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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청년층이 ‘달관세대’라고? 
<조용한 전환>이 보여주는 청년세대의 고통과 가능성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2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9세 청년 실업률이 11.1%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또 취업한 청년층은 남녀 모두 비정규직 비율이 30%대이며, 청년층 비정규직 10명 중 2명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프리터’(freeter. free+a rbeiter, 정규 취업을 포기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함)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준말. 일하지 않고 있으며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지칭함)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는 청년 니트족의 문제보다 청년 실업 문제가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지만, OECD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5-29세 중 니트족 비율은 18.5%로 OECD 평균(15.4%)보다 높다.

 

일본에서는 이미 1990년대에 프리터가, 2000년대 들어서는 니트족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니트, 프리터 등의 용어와 개념이 먼저 자리 잡은 일본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저항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사토리 세대’에 대한 다른 분석

 

▲  3월 24일 <조용한 전환> 출간기념 강연회. 한국 청년들과 만난 후쿠시마 미노리씨.(가운데)  ©일다 
 

<조용한 전환>(부제: 3.11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들>(교육공동체 벗, 2015)은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일본 청년 세대의 움직임과 이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다룬 책이다. 저자인 후쿠시마 미노리씨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현재 일본의 도코하대학 외국어학부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사회,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조용한 전환> 출간과 함께 한국을 찾은 미노리씨는 지난 3월 24일 서울 마포구의 ‘이글루망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미노리씨는 먼저 일본의 ‘사토리 세대’(돈과 출세에 욕심을 내지 않는 일본 청년 층을 지칭함)에 대해 언급했다.

 

얼마 전 한국의 모 일간지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 저, 이언숙 역, 민음사, 2015)에 등장한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에서도 ‘달관세대’가 출현했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20대 독자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등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는, 요즘 일본 청년들이 ‘장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면서도 지금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편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또 ‘요즘 시위나 볼런티어(자원활동가)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단지 일상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행위, 즉 자기만의 아지트를 찾는 행위’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미노리씨는 <조용한 전환>을 통해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대해 “저자가 주로 자기 주변의 엘리트 청년들에게서 힌트를 얻어서 쓴 책으로,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고통이나 3.11 이후 청년 세대의 움직임이 보여준 가능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미노리씨는 사토리 세대를 “깨달은 척하는 세대, 깨달은 척할 수밖에 없는 세대”라고 표현했다.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장기불황이었기 때문에 소비에 극히 신중할 수밖에 없는 체질이 이미 형성됐다”면서, “어느 정도는 제 욕망대로 해도 될 청년들이 너무 빨리 세상을 달관한 듯하게 만든 건 전적으로 기성 세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달관세대’ 보도처럼 일본 청년론이 한국에 수용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청년에 관한 책들이 한국에 줄줄이 번역되고 있지만 일본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경향이 있다”고. 또한 논의가 확장되지 않고 책만 번역되는 데서 끝나는 아쉬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네트카페 난민, 걸스 푸어…일본 청년의 빈곤

 

▲ 네트카페 난민이 된 청년들을 다룬 영화 <도쿄난민>(2014) 
 

미노리씨는 또,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한국 청년들은 절망의 나라의 불행한 젊은이들인데, 그래도 일본은 한국보단 낫다’는 논지를 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에서 취업 활동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청년들이 5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네트카페 난민’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네트카페 난민’은 주택이나 기숙사 등 주거 공간에서 여러 사정으로 퇴거를 당해, 일정한 거처 없이 24시간 영업하는 인터넷 카페나 만화방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미 2007년에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네트카페 난민 조사에서 총 5천4백명 중 20대가 27%, 30대가 19%로 청년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일본에서 작년 2월에 개봉해 화제가 된 영화 <도쿄난민>은 이런 네트카페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남성 오사무가 수업료를 내지 못해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집세를 못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노숙인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미노리씨는 또, 일본의 청년론에서도 주목 받지 못했던 ‘청년 여성’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사실 프리터나 비정규직이 일본 사회에서 문제로 떠오르기 이전부터 여성들은 이미 프리터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청년 여성들의 빈곤 문제를 다루면서 ‘걸스 푸어’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여성은 생계 ‘보조자’로서 취급되어 왔기 때문에 낮은 수입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64세 독신 여성의 32%가 ‘상대적 빈곤’에 처해 있으며, 특히 10-20대 여성의 빈곤은 심각한 상태이고, 그 태반이 비정규직 고용 상태다.

 

미노리씨는 이러한 정황을 설명하며, “여성의 빈곤은 (여성이)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게 하거나 풍속점(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에서 성적 노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근래 ‘기숙사 제공, 식사 제공, 탁아소 완비’라고 생활 지원을 내걸고 있는 풍속점이 늘어나고 있다”(189쪽)고 전한다.

 

3.11 동일본 대지진, 청년층을 흔들다

 

▲  후쿠시마 미노리의 <조용한 전환>(부제: 3.11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들>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이어진 20년간의 장기 침체기를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른다.

 

미노리씨는 <조용한 전환>에서 “마치 20년간의 긴 잠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면서, “3.11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웠는데, 여기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반응한 쪽은 청년 세대였다”고 설명했다.

 

“3.11 이전의 일본 사회에서 청년 세대는 사회적으로 그다지 쓸모 없는 존재로, 심지어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기성 세대들은 청년들에게 프리타, 니트, 파라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 20-30대가 되어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고 주거비와 식비를 모두 부모에게 의지하는 독신자)등 부정적인 딱지를 계속 붙여왔다.” -<조용한 전환> 13쪽.

 

일본 사회는 청년들에게 이런 딱지를 붙이고 ‘자기책임론’, 즉 집 없고 돈 없고 비정규직인 것을 본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강한데, 저자는 이것이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적 조건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 의욕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정치적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자민당 정권이 막을 내린 2009년을 전후로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분노 때문에 움직이는 일이 도통 없었던 일본의 청년들이 장기 경기 침체와 연금 불안, 초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증세 문제 등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발언을 시작한 것이다. 미노리씨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3.11이었다고 본다.

 

“3.11의 의미는 전후 70년간 이어져 온 근대적 삶(시스템)과의 결별”이라면서, 이 사회로부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껴 온 청년들이 3.11을 만나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행할 시대적 맥락을 획득했다고 해석했다.

 

청년들의 사상, 청년들의 저항

  

▲  3.11 이후 탈핵 집회에 참여한 청년들. ©후쿠시마 미노리  
 

<조용한 전환>에는 3.11 이후 탈핵 집회와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모습부터,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셰어하우스’, 노숙인의 삶의 방식에서 착안한 사카구치 교헤의 ‘제로엔센터’(월세 3만엔에 빌린 집을, 방사능 오염을 피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피난소로 만든 것. 숙박비 0엔, 광열비 0엔의 피난소) 등이 소개되어 있다.

 

기성 세대가 아닌 청년들 자신이 말하는 청년론도 등장한다. 일례로 기성 세대가 ‘니트족’에 덧씌운 청년의 이미지(의욕 없음, 틀려먹은 인간)를 거부하고 ‘근면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20세기적인 노동 가치관을 부정하며, ‘노동은 타락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슬로건을 내거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 니트 당사자들은 ‘니트적인 것’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며, 매년 ‘니트축제’를 여는 등 나름의 실천을 만들어가고 있다.

 

책에는 일본의 청년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씨가 제안한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도 등장한다. 이 계획은 ‘다크 투어리즘’(히로시마,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등 역사적인 비극의 장소로 가는 새로운 여행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처음에는 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지지층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의 목적 중 하나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원전 사고에 대한 망각과 무감각이 퍼져가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시민들이 관광객이 되어 원전 폐로와 마을 재건 과정에 함께 하는 것이다.

 

또 아즈마 히로키씨는 ‘괴물화’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미디어에서 후쿠시마를 ‘죽음의 마을’로 규정하면서 망각해버리는 것은 후쿠시마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낳는다는 것. 그는 관광을 통해 후쿠시마 사람들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자고 호소한다.

 

한국의 청년 세대 이야기와 만날 수 있길

 

3.11 전후로 시작된 청년들의 새로운 움직임은 2012년 말, 민주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보수당인 자민당이 재집권하면서 한풀 꺾이기도 했다. 하지만 3.11로부터 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청년들의 다양한 발신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미노리씨는 전한다.

 

<조용한 전환> 출간 기념 강연회. 한국 청년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후쿠시마 미노리씨(가운데) ©일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고도경제성장과 글로벌화가 계속되면서 생겨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좋은 파트너라고 말한다.

 

“3.11 이후 일본의 청년 세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21세기형 사회 모델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정치적인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대의 담지자로서의 청년들은 수면 아래에서 그 보폭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이런 일본의 청년 세대 이야기가 한국의 청년 세대의 이야기와 분주히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조용한 전환> 17쪽.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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