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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대학의 숨은 그늘, 성폭력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4.12.24 09:30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이 살아나야 한다
서울대 ‘천재 수학자’ 교수 성폭력 사건을 돌아보며 

 

 

대학가에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등에서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아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서울대 수학과 교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사건이 공개된 이후 서울대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명의 피해자가 비슷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줄줄이 고발함으로써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교수가 외국으로 출국하려는 정황이 포착되어,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성추행 혐의로 교수가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서울대는 해당 교수에게 제대로 된 징계를 하지 않고 사표 수리만 했다가, 문제가 커지자 사표 수리를 철회하고 뒤늦게 징계 절차를 진행하였다.

 

고려대의 경우에도 공대 교수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했는데, 이를 단지 사표 수리만 하고 별다른 징계를 하지 않고 있어서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학생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라는 대자보를 통해 대학 측의 미온적인 처사에 항의를 표하고 있다.  

 

© 출처: 중앙대 성추행 교수 징계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앙대 2대 성평등위원회’  
 

중앙대 교수 성폭력 사건은 과거 여러 차례 성폭력 신고가 있어서, 학내 인권센터 차원에서 사건을 조사하여 징계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중앙대에서는 가해교수의 사표 수리를 유예한 채 심지어 계속해서 수업을 맡기고 있어서, 징계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다.

 

사실 한국 사회 전체를 통틀어서 대학은 성폭력 신고 및 처리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성폭력 사건 처리를 전담하는 직원조차 없는 대부분의 회사와는 달리, 그나마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전임 상담원과 관련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성폭력 신고를 접수하는 부서조차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는 ‘과연 누구에게 신고를 해야 하는가’ 하는 최초 단계에서부터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조용히 은폐되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성폭력 사건의 잘못된 처리를 두고 문제 제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진전이라면 진전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 내 성폭력상담소가 만들어지고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폭력 사건이 처리되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된다.

 

성폭력은 ‘천재 학자’를 물러나게 할 수 있을까?

 

요즘 대학 교수의 최고 덕목은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발표하여 실적을 많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학술재단에서 연구비를 많이 따올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대학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지금,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일수록 천재 학자, 스타 교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학 본부가 일부 교수들에 대한 징계를 망설이는 이유다.

 

최근 문제가 발생한 서울대 등 소위 ‘명문’ 대학들은, 과거에 교수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교수를 해임한 전례가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성폭력 처리 절차를 몰라서 우왕좌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러 개의 권위 있는 상을 받고, 하버드대 예일대 등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대학의 교재로 쓰이는 책을 집필하여, 이제 겨우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오르려는 교수를 어떻게 단칼에 해임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기여도 없는, 고작 인턴학생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징계라는 일면 단호해 보이는 칼날은 어떤 때는 매우 예리하게, 어떤 때는 매우 무디게 움직이는 셈이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비단 대학 본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성폭력 가해교수라고 하면 무능하고 악질적인 이미지가 부각되지만, 오히려 현실에서 성폭력 가해교수들은 유능하고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친화적인 경우가 더 많다.

 

서울대 가해교수의 경우에도 뛰어난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평소 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힙합을 추는 등 허물없는 교수로도 유명했다. 이런 유능함은 여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수직을 유지시켜주는 발판이 되며, 나아가 학생들과의 친화력은 다른 피해자를 물색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학생들도 지도 교수의 유능함이 자신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더라도 이를 참고 넘긴다.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신고를 망설인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는 늘어간다. 또한 ‘누군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도 여전히 가해교수가 건재하다는 사실은, 다음 피해자로 하여금 더욱 더 신고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대학의 숨은 그늘, 강사 성폭력

 

한편, 교수 성폭력 사건은 한 건이 발생하여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그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문지상을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 빈도가 더욱 많은 것은 시간 강사에 의한 성폭력이다.

 

요즘같이 학점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학생들은 강단에 서는 강사의 눈에 들기 위해서 반짝 반짝한 눈빛을 보내며 작은 관심에도 기뻐한다. 그러나 이는 그 강사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고 오해한 일부 강사들은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차 한 잔 하자는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고, 급기야 성추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서 성추행 사실이 문제가 되면, 학생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애정의 눈빛을 보냈는지 말하며 변명하는 걸 볼 수 있다. 학생들과 평등한 관계로 수업하라는 것이 학생과 교수라는 지위와 직분의 경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연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학내 성폭력 예방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교수들이 1년에 한 번 교수회의 등을 통해서 억지로라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는 것과 달리, 강사들은 온라인 예방교육 이외에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할 수단이 별로 없다. 또한 교수의 경우 학내 징계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는 해임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사건 접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강사는 해촉이 자유롭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공식 징계가 아니라 다른 사유를 들어 조용히 해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강사에 의한 성폭력은 공식적인 징계 사건으로 처리되지 않고 학과 차원에서 은폐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정을 알기 힘들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로서는 가해 강사가 타 대학에서 계속 출강하고 있어도 이 사실을 타 대학에 고지한다든지 강의를 금지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반성폭력 학칙 개정은 10년째 답보 상태

 

현재 대부분의 대학이 가지고 있는 성폭력 처리 규정은, 2000년대 초반 총여학생회와 여학생위원회를 비롯해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반성폭력 운동을 전개한 성과물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제정된 규정들이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여기저기 개정할 곳이 많은 데도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없어지거나 총학생회 산하 성평등위원회로 개편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없는 대학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학칙을 개정하자고 힘있게 주창할 주체가 없기 때문에, 반성폭력 학칙 개정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성폭력 신고에 관한 조항을 들 수 있다. 2013년 6월에 성폭력 친고죄가 폐지되어, 더 이상 피해자의 신고가 있어야만 성폭력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학 상담소들은 피해자 신고 조항을 법개정 이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학 내에서 직권 조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자거나, 신고 관련 조항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성폭력 관련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규정이 잘 적용되고 처리되는가를 감시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발생한 교수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은, 규정이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당국이 처벌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학내의 여론과 학생들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학생 자치활동 자체가 약화된 현실 속에서 과연 학생 사회가 그럴만한 힘이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보다 먼저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미국 사회도 최근 대학 내 성폭력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4년 1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학 내 성폭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는 기자 회견을 한 바 있다. 모든 문제 해결 과정이 그러하듯, 한 번 학칙을 제정한 것만으로 대학 내 성폭력이 근절될 수는 없다. 아무리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교수라도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해임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관련 학칙을 개정하고 감시하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이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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