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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기술센터 이동근씨를 만나다

에너지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곳이 있다. 경남 산청에 위치한 대안기술센터다. 대안기술센터에서는 재생에너지 DIY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안의 인테리어나 가구도 직접 수리하고 제작해보는 DIY가 낯설지 않은 것이 됐다. 에너지자립을 꿈꾸며 직접 풍력발전기, 태양열조리기, 자전거발전기, 바이오디젤 등을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중부지역에 첫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곳에 가보았다.


이동근 소장을 비롯해 대안기술센터 사람들은 갑작스레 닥친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대규 간사는 태양광발전기를 높이 세우기 위해 필요한 구조물을 제작 중이었고, 캄보디아에서 온 교육생과 이동근씨는 태양열오븐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풍력발전기, 태양열오븐, 바이오디젤 만들기
 

경남 산청에 위치한 대안기술센터의 재생에너지 DIY 작업장 모습


현재 대안기술센터의 주된 일은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만들어보면서 기술과 방법을 가르치고, 각종 워크샵을 열어 실제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동근 소장은 영국으로 건너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지역적 조건에 맞는 기술) 분야 중 환경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영국의 대안기술센터(Center for Alternative Technology)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실제적인 기술을 배운 바 있는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 둥지였던 경남 산청의 민들레공동체로 되돌아와 대안기술센터를 설립했다.
 
“2004년에 들어와서 와보니까 우리나라가 에너지 문제, 환경 문제가 큰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더라구요. 내가 배운 것의 일부분이라도 우리 사회를 위해 환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에는 내가 못 가니까 사람들을 이리로 불러다가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전공은 환경건축인데, 건축은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거든요.”
 

태양열오븐 제작원리를 설명하는 이동근씨

그의 궁극적인 주제는 농촌지역과 농업이었다. 어떻게 하면 농촌 지역에 희망을 심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그를 항상 따라다녔다. 한국의 농촌지역 문제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빈곤퇴치를 위한 지역개발에도 관심이 컸다. 아프리카에서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캄보디아에 정착을 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우리가 캄보디아 가서 가르치려면 몇 개월이 걸리는데, 그럼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차라리 잘 하는 사람 한 명 보내라. 교육시켜서 보낼 테니까. 그러면 우리도 일이 되고, 그 쪽도 도움이 되고.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몽골 등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불러서 (교육)할 예정이에요.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두 가정이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서 배움의 기회를 갖기 힘들지만, 꼭 대안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안기술센터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조용하게 말하는 이동근 소장은 이 대목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가난해서 못 배운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 그래서 캄보디아, 몽골 등에서 온 교육생에 대해선 비행기삯을 비롯하여 생활비, 교육비 등을 대안기술센터에서 지원하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이 쓸 수 있는 착한 에너지는 없을까
 
이동근 소장이 고민하는 에너지 문제의 핵심은 “대다수의 서민들이 값싸게 쓸 수 있는 ‘착한 에너지’가 없을까”이다. 현재 얘기되는 재생에너지의 경우는 돈이 없는 “서민이 하기엔 멀고 먼 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착한 에너지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태양전지도 현재 방식에서는 자재 값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힘들어요. 태양에너지이든, 풍력이든, 바이오매스든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을 하는 게 바이오가스에요. 바이오가스는 배설물만 있으면 계속 나오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바다에 엄청나게 많은 축사폐기물이 매립되고 있잖아요. 바다 속에. 그게 다 메탄가스화 되거든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죠. 지역에서 도시와 농촌과 축산업계가 효율적으로 축사폐기물들을 바이오가스화 시키고, 거기에 나온 것들을 논밭에 뿌려 유기농으로 텃밭을 일구고.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축사에서 나오는 가축분뇨가 발효되면서 나오는 열과 바이오가스로 가정에서 쓰이는 전기, 취사.난방, 자동차의 연료로 쓰는 것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이미 프랑스나 독일 등지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이오가스도 접근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발효조(발효탱크)인데, 발효조를 만드는 게 너무 비싸다”는 것.
 
한국에선 뜻있는 개인들이 시도해보고 꿈을 꾸기에는 자본도 없고, 정부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배워온 적정기술을 한국사회에 적용해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 에너지를 자립해보겠다는 것이 우리 나라 상황에선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적정기술이란?

 

'적정기술'은 대안기술센터의 이념과도 같다

그가 배운 적정기술(
Appropriate technology)은 다른 말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간기술은 경제학자이면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로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 변화를 주장했던 E.F. 슈마허가 주창했던 개념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영국이 섬유산업을 크게 했으니까 인도 농촌사회에 면화를 심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영국은 지주들에게 트랙터라고 하는 당시 첨단 기술을 보급해주면서 면화를 심어라 했던 거죠. 그래서 트랙터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지주는 좋아요. 경제작물, 상업 작물을 심을 수 있으니까, 갑자기 돈도 생겨나고, 서구에서 타는 유명한 자동차도 타게 되고. 근데 대다수의 농민들은 땅을 빼앗기게 되어 실직자가 된 거죠. 농촌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 도시로 가는 거에요. 그러나 일자리가 다 제공될 순 없으니까 인도의 수많은 도시 빈민들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도시 빈민들이 생기는 원인을 따라 가보니까 농촌이 파괴되어 있는 거에요.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각 지역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촌이 회복되어야 하는 거에요. 거대기술, 첨단기술인 트랙터를 포기해야만 농민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러나 트랙터와 같은 첨단을 맛본 지주가 트랙터를 포기하려 들지 않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트랙터보단 좀 못하지만 호미나 쟁기보단 좀더 개량된 기술방법, 첨단과 후진의 중간쯤 해당하는 기술이 있다면 도시 빈민의 100%는 아니지만 20, 30%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서 도시빈민을 줄이고, 농촌이 균형 있게 발전될 수 있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동근씨는 즉, “첨단의 기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중간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간기술의 개념이 어려우니까 “지금은 대안기술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농촌에서 적정기술을 실현해보겠다는 꿈이 있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어려움을 많이 겪은” 탓에 우리 사회의 에너지 자립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인 전망을 하게 된다면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웃었다. 대기업중심, 서울중심, 첨단산업중심의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면 절망적인 생각도 들지만, 이동근씨는 농촌사회에서 또 다른 희망을 꿈꾸고 있다.
 
“논리적인 말보다 실제를 만드는 게 중요해”
 

캄보디아 교육생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모습

“한 대학생 캠프에 강의하러 갔는데, 한 명이 손을 들어요. 선생님, 이렇게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우리가 다 동의하는데 반면 어른들은 이에 대해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더라구요. 저는 답을 그렇게 줬습니다.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의사결정 구조를 잡고 있는 어른들, 정치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고 한다면 논리적인 말보다는 실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실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역사회에서 한번 해봐라. 뜻있는 대학생끼리 모여가지고 태양열조리기라도 만들어서 밥이라도 해먹어봐라. 내가 하다 보면 책에 없는 이야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경험들을 책으로 쓰고, 동네아이들을 불러다가 가르쳐 주고, 어른들 동네주민들에게 하나씩 보급해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게 정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냐 라고.”

 
이동근씨는 “제일 중요한 게 실제”라며, “실제가 없는 말들은 크게 의미가 없어요. 거대자본에 의해서 돈이 확 들어와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느리지만 이 속에서 자생적인 힘들이 만들어져 이런 것들이 배워지고 세워지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싶어요. 우리 마을이 바뀌면 우리나라가 바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작은 지역단위가 활성화되는” 운동을 설명했다. 그가 사는 갈전마을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가 공부한 중간기술은 에너지가 중심이 아니에요. 에너지는 기본이에요. 에너지는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베이스인데, 그래서 중요하죠. 그 위에 문화와 사회 전체 체제들이 자립적으로 서가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에너지는 해결됐는데, 경제는 안 돌아가고, 경제는 돌아가는데 식량이 없어져 버리고, 물이 없어져 버리고, 사람이 살기 힘들어지고, 문화가 없고 삭막하고 그러면 뭐가 안 맞잖아요.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부가 그렇게 해주지 않더라도 우리 면이라도 면장님하고 생산량들을 조절하면서, 가까운 진주시와 연계를 해서 소비도 관리하면서,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해요. 시골은 도시가 가지지 못한 농촌의 문화들, 도시는 시골이 못 만들어내는 여러 다양한 문화들 제공해주고. 작은 지역단위들이 활성화되는 쪽으로 생각을 가지고 일단 마을부터, 우리 공동체부터 하자는 거죠.”

 
올 한해 대안기술센터는 교육과 워크숍 일정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교육생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엔 센터 공간을 중심으로 주변환경을 정리하고, 모델이 될만한 여러 재생에너지 DIY를 만들어 전시해놓을 계획으로 분주하다.
 
“영국에서 배워왔지만 한국상황과 문화에 맞게 개발할 것”라고 말하는 이동근 소장의 노력과 신념이, 지역을 살리고 서민들을 위한 재생에너지를 확산시키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일다] 윤정은
 
에너지정치센터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일다2009 새해맞이강좌 <변화의 길을 만드는 여성들> 수강신청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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