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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의 극단, 불태워진 여성들 
[죽음연습] 전설과 역사와 현실 속 ‘여성과 화형’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모니크 엔켈(Monique Enckell) 감독의 영화 <내가 1000살이라면>(Si j'avais 1000 ans, 1983)은 프랑스 서북부 지역 ‘브르타뉴’의 전설을 소재로 한다. 이 전설이 내 관심을 끈 까닭은 ‘임신한 여성을 화형으로 죽이려 했으나 불로 요술을 부려 할 수 없이 통에 넣어 익사시키는 수형에 처하기로 했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  모니크 엔켈(Monique Enckell) 감독의 영화 <내가 1000살이라면>(Si j'avais 1000 ans, 1983) 
 

이 여성은 도대체 왜 화형, 수형에 처해진 것일까? 불로 요술을 부렸다고 하니까 이 여성은 마녀일까? 마녀이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여성이 화형이나 수형을 언도 받은 진짜 이유는 ‘임신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처형하는 자들은 요술을 부리는 마녀라서 처형한다고 핑계를 댄다. 그렇다면 임신이 왜 처형의 이유가 되었을까? 십중팔구 혼전 임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니크 엔켈 감독 역시 같은 추측을 내놓았다. 감독은 2010년에 한 인터뷰에서 전설 속에 분명한 대답은 없지만 “남편 없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영주, 즉 정치 권력자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한 여성을 요술을 부리는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려 한 것이 단지 허무맹랑한 전설이고, 막연한 추측에 불과할까?

 

산 채로 불태워질 뻔한 ‘수아드’, 명예살인의 희생양

 

혼전 임신을 이유로 여성을 화형에 처하는 일은 믿기 어렵지만, 20세기에도 벌어진 실제 사건이라는 것에 놀란다. 일부 이슬람 사회에서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성 살인이 그것이다. 다만 국가 권력, 정치 권력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공동체에 의해 자행된다는 것이 전설과 차이가 난다.

 

<화형>(울림사, 2005)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수아드’라는 여성은 자신이 산 채로 불에 태워져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점령지구 웨스트 뱅크의 중농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10대 후반이 된 그녀는 이웃집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기에 앞서 임신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집안에서는 그녀를 명예살인에 처하기로 결정한다.

 

명예살인을 실행할 임무를 맡은 형부는 수아드를 불에 태워 죽이기로 한다. 수아드는 심한 화상을 입긴 했지만, 다행히도 서구의 한 인권단체 활동가 자끄린느에 의해 구조되어 유럽으로 도피해 목숨을 구한다.

 

수아드가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처벌을 받은 것은 1970년대였지만, 수아드가 그 일을 책으로 세상에 공개한 것은 21세기 초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여성을 화형에 처하는 명예살인이 사라졌을까?

 

산 채로 태워지는 명예살인의 희생양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증언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 따라서 그 끔찍한 일은 공동체나 가정의 비밀로 묻혀버렸다는 것, 이런 추측을 놓고 근거 없다고 그냥 무시하긴 어려울 것 같다. 화형이 아닌 다른 형태의 명예살인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미루어 보더라도.

 

혈통을 이어주는 도구로서의 여성

 

▲ 수아드 저, 김명식 역 <화형>(울림사, 2005) 
 

“명예살인은 완전함을 믿는 남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또한 명예살인은 완전함을 회복하고 완전함이란 환상을 실현하기 위한 가면이다.” -오은경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시대의 창, 2015)

 

터키, 유라시아 투르크 지역 전문가인 오은경은 자신의 소논문 “남성의 벌어진 상처, 명예살인”에서 가부장제의 여성이 민족의 일원,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남성의 논리를 통해서이고, 여성은 부권 혈통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기에 어머니, 아내, 누이로서 살아갈 뿐이라고 분석한다.

 

부권 혈통의 순수성, 완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아드’처럼 성적 순결을 잃은 여성을 아버지, 오빠, 외삼촌 등의 친족 남자의 입장에서는 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명예살인은 완전한 혈통, 순수한 혈통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여성의 성과 몸을 통제하는 이런 식의 남성중심적 논리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슬람 국가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이다. 근대 민족국가들이 내세운 논리일 뿐만 아니라,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 중세의 기독교 국가가 표방한 논리이기도 하다.

 

특히,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여성은 원죄를 지은 이브의 딸이자 불완전한 남성, 모자란 남성으로 재생산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여성은 남성의 혈통을 이어주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을 열등한 성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을 넘어, 남성을 유혹해서 악에 빠뜨리는 악마적 성으로 혐오하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혐오와 증오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유럽의 ‘마녀사냥’이다.

 

종교개혁 시기, 마녀를 ‘정화’시키기 위한 화형

 

마녀사냥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학자 간 의견 차이가 있지만, 16세기 말에서 17세기까지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즉,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시기가 마녀사냥의 절정이었다.

 

지역적으로 볼 때는 서유럽, 그 중에서도 종교 개혁이 활발했던 독일에서 마녀사냥이 극심했다고 평가한다. 사회를 정화하고 개인의 도덕성을 강화하고자 한 종교 개혁이 오히려 마녀사냥을 광적으로 치닫게 했다는 게 역설적이다.

 

물론, 마녀사냥으로 희생된 사람은 여성만은 아니었다. 남성과 어린이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자, 즉 지역에 따라 75-90%의 희생자가 여성이었다. 비록 고문으로 인한 강제 자백이지만 마녀라고 자백한 자의 절반 정도는 화형에 처해졌다. 이때 화형은 산 채로, 또는 죽여서 불에 태우는 처형을 뜻한다.

  

           ▲  모니크 엔켈 감독의 영화 <내가 1000살이라면>(Si j'avais 1000 ans, 1983) 중에서. 
  

당시 기독교인들은 성서 구절에 의거해 이단자를 화형에 처했다. 가톨릭 성서 요한복음 ‘15장 6절’을 읽어보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리나”라고 적혀 있다.

 

이단자는 화형을 당함으로써 불로 ‘정화’된다고 보았다. 또 불로 태우면, 이단자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마술을 부리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100년 전쟁의 프랑스 영웅이었던 잔다르크를 비롯해서 마귀가 들린, 사탄의 유혹에 빠진, 악마와 계약한 ‘마녀’로 몰린 여성들의 상당수가 화형을 당했던 것이다.

 

이들은 브르타뉴 전설 속 여인이나 오늘날의 수아드처럼 운 좋게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불에 타 재로 사라졌다.

 

가난한 독신여성들을 겨냥한 마녀사냥

 

마녀사냥은 왜 그토록 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갔을까?

 

유럽의 중세가 끝이 나고 근대가 시작되는 과도기, 즉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는 살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수 년 간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고, 흑사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으며, 농민 반란, 종교 전쟁이 벌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당대는 개인의 불행뿐만 아니라 사회의 재난도 모두 악마 탓, 마녀 탓으로 돌렸다. 혹시나 가난한 사람이 마술을 써서 내 돈을 빼앗을까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다. 가족이나 가축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 병에 걸리면,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면, 성기능을 상실하면, 마녀 짓이라고 믿었다. 지배 계층인 성직자, 재판관, 정부 관리, 지식인도 나쁜 일기, 전염병, 반란과 전쟁을 마녀의 소행으로 밀어붙였다.

 

마녀 이데올로기는 기만과 고문을 동원한 강제 자백, 공개 화형, 그리고 관련된 서적 출판을 반복하는 사이에 지배 계층과 민중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들 타인의 가난과 불행을 외면하는 자신의 죄책감과 죄의식을 전가시키고, 불확실한 세상이 안겨주는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악마와 결탁한 마녀 때려잡기에 나섰다. 마녀를 화형에 처해서 세계를 정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다.

 

마녀가 주로 여성, 그 가운데서도 늙고 가난한 독신여성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체로 50세 이상이었으며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많았다고 한다.

 

전쟁을 겪고 난 뒤에는 과부의 수가 늘어났다. 남편이 없는 데도 오빠나 성인이 된 아들 집에서 지내지 않고 독립해 사는 여성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중세 말 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독신여성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5-10%(최대 20%) 여성이 결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사는 여성들은 가난했다.
 

▲  브라이언 P. 르박 저, 김동순 역 <유럽의 마녀사냥> 
 

미국 역사학자 브라이언 P. 르박은 <유럽의 마녀사냥>(소나무, 2003)에서 여성이, 그것도 늙고 가난한 독신여성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중세의 남성지식인의 여성관에 의하면, 여성은 도덕적으로 나약한 존재라서 유혹에 잘 빠지는 존재다. 여성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적인 성욕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라도 성적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고 믿었다. 특히 결혼한 적이 있는, 홀로 사는 과부는 성욕 해소를 위해 더 쉽게 악마와 관계 맺을 것으로 보았다.

 

또 여성의 전통적 역할이 요리하고 돌보고 치료하고 출산을 돕는 것이다 보니까, 여성은 물약이나 연고 같은 ‘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든 여성이라면 민간요법으로 치료한 경험이 더 많을 테니까 남을 해치는 약을 만들 가능성도 더 높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게다가 당시의 여성은 법적 권리나 정치, 경제적인 힘도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 희생양으로 삼기 좋았다. 남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하층민 여성들이 늙고 무지한 데다,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심리적으로 우울증을 앓거나 노망까지 들었다면 얼마나 만만했을까?

 

평소 성격이 고약하고 입이 험해서 이웃과 자주 다투었다면 영락없이 마녀로 고발당했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파에 속해 있거나 이질적인 종교를 믿는 여성도 마녀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동네의 아는 사람이었다. 이웃은 전통적인, 소위 정상적인 행동 규범을 벗어나 다르게 사는 여성들을 향해 의심과 적의의 눈초리를 보냈다.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속해 있지 않는 여성이 손쉽게 마녀로 지목되었지만, 남편이 있는 기혼여성도 마녀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남편,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여성들이었다. 가족 내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남편이 아내를, 아들이 어머니를 마녀로 고발했다고 한다.

 

신, 법, 전통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여성살해

 

르박에 의하면,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새로운 도덕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인 어려움과 집단적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 이데올로기, 고문이라는 법적 장치를 동원해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파, 결혼하지 않는 처녀에게 ‘마녀’라는 딱지를 붙이고 화형이라는 끔찍한 형벌로 목숨을 빼고 희생양을 삼았지만, 임금이 올라 생활 조건이 개선되고 기후 조건이 나아지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회 제도가 생겨나고 전염병이 사라지자 마녀사냥의 광기도 사라졌다고 한다.

 

브르타뉴의 전설도, 서유럽 마녀사냥의 역사도, 오늘날 이슬람 사회의 명예살인도 신의 이름으로, 전통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 무엇보다도 남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 남성의 눈 밖에 난 여성, 남성 중심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여성을 죽여서, 심지어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잔혹한 행위까지 동원해서 공동체, 사회 또는 국가를 통제하고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불안과 위기감, 공포심을 해소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억울하게 산 채로 불타 죽은 여성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그토록 소름 끼치고 잔혹한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이 아직도 존재하리라는 것, 정말 믿고 싶지 않다.

 

마음 속 깊이 기도하며 호흡을 고른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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