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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풍경
[사람, 그리고 노동의 기록] 소인배 사장님

 

※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노동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서 삶의 방식, 삶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우리 회사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생색을 잘 낸다. 한번은 식당에서 소고기를 먹으며 전 직원이 크게 회식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장님이 얼마나 생색을 내는지, 얻어먹으면서도 참 기분이 나지 않았다. 수백만 원의 회식비가 나왔을 테니 기왕에 내는 거 크게 마음을 쓰면 좋을 텐데, 밥 한 공기 남겼다고 잔소리를 할 정도니까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렇게 큰 회식 자리에서는 사장님이 꼭 하는 말씀이 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니 조금만 참으면 직원들에게도 돌아가는 게 있을 거란 얘기다. 이 회사에 입사하고부터 매년 들은 얘기다. 하지만 직원 복지는 하나도 개선된 게 없다.

 

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는 직원들에게 건의 사항이 없는지 묻는다. 다들 침묵한다. 사장님이 잘 삐치는 성격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 현장 직원들은 다 빠져나가고 사무실 직원들만 사장님 주위에 남아있는, 회사식당의 회식 풍경. ©박조건형 
 

사장님은 남해바다 출신이라서 인지 해산물을 아주 좋아하신다. 회사 안에 식당이 있는데, 간혹 남해에서 공수해온 재료를 식당 아주머니에게 주고 요리를 주문하신다. 직원들에게 생색도 낼 수 있고 회사 밖에서 회식을 하는 게 아니니 돈도 별로 들지 않는 이중 효과가 있다.

 

이번에는 횟감을 준비해 오셔서 회사식당에서 작은 회식을 했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직원은 별로 없다. 사장님 비위를 거스를까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얼굴만 비추고 배를 채우자 마자 몰래 사라지기 바쁘다.

 

아니나 다를까, 40-50분이 채 안 되어서 현장 직원들 대부분이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그 흐름에 맞춰 몰래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좋아하는 고향음식이 있으면 혼자 즐기시던지, 아니면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직원들이랑 기분 좋게 식사를 하시지, 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40여분 만에 자리를 빠져 나왔다.

 

회식 자리를 마련하는 게 진정으로 직원들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직원들은 다들 알고 있는데, 소인배처럼 생색이라도 내지 말지는.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사장으로서 가졌으면 싶은 배포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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