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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또 쉬면 우리 마음에 꽃이 필까
<이 언니의 귀촌> 친구들과 정선으로 터를 옮기다(상)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두둑 만들고 씨앗뿌리는 봄 밭일이 지나면 귀촌해 사는 이야기를 적어 <일다>에 보내야지…. 그런데 바쁜 봄 일이 다 지나고, 산책길 만드는 일도 마무리하고, 이젠 여름 볕이 한창인데도 글 한 줄을 시작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요. 무언가 글로 표현하면 왠지 거짓이 될 것만 같아 책상 앞에 앉는 일을 미뤄만 두었습니다.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서 꽃이 핀다.’

벽암록에서 보고 마음에 남아 종종 떠올리게 되는 글귀입니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던 공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그때그때마다 열심히 울고 웃으며 일하고 공부하고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삼십 대 중반 언제부터인지, 어느 것을 향해서도 마음이 뛰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서울생활이나 조직생활,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보다는 무엇에도 움직이지 않는,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마음으로부터 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쉬고 또 쉬다 보면 쇠처럼 단단해진 내 마음에도 꽃. 한 송이. 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나, 그리고 10여년간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 몇몇은 두어 해 전 귀촌지를 찾던 여장을 강원도 정선에 풀어놓았습니다.

 

▲  시골살이를 시작한 딸에게 어머니 왈 “작물 심지 말고 꽃 심어. 쉽게 살어. 쉽게.”   © 웃는돌 
 

아래는 산골에 이사와 겪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에 와서의 경험이 여성이기 때문인지, 결혼을 하지 않아서인지, 사십 대로 접어들어서인지, 내 오랜 습관 때문인지, 구분이 어려운 순간들이 많지만, 산골에 이사와 3년차가 되는 동안 좋은 일도, 괴로운 일도 많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서울에서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요.

 

몇 달째 심한 가뭄으로 그늘가 말고는 화초와 작물이 군데군데 누렇고 시들한데 다행히 내일과 모레 비 소식이 들립니다.

 

추운 겨울 새벽, 크리스마스 선물

 

올 겨울은 작년보다 춥나 했는데 성탄 며칠 전부터는 날이 조금 풀렸나 보다. 새벽에 방문을 열고 부엌에 발을 내딛는데 발 밑에서 첨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더듬더듬 불을 켜보았더니 바닥 전체에 차오른 물이 금방이라도 안방 문턱을 넘을 것 같다.

 

싱크대도 욕실 수전도 멀쩡한데 이 물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잠이 덜 깨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집안에 물이 샐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다가 결국 게스트 룸으로 쓰는 옆방 수도관이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치익치익 콸콸콸…. 이 겨울 새벽에 물소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거침도 없는지. 손님방에는 겨울 들어 난방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며칠 날이 풀리자 얼었던 배관이 터지면서 물이 사방으로 새기 시작한 모양이다. 산골생활이 너무 조용할까 봐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생각하자며, 같이 사는 친구랑 물을 퍼내고 닦기 시작했다.

 

물이 샐 때는 어디를 우선 잠가야 하는지, 바닥장판은 걷어내야 하는지, 겨울철에 얼어붙은 장판이 부서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을 퍼내고 나면 아궁이에 바로 불을 지펴도 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저 물을 퍼내고 닦다 보니 어느새 밖이 훤하다. 물기가 어느 정도 걷힌 바닥에 앉아 한 숨 쉬어본다. 아닌 게 아니라 겨울 들어 산골생활이 조금 조용하기는 했다.

 

          ▲  아직은 아이 주먹만한 수박   © 웃는돌 
 

새해 선물까지!

 

새해가 되었다. 어느 날 외출했다가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낮에는 없던 흙더미가 옮겨져 있어 두세 번 눈을 비벼 보았다. 제설용 모래인가…. 그래도 주차장 한가운데에 부려놓을 리는 없을 텐데…. 1톤은 넘어 보이는 모래더미를 이해할 길을 찾다 ‘노처녀들이 마을에 이사와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다닌다고 밉보였나’ 잠시 동안이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더랬다.

 

그 얼마 전, 포크레인 기사이기도 한 마을 이장님이 맘에 들지 않는 어느 집 문 앞에 눈을 가득 쌓아 놓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여자 둘이 시골마을에 사는 모습을 곱게 봐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지레 했었나 보다.

 

후에 밝혀진 모래 선물의 주인공은 면사무소! 빙판길에 쓰일 사토를 준비해두랴 수고로웠겠지만, 차들이 교행해야 할 곳을 막아놓거나 주민들 마당 가에 부주의하게 부려놓아 벌써 몇 통의 불만 신고가 접수된 모양이다.

 

트럭 한 대 분의 모래더미를 삽과 수레로 일일이 치우지 못해 결국은 아랫마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끝이 둥그런 삽 하나로 단출했던 우리 창고에는 납작한 철제 사각삽, 긴 원통형의 검은색 눈삽, 그리고 초록색 플라스틱 눈삽, 그리고 마음에 많이 드는 작은 금색 삽도 몇 개 더 걸렸다.

 

시골살이 3년차, 봄나물 학교

 

▲  참나무에 올 봄에도 올라온 표고버섯   © 웃는돌 
 

“OO야~ 나물 뜯으러 가자~~”

 

뒷산 어디에서 소리는 들리는데 봄 새순이 한창인 산에서 아랫집 아주머니의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약초 공부를 하고 대체의학 연구소를 꿈꾸며 산골로 이사 온 아랫집 부부. 이 골짜기의 최고 선배인 아주머니, 아저씨는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넓은 터를 일구며 이름 모를 식물들의 뿌리, 열매, 잎을 채취하신다.

 

‘저것들(윗집에 사는 우리를 이르는 말)이 뭘 먹고 사나.’ 작은 종이 경쾌하게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우리만 보면 걱정 반 잔소리 반 늘어놓으시는 아주머니가 올 봄에는 작정을 하셨는지 아예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신다.

 

“집 뒤에 곰취랑 잔대 많은 거 알어? 아이고 그걸 왜 사먹어. 얼릉 따라와. 오늘은 곰취만이라도 좀 뜯어봐.”

“발 옆에 그거는 캐면 뿌리가 빨간데 지치라고 하는 거야. 자궁이 안 좋을 때나 냉증에 좋아. 해독에 그만이고. 이제 똑같은 거 한번 찾아봐.”

 

봄이 되면 하루에 두세 번씩 앞산, 뒷산, 건너편, 그 건너편 산까지 오르며 곳곳에 약초와 나물들을 훤히 알고 계신 아주머니. 그런 아주머니도 처음에 이 골짜기에 왔을 때는 동네 할머니들의 걱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새댁은 못해. 우리야 이 일하면서 뼈가 굵어 그나마 하는 거지. 괜히 농사일 하지 마요. 저쪽에 가있어요.”

 

아주머니는 나물 이름과 효능에 대한 설명 중간 중간에 왜 약초 공부를 했는지, 처음 이사 왔을 때 겪은 이야기 등등을 들려주시며, 시골살이의 의미를 간소한 삶, 그리고 최대한의 자급자족에 둔다고 하셨다.

 

이제 3년차인 우리는 필요한 것의 목록을 줄여보아도 스스로 충당할 일이 요원한데다, 이전에 지니고 있던 물건 중 많은 것들이 필요 없어지는 대신 농기구며 작업복, 위성 안테나, 저장고, 시골 주방에 필요한 도구 등 오히려 살림이 늘어나는 것만 같다. 나중 언젠가는 나도 아주머니와 같은 얘길 하게 되려나. 십 년, 이십 년 후로 생각이 옮겨가려 하는데 “아유, 여기 곰취밭이야 얘. 그것도 곰취야. 거기 나무 밑에!!”  웃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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