분에 수문장과도 같은 그 집 진돗개 ‘관우’와, 다섯 마리의 토종닭들이 주인 없는 겨울을 나게 되었다. 지나던 차에 들려보면 마실 물이 얼어있는 때가 많아 그릇에 눈을 담아 놓거나 물을 갈아주곤 했는데, 물은 얼어서 못 먹었다고 해도 밥그릇에 밥은 왜 줄지를 않는지… 걱정이 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관우네 마당에서 윗집 내외 그리고 3킬로미터 떨어진 아랫마을에 사시는 반장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까지 총 세 집에서 주인 없는 관우네의 안부를 챙겨왔나 보다. “어쩐지… 밥이 안 줄더라구….”

 

# 인근 도시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 “어디서 왔어요? 먹고 살만은 해요?”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이런저런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질문 후에는 당신 얘기를 또 그만큼 풀어 놓으시고, 식구들이랑 시골로 내려온 지 8년여가 되어 간다며 당신 마을에도 ‘젊은 아가씨들’ 세 명이 빈 집 얻어 밭농사 지으며 사는데 친구들이랑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어디 사시는지 재차 물어두지도, 나중에 그 마을 이름이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가끔은 근처 어느 마을에 살고 있을 그 ‘젊은 아가씨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긴 겨울을 잘 나고는 있는지… 만난 적 없는 그녀들의 안부를 떠올려보곤 한다.

  

           ▲  토마토. 이제 지지대 세우는 일쯤은!   © 웃는돌 
  

질문이 멈추어 생긴 공간에, 또 바빠지는 마음

 

겨울지나 이른 봄, 땅이 녹기 시작하면 밭에 돌 고르는 일부터, 여름철에는 작물을 솎아주거나 김을 매는 일, 가을부터는 수시로 떨어지는 낙엽을 모아 퇴비더미에 쌓고 집 주변과 뒷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을 모아 묶어두는 일 등등. 큰 농사를 짓는 게 아닌데도 봄부터 초겨울까지 괜스레 분주하다.

 

이사 온 첫해에는 산골 환경과 이 일들에 익숙해지느라 더 그랬겠지만, 가끔씩 주의가 흐트러져 여기저기 다치긴 해도 일에 몰두하다 보면 ‘나를 포함한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와 같은, 오랜 시간 가득했던 질문과 생각들이 드디어! 멈추는 것도 같았다.

 

대신에 질문이 멈추어 생긴 공간에, 두 번째 여름부터는 ‘비름과 명아주는 클 때까지 두면 나중에 뽑기가 힘들던데’, ‘저 떡갈나무 낙엽은 가을되면 또 골칫거리가 되겠지?’, ‘무우 씨앗 파종은 지금 즈음은 끝냈어야 하는데…’처럼, 어느새 바쁘고 바쁜 마음이 차올랐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은 자주 일지 않았지만 ‘이것 마치고 얼른 저 일을 해야 하는데’와 같은 걱정들이 수시로 일었다.

 

쉬고 또 쉬려고 온 산골에서 자꾸만 바쁘고 바쁜 마음이 일어났다.

  

            ▲  달빛. 산골에 보름달이 뜨면 손금까지 훤히 보인다.   © 웃는돌 
  

문득 인생에 대한 모 스님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다.

 

“어떤 사람이 설악산 구경을 가려고 등산화도 사고 배낭도 침낭도 사고 휴가도 내고, 한 달을 준비해서 버스를 타고 산 입구에 내렸대. 산에 오르다 보니 길 밑에 예쁜 꽃이 있는 거야. 너무 예뻐서 배낭을 벗어놓고 꽃 꺾으러 갔네. 그런데 꽃을 꺾다가 미끄러져서 옷이고 신이고 다 버렸지. 그러니 어떡해. 씻어야 되니까 그 밑에 계곡에 내려갔는데 날이 가물어서 물이 별로 없었나 봐. 손을 씻으려면 웅덩이를 파야 해서 열심히 파는데 글쎄 가재가 바글바글해. 이놈도 잡고 옆에 있는 놈도 잡고… 또 잡고 또 잡고 하다 보니 가재 잡을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된장, 고추장도 안 가져 온 거야. 그래서 마을에 장을 얻으러 가서 밥을 해먹으면서 ‘생각도 못했는데 이 맛있는 걸 먹다니…’ 하는데 마침 된장 얻어먹은 집에서 자동차가 하나 나가는데 서울 간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버스표 사서 내려올 때 힘들었는데 공짜로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하니 그 차에 올라탔어. 그 사람은 그래서 산에는 안가고 서울로 갔지.”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여름.

 

설악산에 가는 건지 서울로 가는 건지 아직 모르겠지만, 가지를 지지대에 묶어주거나 토마토 순을 따다가 올해도 여전히, 별 이유도 없이 바쁘고 애타는 마음이 일지만, 그래도 그 마음한테 히이. 웃음 하나. 보낼 수 있게도 된 것 같다.  웃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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