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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으로 가는 다리를 잇자!
만민공동회 모인 삼척, 밀양, 청도, 경주, 부산, 영덕주민들 
 

 

 

“모르는 게 죄라고 조금만 알았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할머니들이 법원에, 검찰에 불려 다니고 있습니다. 송전탑 반대했다고 검찰에 조사받으러 갔는데 공안 검찰이 우리를 조사합니다. 내 재산 피해 입고 내 건강 피해 입어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건데 우리가 왜 공안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됩니까?”

 

경북 청도 삼평리 이은주 전 부녀회장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강단이 있었다. 

 

      ▲ 7월 21일 새벽, 기습적으로 경북 청도군 삼평리에 345kV 송전탑 23호기 공사가 재개되었다.  ©성빛나  

 

지난 7월에 삼평리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후, 이에 맞서 싸워왔던 주민들은 현재 업무 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청도에 송전탑은 들어섰지만 청도주민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송전탑 반대하다 보니까 ‘탈핵’을 알게 됐습니다. 핵발전소가 없으면 송전탑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삼평리에서도 밀양처럼 ‘시즌 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멋진 농성장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그 어떤 농성장보다 멋진 호텔급 농성장입니다.”

 

삼평리는 ‘시즌 2’의 과제로 법률 기금을 조성(변호사 수임료, 벌금 등)하는 등 법적 대응을 하고, 삼평리 평화센터를 설립하고, 할매들 집수리 및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또한 삼평리 현장에서 송전탑 반대 농성도 꾸준히 이어가려 하고 있다.

 

‘삼척의 주민투표가 영덕에 힘을 주었어요’

 

11월 11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녹색당 주최로 한국탈핵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원전과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삼척, 밀양, 청도, 경주, 부산, 영덕의 주민들은 각 지역의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지속될 운동의 방향을 공유했다.

 

“최근에 10여개 단체가 회동을 했습니다. 회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어요. 그만큼 한자리에 모여 앉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주민들이 자기 의견을 표현도 못하고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박혜령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  11월 11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녹색당 주최로 한국탈핵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영덕은 1989년, 2003년, 2005년 세 차례의 핵 폐기장 반대운동을 통해 핵 폐기장 유치를 무산시킨 역사적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에게 여러 형태의 고통이 뒤따랐다. 벌금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지역 사회에서 배제 당했다. 불매 종용으로 식당을 폐업하고 고향을 떠난 주민도 있었다. 이렇듯 정부의 핵 폐기장 유치 시도는 영덕 지역의 공동체성을 파괴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전 영덕군수가 신규 원전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핵 폐기장 반대운동의 상흔이 깊게 배인 영덕 주민들은 쉽사리 싸움에 나서지 못했다. 박혜령 집행위원장은 이 시간이 “피가 마르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라고 말했다.

 

힘을 준 건 삼척의 주민투표였다.

 

“삼척의 주민투표가 영덕에 용기를 주었습니다. 국가가 하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막는단 말이냐 절망감도 있었는데, 힘을 받았습니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 지역 주민들이 시장 후보들에게 ‘당선되면 영덕의 주요 현안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었는데, 그것이 조금씩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역의 제 단체들이 공동 투쟁체를 결성했고, 오늘과 내일 (신규 원천 유치를 반대하는) 현수막 5백개 걸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군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했고, 군청에서는 공청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습니다. 20일 이후 군 의회의 행보에 힘을 실을 계획입니다.”

 

박혜령 집행위원장은 “혹시나 이 투쟁이 정치적으로 이용만 되고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고 덧붙이면서, 영덕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워달라고 당부했다.

 

삼척 주민들, 투표로 배운 것은 ‘민주주의’

 

이광우 삼척시 의원은 주민투표 이후 삼척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주민투표 이후에 정부는 언론을 통해서 삼척 주민들을 설득해 원전 유치를 강행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길 계속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삼척이랑 영덕 원전은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삼척에서는 주민투표 이후에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원전 유치에 앞장섰던 단체가 3년 전 국회와 청와대에 제출했던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가 진위 여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주민 96.9%가 찬성했다’며 서명부를 제출한 것인데, 대다수 시민들이 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데다, 서명부 원본이 남아있지 않아 의혹이 커지고 있다.

 

“삼척 시민들이 투표하면서 배운 게 민주주의에요. 권력 통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삼척시장이 변절하면 바로 응징할 겁니다. 시장이 겁을 내고 있어요. 이거 잘못하면 큰 일 나겠구나 하고요.”

 

이광우 의원은 지방선거와 주민투표를 통해 삼척 주민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며 국가가 삼척 주민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발한 준비가 되어있다” 고리 원전 폐쇄하라 

 

▲ 핵발전소의 위험은 불평등하게 부담된다. 전력 소비량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2009년 재구성. 
 

지난 10월, 부산 동부지방법원은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에 대해 ‘핵발전소 책임’이 일부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부산의 고리 원전 인근인 기장군에 사는 주민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고리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원전에서 굳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이미 주변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이다. 이는 집단 소송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자상 부산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기장군에만 공동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사람이 백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구자상 운영위원장은 부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리 1호기가 38년 되었습니다. 폭발할 준비가 다 되어있어요. 후쿠시마가 재연장한 다음에 폭발했거든요. 그런데 고리 1호기도 또 연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원전 사고 발생 통계를 보더라도, 원전 정지 사고 발생 건수가 가장 많다. 그럼에도 대형 원전 사고가 일어날 시에 대비한 방사능 방재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

 

구자상 운영위원장은 특히 “국민들과 함께 탈핵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에서 서명을 받으면 시민들이 ‘미친놈들, 그럼 전기를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욕을 하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 핵발전소가 몇 개 있는지도 모르는 분이 많다. 핵 문제가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가 국민과의 대화를 못 만들어 내고 있다.”

 

경주, 민간 참여로 월성 1호기 재가동 막겠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노후 원전인 경주 월성 1호기 폐쇄를 주장했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20일, 설계 수명 30년을 다 채워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 9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해도 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상홍 사무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월성 1호기에 대해서 ‘스트레스 테스트해서 이걸 통과하면 연장 하겠다’고 했고, 작년 8월부터 민간이 참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민간 검증 위원들이 잘 싸우고 있습니다. 민간 검증 위원들이 처음에 이 작업 착수할 때는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한국수력원자력 쪽에서 전문가들이 들어올 텐데 우리가 뭘 판단할 수 있겠냐’ 했지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비전문가들이 해 봐도 문제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이상홍 사무국장은 현재 민간 검증 위원들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12월말이나 내년 초에 월성 1호기 재가동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결과가 나온 후,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할 것인지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상홍 사무국장은 또 고리 지역의 갑상선암 공동 소송이 “탈핵으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고 모집 운동을 하다 보니까, 만약 패소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들을 하신다. 패소하면 비용을 원고 측에 물을 것이기 때문에 패소 비용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피해자들도 있다. 이 분들은 사회적인 피해자다. 원전 주변에서 암으로 고통 받는 분들의 소송 비용도 사회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전국의 탈핵운동과 만난다면 지역의 싸움 승산 있어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각 지역의 투쟁이 탈핵 운동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양은 패배 일보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10년간 싸웠지만 지도부는 다 보상 합의로 넘어가고 앞이 보이지 않았었어요. 이 때 이치우 할아버지가 분신 자결하셨고 이후 1차 탈핵 희망버스가 밀양으로 왔어요. 밀양 송전탑 싸움이 탈핵 운동과 만났고, 전국의 양심 있는 시민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겁니다.

 

여수나 서산에도 송전로를 깔려고 해서 반대 흐름이 시작되려 했지만 한국전력이 10억이 넘는 돈을 풀면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밀양도 그렇게 오래 싸웠는데 진 거 아니냐고, 결국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밀양은 늦게 불이 붙었습니다. 만약 계획 단계에서 탈핵 운동, 시민들과 만났다면 계획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었을 거예요.” 

 

       ▲ 작년 5월, 한전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 온 몸으로 막아섰던 밀양 바드리 마을 주민들.   © 희정 

 

이계삼 사무국장은 “싸움을 시작하는 전국곳곳의 주민들에게 밀양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면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성과에 대해서도 짚었다.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에도 ‘송전선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분산형 전력으로 가야 한다’고 밝히고 ‘밀양송전탑 때문에 발전소 만들기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국가 정책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추동한 것 같습니다. 당진 화력발전소에 있는 9호기, 10호기를 당분간 가동을 못 한다고 합니다. 송전선이 없어서예요. 한국전력이 송전선 놓는 걸 못한다고 해서 한국전력 자회사에 넘겼는데 거기서도 못 한다고 하고 민간회사들도 안 받아서 가동을 못 하고 있어요. 밀양과 청도 투쟁 때문이에요.”

 

밀양 주민들도 굽히지 않는 의지를 밝혔다. 밀양 주민 김영자씨(58)는 송전탑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게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한전 사장이 우리한테 한 이야기가 있어요. ‘신고리 5, 6호기가 안 세워지면 밀양에 송전탑은 필요가 없다’고. 그런데 신고리 5, 6호기가 승인이 났다고 해서 꼭 세워져야 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아예 착공을 못하게 국민들이 힘을 모아서 꼭 막았으면 좋겠어요.”

 

송전탑 반대 투쟁, 3대 에너지 악법 개정으로 

 

▲  독일 “핵 발전을 반대하는 100가지 이유”(100-gute-gruende.de)에서 제작한 카드  
 

탈핵만민공동회에 참석한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은 4박 5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3대 에너지 악법이라 불리는 전원개발촉진법과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이하 송주법), 전기사업법을 바꿔내기 위한 운동을 선포하였다. 이 3대 악법이 한국 사회의 모순적이고 파행적인 에너지 체계의 근거가 된다고 보고, 개정 및 폐지에 나선 것이다.

 

첫째, 전원개발촉진법은 1978년 제정된 것으로, 한국전력이 송전선로를 설치하려고 할 때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왔다.

 

둘째, 송주법은 송.변전 설비로 인한 피해 범위를 좁게 설정함으로써 실제 주민들이 입고 있는 피해에 대해 충분하지 않은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작은 보상으로 주민들의 불만과 피해 호소를 무마하는 것이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송주법은 국회에서 ‘밀양법’이라고 만들었지만, 밀양 주민부터가 반대하는 엉터리 악법이다. 한전이 자기들 내키는 대로 열심히 투쟁하는 지역은 돈 좀 더 주고, 투쟁 안 하면 보상금도 안 주고, 돈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셋째, 송전선을 땅에 묻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정부와 한국전력이 ‘요청자 부담 원칙’이라며 비용을 피해 주민이나 해당 지자체에 떠넘길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전기사업법이다.

 

이 3대 악법 반대 운동은 밀양, 청도 대책위는 물론 횡성, 당진의 주민들, 송전탑 피해주민 법률지원단, 그리고 녹색당과 환경운동 단체 등이 모인 ‘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가 주도한다.

 

송주법과 전기사업법에 대해서는 지난 10월 밀양, 청도, 서산, 당진, 여수 주민들 다섯 명이 청구인이 되어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한 바 있다. ▣ 나랑(김지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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