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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연애’라는 전형적인 각본을 벗어나 

 

※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가끔 영화 이야기도 한다. [weiv]를 포함한 몇 웹진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 블럭(박준우) 소개

 

 

지금까지 <일다>에 ‘한 곡 들여다보기’라는 기획을 가지고 격주로 글을 연재해왔지만, 사실 매번 소재를 찾아서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제껏 소개했던 음악 외에도, 여성주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곡들은 더 있었다.

  

▲ 노 다웃(No Doubt)의 보컬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곡 중에도 그런 곡이 몇 있다. 펫 샵 보이즈는 영국의 2인조 전자음악/신스팝 듀오이며, 1981년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게이 문화를 대변하기도 하며 중의적인 가사로도 유명하다. 이들의 곡 중에는 “Was It Worth It?”처럼 커밍아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곡도 있고, “Being Boring”처럼 게이들의 경험을 드러낸 곡도 있다.

 

노 다웃(No Doubt)이라는 밴드의 “Just A Girl”이라는 유명한 곡도 있다. 노 다웃은 보컬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가 있는 팝/록 밴드다.

 

또 마돈나(Madonna)의 곡 중에서 성녀/창녀 이분법을 거부하는 “Like It Or Not”과 “Survival”을 포함하여, 여성이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Human Nature”라는 곡도 감상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들 중에서 페미니즘의 순간을 더 많이 찾고 싶었다. 신곡이나, 유행에 가까운 곡들에서도 새로운 순간을 발굴해 일상에 가까이 두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외국의 음악이 아닌 한국의 음악에서도 의미를 찾았다.

 

기력이 모자라 미처 소개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최고은의 새 앨범 [I Was, I Am, I Will](2004년 11월)에도 좋은 곡들과 좋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온전히 기사로 써볼 자신이 없었다.

 

쿨하게 혹은 단호하게 이별하는 그녀들

 

그렇게 여러 곡을 찾는 도중에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많은 블로그와와 매체들이 비욘세(Beyonce)가 불렀던 이별 노래를 페미니즘이 담긴 노래로 분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바로 다가오지 않아 나의 예민함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곡들을 잘 들여다봤다.

 

“Irreplaceable”, “Best Thing I Never Had”, “If I Were A Boy” 등이 해당하였다. 비슷하게는 씨애라(Ciara)의 “Like A Boy”가 여성 임파워링(힘 모으기) 플레이리스트, 혹은 페미니즘 플레이리스트에 선정되었다.

 

▲   비욘세(Beyonce)의 “Best Thing I Never Had” 
 

비욘세의 곡 중에는 “Run The World (Girls)”, “Single Lady”를 비롯해 여성 임파워링의 의미가 확실한 트랙도 있고,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 [BEYONCE](2014년 12월)에서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좀더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기도 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고 발언하고 있으니, 비욘세를 의심하거나 그의 작품 전체를 분석해볼 생각은 없다. 다만, 앞서 말한 몇 곡들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비욘세의 “If I Were A Boy”와 씨에라의 “Like A Boy”는 성별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내가 남자라면’ 혹은 ‘남자처럼’ 행동할 거라는 식의 가사가 주를 이룬다. 이는 성별 스테레오타입, 혹은 전형적인 상황에 맞춰져 있다. 나쁜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 받는 상황에서 ‘내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의 가사는 그래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두 가수 모두 힙합, 알앤비 음악을 기반으로 댄스를 격하게 추는 흑인 여성가수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반면, 비욘세의 두 곡 “Irreplaceable”과 “Best Thing I Never Had”는 이별의 상황에서 쿨하게 상대방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데미 로바토(Demi Lovato)의 곡들도, 노래를 부른 사람의 의도는 LGBT(성소수자.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임파워링을 위한 것이었지만 가사 자체는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노래 중에서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I’m Gonna Be Strong”이라는 곡이 있다.

 

이외에도 ‘feminist, empowering, breakup, song’ 등의 키워드로 꽤 많은 노래들이 검색된다. 이러한 곡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별에 대처하는 여성의 자세가 굉장히 단호하고 쿨하며 때로는 씩씩하다는 점이다.

 

순종적 여성 이미지를 벗고서

 

▲   씨에라(Ciara)의 “Like A Boy” 
 

왜 이러한 노래를 페미니즘과 엮어서 이야기하는지는 알 것 같다. 기존의 사회적 역할 속 남성성과 여성성은 커플이 되었을 때 정형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페미니즘적 태도란 ‘순종적 여성’ 관념에 대항하는 것도 있을 테고, 같은 맥락에서 기존의 남성성에 대항하는 면모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남성이 가진 강압적 태도, 이별을 ‘당하는’ 여성의 자세에 저항하는 입장으로 해석한다면, 이들 가수들이 부른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페미니즘과 연관이 될 수 있다. 관계의 주체를 다시 규정하려는 시도이자, 타자화된 시선을 벗어나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순종적 여성’의 이미지를 벗는다는 것은, 여성을 성녀/창녀로 구분하는 이분법의 틀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꿋꿋하게, 쿨하게 상대를 떠나 보내는 여성은 수동적이고 정숙한, 혹은 순결한 여성도 아니며, 그렇다고 집착이나 욕망이 강하고 남성을 위협하는 여성도 아니다. 보다 주체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페미니즘과 직결될 수 있을까? 관계의 형태가 다양할 수 있듯, 이별의 형태 역시 다양할 것이다. 대차게 떠나 보내기에 슬픈 사랑도 있을 것이고, 좋은 관계로 남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도 모든 이별 노래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지는 않을뿐더러, 남성을 원망하거나 혹은 꿋꿋하다고 해서 다 페미니즘과 연관되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이별을 표현하는 음악들 간의 온도 차이는 미묘하다. 더욱이 대부분의 음악 가사들이 상황보다는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 온도 차이를 파악하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과 직결되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믿음, 연인 간의 역할이 구분되는 성별화된 사랑, 혹은 남성은 ‘몸’으로 대변되고 여성은 ‘마음’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적 양상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해서 학습하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페미니즘과 직결될 수 있을까? 정답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그렇다’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려 한다.

 

물론, 이별 이전에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답안일 것이다. 상상력을 조금만 키우면 남성성과 여성성, 몸과 마음,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태도와 구분 지을 수 있다. 관계라는 영역 안에서는 수많은 실험이 가능하다. ▣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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