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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뜨거운 관계’에 대한 질문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벗어나고 싶었던 이름 ‘가족’

 

“오늘 대보름인데 우리 딸은 그런 거 상관 없이 지내지?”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은 몇 해 전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계신다. 같은 성씨를 가진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다. 지난 설에 친지들께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며, 찰밥과 나물을 지어 나누어 드렸다고 했다. ‘아, 우리 엄마는 그런 분이었지’ 새삼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함께 사는 친구가 어머니가 보내셨다며 나물을 싸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글을 쓰러 나오는 길에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을 한번 바라보았다. 

 

           ▲  ‘생각다방 산책극장’ 친구들.   © 이내 
 

친구들과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공동체 비스무리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서늘한 관계를 늘 지향해왔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든 끝날 수 있으며 너에게 전적으로 자유가 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한다. 그만큼 나에게도 어떤 요구도 해오지 말길 바란다. 있는 그대로 너를 받아들일 테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 이런 식의 태도는, 함께 살며 겪게 되는 일상의 자잘한 문제들을 자주 해결해준다. 순간의 사안에만 집중하면 감정적으로 꼬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나는 믿어온 것이다.

 

그것은 사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습관 같은 것이다.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벗어나고 싶은 이름이었다. 청소년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벗어나겠다는 반복된 결심이었다. 주위를 돌아봐도 우리 집처럼 ‘가족’은 이상하게 얽혀있는 관계들이었다. 가난한 동네에는 폭력적인 아버지들이 어디에나 있었고, 남동생을 위해 여자인 내 친구를 일터로 보내는 야속한 어머니들이 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이 지긋지긋하게 여겨졌다. 내 선택이 아닌 것의 영향을 벗어나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우기며 지독한 개인주의자를 자처해왔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여행이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지난 한 해를 살아왔다. 우연과 운명을 믿는 여행에서, 내 선택은 매우 작은 부분이었다. 내 선택이 아닌, 오히려 나를 선택한 것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그래서 다시, 미뤄두었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내 선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분명한 사실처럼, 나는 일정 기간 가족의 전적인 희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뜨거운 관계들이 가진 희생을 잊은 채 서늘한 관계만은 좇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실 두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내 곁의 사람들 역시, 서로가 서로의 따뜻함을 원하지 않았다면 ‘함께’라는 모습은 불가능했을 거다.

 

내 가족들도 길 위의 평범한 사람들이었구나

 

▲  엄마와 나    © 이내 
 

지난 설날 아침에 친척들을 만나러 집을 나서는데, 길 건너편 집에서 윷놀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까르르 웃으며 ‘모야!’를 외쳤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부산 칠산동은 분명 부산의 대표 고향임에 틀림없다. 몇 번의 명절을 보내다 보니 좁은 동네 골목길에 차가 많아지고, 손에 선물보따리를 들고 곱게 차려 입은 가족들이 붐비는 풍경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보통은 이곳이 도시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지만 일년에 두 번 동네가 시끌벅적해진다.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마음을 먹고 기타를 들고는 갔는데, 꺼내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세 곡을 부르고 한 곡 앵콜을 받았다.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를 함께 불렀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서 부르는 후렴구에서, 다들 여행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내 가족들도 내가 그간 노래를 부르며 만나온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피하고 도망 다녀왔나 싶어졌다. 예수는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나의 신성모독을 후회했다.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또 동시에 한 인간으로 서야 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이토록 약한 존재인데, 부모님에게는 어떤 완전함을 요구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가족에게는 그러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노래 여행은 그간 마주하지 못했던 ‘뜨거운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오고 있다. 나는 길 위에서 그 대답을 찾아나가야 하고. ▣ 이내/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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