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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들, 문제의 본질은 ‘보육이 돈벌이된 것’
공적 인프라 확충 통해 보육의 질 높여야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이후 정부가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어린이집CCTV 설치 의무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아동학대 발생 즉시 해당 보육시설을 폐쇄하는 것), 보육교사 국가고시 제도 도입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부모나 교사 등 ‘보육 주체’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정부의 대책이 근본적인 문제는 비껴가는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는 ‘하늘의 별 따기’

 

1월 29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보육 문제와 관련해 여성단체들이 긴급 토론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정말 불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이 자리에는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임신 중인 부모들이 직접 나와서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했다. 

 

            ▲  1월 29일 여성단체 긴급 기자회견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정말 불가능한가?” © 일다 
 
7세, 10세 두 아이의 엄마인 김영진 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 취업을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일을 다시 할 생각으로 공립 어린이집을 신청했지만 이미 대기자 수는 1백 명이 넘었다. 민간 어린이집은 보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김씨는 취업을 포기하고 아이를 양육했다.

 

두 아이가 각각 2살, 5살이 될 때까지 매일 집에서 씨름하며 살다보니 김씨는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었다. 급기야 대인기피증까지 생기자, 안 되겠다 싶어 민간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김씨는 원장과 상담하면서 자신이 직장에 다니지 않아서 아이를 일찍 데리러 올 수 있고 주 2~3일만 보내고 싶다고 말했지만, 원장은 거절했다. 출석률이 적으면 정부로부터 운영 경비를 지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아니었다” 라고 말한다.

 

게다가 어린이집에서 한 선생님이 아홉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두 아이를 직접 키워봤기에, 그게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급여나 복지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던 김씨는 어린이집에 좋은 보육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두 아이 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필요할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원해’

 

직장에 다니며 6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정해 씨도 어린이집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어린이집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 신규 어린이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자치구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어가야 비로소 어린이집 개소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구한다 하더라도 맡아주는 시간이 문제였다. 오후 4시 전에 아이를 찾아가길 원하는 어린이집이 많았기 때문이다. 워킹맘인 이정해 씨는 늘 아이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인천 어린이집 사건을 보고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한들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럼 내 아이는 갈 데 없어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어요.”

 

부모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건 ‘필요할 때 기다리지 않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다.

 

재정 지원만하는 무상보육은 한계 직면

 

우리나라의 보육 재정 체계를 보면 영유아 보육이나 교육에 투자되는 비용이 이미 OECD 평균을 넘어섰으며, OECD 권고 수준인 GDP 대비 1.0%에 근접하고 있다. 재정의 크기만을 봤을 때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백선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월간복지동향> 2012년 8월 15일)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무상보육’ 공약을 내걸어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토론 및 기자회견을 주최한 3개 여성단체는 현재 보육 문제의 핵심은 ‘보육이 돈벌이가 된 것’에 있다고 지적한다.

 

무상보육이 시작될 때 이미 여성운동 단체들는 ‘재정 지원만 하는 무상보육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민간이나 가정 어린이집이 절대 다수인데 관리 감독은 미흡하고, 공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 지원만으로 보육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이러한 의견을 무시하고 재정 지원만 확대하더니, 이제 와서 아동학대 사건을 빌미로 ‘무상보육’이 문제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방청석에 있던 안미선 씨는 “외국과 견주어도 보육에 들어가는 예산이 적지 않다. 문제는 정부 예산이 민간 시장으로 흡수되면서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이 사적인 재산처럼 쓰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5%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 늘려라

 

▲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 중 5%대에 불과하다.  © 은아 
 

다섯 살 아이의 아빠인 김완 씨도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가다보니, 배분을 받는 사람들끼리 갈등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보육에 대해서 정부가 ‘국가가 할 일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보조해준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보육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공공의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김완 씨는 장모님이 3분 거리, 어머님이 10분 거리에 살면서 아이를 봐주고 있지만,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김씨는 ‘학교 교육처럼, 보육의 경우에도 부모들이 어떤 이유로 어린이집을 보내든 보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울시 사례가 소개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3년간 ‘국공립 어린이집=신축’이라는 공식을 깨고, 학교 유휴 건물 등을 활용하거나 공공시설 신축 시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식 등으로 296개소의 어린이집을 확충한 바 있다.

 

하지만 전국의 상황을 보면 비관적이다. 2010년 대비 2013년 시설 유형을 살펴보면, 전체 어린이집이 5천749개소 증가했는데 그중 국공립 어린이집은 5.2%에 불과하다. 여성단체들은 “전체 어린이집 중 겨우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육교사 공적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해야 하지만,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민간어린이집을 관리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존의 어린이집 평가인증 시스템을 바꿔서 학부모들이 직접 평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박 사무처장은 “평가인증 시스템이 실질적인 거름망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평가인증 시기에만 반짝 잘하고 만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더불어 필요한 것은 ‘보육교사 공적 관리 시스템’이라고 여성단체들은 제시하였다.

 

어린이집 운영의 전반적인 상황이나 아이들의 생활은 보육교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개별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 임면권을 갖고 있다 보니, 교사가 어린이집 상황을 모니터링하거나 이를 외부에 알리기 힘든 현실이다.

 

박차옥경 사무처장은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내부 고발하는 교사가 보호를 못 받고 있다. 어린이집 운영 문제를 외부에 알린 한 보육교사는 다시 어린이집에 취업을 못하고 지금 보험 판매원이 되어 있다”면서, “지금의 구조가 교사와 원장을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어린이집 문제를 자유롭게 공론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육교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공적 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의 형태로 시스템을 만들어 보육교사를 계속 관리하고 재교육도 하며,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필요하다고 할 때 이곳에서 추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

 

부모와 교사가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한편, 부모와 어린이집 교사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3년 터울의 아이 두 명이 있는 직장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방청객은 “어린이집이 민간 영역에 있으면 학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둘째 아이가 있는 어린이집이 아동학대 문제로 폐쇄됐었어요.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적어요. 어린이집 운영에 학부모들이 관심 갖는 것에 대해서 불쾌해해요. 무리하게 요구하면 별난 엄마 취급을 받게 되죠.”

 

또한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1년에 두 번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열려서 가 봤지만, 매우 형식적이어서 실망스러웠다. CCTV 단다고 불안감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학부모들이 교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어린이집에서 부모와 교사가 아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은 원장의 재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어린이집은 부모가 보육실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반면, 어떤 어린이집은 매달 부모와 교사가 아이의 생활 습관부터 친구 관계 등을 공유하고 함께 대안을 찾기도 한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정부가 학부모가 참여하는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를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게 제대로 실행되느냐다”라면서, 부모협동조합에서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의 사례를 모델로 할 것을 제안했다.

 

“매월 ‘반모임’을 해서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합의하는 거죠. 공동육아로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1년에 한 번씩 학부모 총회를 하기도 해요. 어린이집이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부모들 입장에서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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