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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결혼정보회사 CEO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보며 

 

※ 필자 김보화(파이)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달 8일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사회학회가 공동 주최한 “결혼문화와 국민의식 심포지움”에 다녀왔다. 여러 발표와 토론 중 가장 관심이 뜨거웠던 세션은 한 결혼정보회사 CEO의 발표였다. <“삶포세대의 한숨”: 통계로 보는 대한민국 결혼의 현 주소>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발표는 변화되는 결혼의 의미, 어려운 결혼 환경, 결혼 권하는 사회를 위한 의식 변화를 세부 내용으로 담았다.

 

상업적인 결혼을 권하는 회사의 CEO가 경영학회와 사회학회가 주최하는 심포지움에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이 학회인가? 기업 홍보의 자리인가?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학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누구를 ‘삶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의 삼포세대에서 나아가 제대로 된 삶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사용)라 칭하는가. 아니, 삶포세대를 조장하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삶포세대’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 기사는 소위 ‘엘리트, 기득권’ 층이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준, “결혼문화와 국민의식 심포지움” 참관기이다.

 

급기야 ‘결혼 장려 캠페인’의 시대
 

▲  한국경제신문, 보건복지부, 결혼정보회사 대명위드원 주관. “결혼 장려 공익캠페인, 인연 서포터즈” 모집 공고. 
 

급기야 ‘결혼 장려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저출산 고령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다는 캠페인의 허울 뒤에는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난다.

 

지금 한국경제신문, 보건복지부, 결혼정보회사 대명위드원의 주관 하에 “결혼 장려 공익캠페인, 인연 서포터즈”가 모집되고 있다. 안양시에서는 출산 장려 사진 공모전이 준비되다. 또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다둥이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직원들의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집무실에 걸어두었다던 ‘처녀, 총각 현황판’은 한낱 해프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깟 캠페인으로 사람들이 결혼하고 출산했을 일이라면, 진작에 했을 터. 결국 국가와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으로 섹스하고 동거하라는 얘기이다. 온 세상이 미/비혼 여성과 남성이 섹스하고 동거하는 것에 유례없는 총력과 관심을 기울이는 이때, 왜 결혼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왜, 어떤,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를 질문해보아야 한다.

 

‘부’의 재분배? ‘빚’의 재분배!

 

“결혼문화와 국민의식 심포지움”의 발표자는 ‘결혼에 부정적인 시대의 분위기’가 문제라며, 청년 실업, 출산율의 문제와 함께 결혼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 세대에 결혼을 통해 활발한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었는데, 장기적인 만혼, 비혼 현상으로 경제가 비활성화되고 부의 재분배가 약화되는 것이 문제이므로, 결혼을 통해 소비와 재분배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을 포함하여,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수십 명의 미/비혼 여성들은 수입 수준과 관계없이 한결같이 ‘돈’이 없어서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카드 결혼, 카드 신행(신혼여행), 카드 예물(예단)을 생각하고 있거나, 실제로 진행했다.

 

자녀 세대는 고사하고, 그렇다면 부모 세대는 ‘재분배’할 ‘부’가 있는가? 하물며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에서 기획 연재한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라는 기사에서도, 부모 세대가 얼마나 ‘힘들게’ 자식들을 결혼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재분배할 ‘부’가 있는 부모는 매우 극소수일 뿐 아니라, 결혼과 동시에 부모와 자식 모두 ‘빚쟁이’로 나앉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인 지금, 대형 결혼정보회사가 캠페인을 통해 부르짖는 결혼 캠페인의 대상은 ‘고소득, 전문직’인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를 일컫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혼 문제는 계층 문제이다. 그러나 결혼이 세대 간 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임을 은폐하고 결혼이 ‘모두에게 행복한 것’인양 낭만화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혼인율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이혼율도 높일 것이다.

 

‘결혼 적령기’ 여/남 나이의 미스매치

 

심포지움 발표자는 결혼정보회사 회원들이 원하는 배우자 선택 기준에 변화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나이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남자는 경제력이 갖춰지면 여자의 스펙보다 나이를 보기 때문에 여성이 불리하며, 남녀 합쳐 50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35-40대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잡고 오지만, 그 나이 대의 남자는 그 나이의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 하여, 여성이 최소한 30대 초반에는 결혼하도록 독려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남성이 원하는 나이 대에 ‘맞춰져야’ 한다. 이 시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자신의 목표만을 좇아서도 안 되고, 결혼할 나이를 넘겨서도 안 되지만, 능력이 없어서도 안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해, 왜 하는 결혼인가?

 

2000년대 이후 결혼 파업이니 출산 파업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하고 골드미스, 실버미스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이 교육을 많이 받고 취업률이 높아지면서, 이런 ‘문제’들이 등장한다고 말해지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여성을 겨냥한 제도적, 정책적 보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제도들 속에서 결혼 지연과 출산율 저하는 ‘여성 때문’이라는 역설이 만들어진다.

 

초혼 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일인데, 여성의 문제로만 지목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뿐만 아니라 남성은 자신의 능력만 성취하면 알아서 ‘어린 여자’들이 줄을 서기 때문에 결혼이 지연되어도 상관없고, 여성은 능력도 성취하고 ‘상품가격’을 위한 나이도 지켜야 하는 이중 족쇄에 걸려있음에도 여성의 결혼 지연은 문제가 된다.

 

마치 ‘중성적’이어 보이는 ‘결혼 지연’이라는 문제는, 사실은 철저한 성별 차이가 전제되어 있는 말이다. 또한 계층적 문제가 은폐되어 있는 말이다. 결국 만혼화, 결혼 지연, 출산율 저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에 대한 ‘비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결혼, 출산 장려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어 발표자는 결혼 권하는 사회를 위해 정부, 기업, 문화적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결혼장려 캠페인과 결혼홍보, 심지어 결혼교육, 결혼가산점까지 제시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선 결혼정보회사 홍보를 금지하고 있고,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싱글친화적 방송이 너무 많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그리는 막장 드라마가 많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홍보는 지금 흘러 넘쳐서 쏟아진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우리 결혼했어요, 님과 함께 등. 결혼, 재혼, 출산을 강조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 시청자들이 ‘육아 피로’에 젖을 정도인데, 얼마나 더 필요한가. 더욱이 이들 프로그램은 연애, 결혼, 육아를 막연하게 낭만화하고 있으며, 계층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박탈감을 더해줄 뿐이다.

 

발표자는 또 ‘만혼,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청년 취업난 때문이니, 기혼자에게 취업 가산점을 주자’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기혼자들은 결혼을 통해 충분한 세금 혜택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혼/비혼자들은 암묵적으로 싱글세를 내고 있는 실정인데 말이다.

 

발표자는 한 기업가가 ‘결혼한 직원과 하지 않은 직원이 일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한 말을 인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금을 바쳐야 할 국민이 필요한 국가는 그렇다 치고, 기업들이 그리도 결혼을 장려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대출이 있고 사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를 길러야 하는 부모야말로, 직장에 고분고분히 말 잘 듣고 저항하지 않고 절박할 것이 아닌가.

 

결혼은 누구나에게 미래는 아니다

 

근대 가족은 역사적 구성물로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이성애, 핵가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신화’일 뿐,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에도 ‘정상적’이었던 때는 없었다. 가족은 고정되어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어떤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2005)의 말처럼 ‘가족 이후에는 새로운 가족이 온다.’ 기존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신화가 깨지는 곳에서부터, 다양한 조건과 관계들에 대한 소통과 합의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 뉴욕대학의 사회학교수인 캐슬린 거슨(Gerson, Kathleen, 2010)은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과거에 비해 더 성평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의식과 실천이 분리되고 있다면서, 일과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의 혁명은 ‘미완의 혁명’(The unfinished revolution)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대는 고정된 가족 형태가 아니라 가족의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과 경로에 초점을 맞추어 삶을 조직하고 있다고 보면서, 이에 유연한 가족/젠더 전략을 제안한다.

 

‘젊은’ 세대들은 결혼하기 싫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못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 시대 결혼의 의미는 불안정한 조건들 속에서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친밀함에 대한 거래의 일부이자, 생존 전략들 속에 구성된 것이다. 더 이상 낭만적 결혼은 없다.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미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혼은 누군가의 미래일 수는 있지만, 누구나에게 미래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자본, 국가, 남성중심적 가치들의 응축적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의 결혼 강요 담론에서 무엇 때문에, 누가, 왜 문제라고 말하는지를 캐물어야 한다. 지난 4월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건강한 결혼 지원 업무 협약’을 맺었다. 이성애적, 가부장적, 출산 중심의 결혼이 ‘건강한’ 결혼이라는 의미다. 마음껏 해보시라. 이제 결혼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분석 대상’이다.

 

결혼,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새로운 형태를 지닌 과정으로서, 전략으로서의 다양한 관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김보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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