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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손으로 헤이트스피치 규제 조례 제출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만든 조례안 

 

 

‘자이니치(재일조선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이 2009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조선인을 일본에서 몰아내자”라고 고함을 지르며 교토조선제1초급학교(당시)를 습격했던 사건에 대해, 일본 대법원은 2014년 12월, 재특회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 집회)를 인종 차별이라고 인정, 재특회에 손해배상을 명하는 등의 오사카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일본 국내법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금할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재일조선인이 거주하는 오사카시에서, 시민의 손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는 조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4년 7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은 차별을 부추기는 헤이트 스피치 대책을 마련하는데 힘쓰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9월에 오사카시 ‘인권시책 추진 심의회’에 검토 회의를 설치했다.

 

한편,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NPO법인 다민족공생인권교육센터’와 변호사, 연구자 등이 ‘행정에 맡기지 말고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함께 만들자! 오사카시 헤이트 스피치 규제 조약’이라는 시민단체를 결성했다.

 

오사카시 이쿠노구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한국 혹은 북한 국적을 가진 구민들이다. 이들에 대해 설문 조사를 통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재일조선인 1천 명의 목소리를 모았다.

 

또, 세 차례에 걸쳐 워크숍과 스터디 모임을 열어 논의를 거듭했다. 1만명을 목표로 했던 조례 제정에 대한 구민 서명에는 1만8천921명의 목소리가 모였다. 그리고 1월 29일, 서명과 조례안이 오사카시에 제출되었다. 

 

   ▲  2015년 1월 13일, ‘함께 만들자! 오사카시 헤이트스피치 규제 조례’ 스터디 모습.   © 페민 제공  

 

사무국 차장인 문공휘 씨(다민족공생인권교육센터)는 “마침내 출발점에 섰다.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라며,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 피해당사자인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시민, 법률가와 연구자가 함께 조례 제정에 몰두해온 과정에 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혐오 집회 일정을 확인하고 외출해야 하는 상황

 

이쿠노구의 현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철 츠루하시역 앞에서는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쿠노구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의 자유 답변란에는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다.

 

“주부, 젊은 여성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가하여 큰소리로 고함치고 있는 것이 무서워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본명으로(한국 이름) 일본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괜찮을까?”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우리보고 어디로 돌아가라는 건가!”

 

문공휘 씨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할 때, 가려고 하는 곳에 헤이트 스피치가 예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피해는 헤이트 스피치 현장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를 계속 방치하면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 대한 신뢰와 안심감 역시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는 것 역시 큰 피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재특회 측에서 “조선인 죽어라! 죽여라!”라고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쳐도, 현행법에서는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번 조례안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차별 행위’로 정의했다. 그리고 공공시설이나 도로 사용허가에 대한 사전 규제와 벌칙까지 다루고 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당사자와의 대화와 논의 속에서 “인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명확히 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벌칙도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이 조례의 최대 목적은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권고나 설득 등 몇 단계나 되는 절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가 발생했을 때의 벌칙 규정입니다.”

 

[헤이트 스피치 규제에 관한 조례](발췌)

 

(시의 책무) 제3조 헤이트 스피치를 비롯한 인종 차별을 철폐할 의무를 갖는다.

2. 시는 헤이트 스피치를 장려, 옹호 혹은 지지해서는 안 된다.

3. 시는 헤이트 스피치가 공공 장소에서 이루어지거나 확산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홍보 및 계몽활동을 해야 한다.

(시민의 책무) 제4조 2. 시민은 공공연하게 헤이트 스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했을 때, 신속하게 헤이트 스피치 침해방지위원회에 신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피해 구제와 가해 방지) 제13조

(시정 등의 권고 등) 제14조

(벌칙) 제18조 공공연하게 협박적, 혹은 모욕적인 양태로 헤이트 스피치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인종차별 철폐 위한 노력은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

 

‘함께 만들자! 오사카시 헤이트 스피치 규제 조약’의 세 번째 스터디 모임에서 ‘국제인권기준으로 본 지자체의 인종차별 철폐 대책’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일본이 인종차별 철폐조약에 가입했음에도(1999) 조약에 걸맞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차별을 야기하는 법제도를 재검토하고 실태 조사, 인종차별 철폐 교육, 혐오범죄 및 헤이트스피치의 금지 등을 통해, 국내 인권기관과 개인신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최소한의 노력일 텐데, 국가는 이를 일절 실행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2014년에 겨우 자민당을 제외한 국회의원들이 초당파 의원연맹을 결성해 작년 11월에 ‘인종차별철폐 기본법안’ 시안을 정리했지만,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로 인해 중단되었다.

 

한편, 인종차별 철폐조약 수행은 국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제인권법에서 ‘체약국’의 의무는 지자체를 비롯한 모든 공적 기관의 의무이다. 또한, 국가의 움직임이 민첩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가 먼저 움직여 국가에 입법을 촉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남녀공동참획기본법(한국의 남녀차별금지법에 해당)도 도쿄도와 사이타마현에서 먼저 조례를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에 국가가 응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차별 해소법도 같은 흐름으로 탄생했다.

 

모로오카 변호사는 “지자체가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의무’”라고 강조하며 “이번처럼 오사카 시민인 외국 국적자와 일본 국적자가 함께 노력해 행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 국적 주민이 많은 오사카시에서 좋은 선례를!

 

오사카시에서는 구정 운영에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목적으로 각 구별로 주민과 구청 직원 등에 의해 구성된 ‘구정회의’가 마련되어 있다.

 

작년 12월, 이쿠노구의 구정회의에서 오사카시장을 상대로 헤이트 스피치 대책을 요구하는 요청서가 전원 일치로 채택되었다. 문공휘 씨는 “이쿠노구민들이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해줬다. 마음 든든하다”며 기뻐했다.

 

한편, 오사카시의 검토회의는 여섯 차례 개최되었지만, 당사자 인터뷰는 한 번 실시했을 뿐 실태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문씨는 실태 파악을 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현행법 해석을 둘러싼 논의만 하다가 실효성 없는 조례가 되어버리지 않을지 우려를 표했다.

 

“하시모토 오사카시장은 좋든 나쁘든 ‘대담함’을 정치적인 신조로 삼는 사람이다 외국 국적 주민이 많이 사는 오사카시만이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국가의 인종차별 철폐기본법 제정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샤노 요코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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