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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에서 온’ 그녀의 손수건
[까페 버스정류장] 가끔 이렇게 차 한 잔 할 수 있다면… 
 

 

경북 상주시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 “카페 버스정류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님은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일다 www.ildaro.com 

 

빗물의 흔적조차 눈물의 흔적으로 느껴지는 한 일본여자의 손수건을 곁에 두고 나는 한참 동안 검색의 바다를 헤매었다.

 

ㅇㅇ교.

올해, 2014년에도 이천오백 쌍의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 결혼하여 가족을 만들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그들 신앙생활의 중요한 (…)  수많은 엘리트 여성들이 직업도 없고 정신적 육체적 결함이 있는 남자와 일면식도 없이 결혼한 사례들이…

 

깡마른 몸매에 짧은 커트머리를 한 여자가 가만가만 현관으로 들어오더니 ‘여기구나’ 하면서 우산을 접었다. 나는 막 우산꽂이를 내놓던 참이었다.

 

“네, 여기예요.”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멀리서 온 줄 알았는데 차로 이십 분 거리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멀리, 아주 멀리서 온 여자인 것도 맞다.)

 

“아, 책!”

 

그녀는 바 앞에 놓인 작은 책꽂이의 책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가슴속에 남아있는 어떤 것을 확인하듯 두 손을 가슴에 겹쳐 놓았다.

 

“늘, 책을 읽고 싶어하면서 살고 있어요.”

“흔한 게 책인데…. 바쁘게 사시나 봐요.”

“아이가 많긴 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아들만 다섯이라고(맙소사!), 아들만 낳아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이 책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친구들이랑 책 읽는 모임이라도 만드시지 그래요.”

 “같이 시집 온 일본 사람들, 여섯 명이 있어요. 가까이 사는데 다 바빠요. 모두 직장 다니고 저만 애들 많아서 집에 있는데, 그래도 시간이 없다기보다 남편이 제가 나가는 것,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싫어해요.”

“그렇구나. 그러면 힘들죠.”

“친구들 못 만나는 것이나 돈이 없는 건 참을 수 있어요. 술만 안 먹어도 좀 낫겠는데, 매일 술 먹고, 술 먹으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제가 좋은 마음을 못 가져요. 정말 사랑만 하고 싶은데, 무조건 다 받아주고 싶은데,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되네요.”

 

마치 책의 한 문장을 읽는 것 같은 화법이며 반듯한 태도가 그녀의 교양 정도며 됨됨이를 짐작케 했다. 질문도 없는 대답을 독백처럼 늘어놓으며 자리를 잡지도 않고 서성대는 모습이 한편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차를 테이블에 올려놓자 그녀도 비로소 자리에 앉아 찻잔을 감싸 쥐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이 얼마만인지…. 스물여섯에 한국에 왔는데 십오 년 만에 처음 카페에 왔네요. 가끔씩 이렇게 차 한 잔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남편과 나를 힘들게 할 테니까 하지 말아야죠.”

 

그녀는 맥없이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는 이상하게 한국이 더 좋았어요. 책을 너무 좋아했는데, 스무 살 때쯤에는 한국 책을 읽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그래서인지 한국남자랑 살게 된 것이 운명 같았어요. 정말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젠, 자신이 없어요.”

 

그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나를 의식하는 듯 수화기를 손으로 가렸다.

 

“아, 아, 미안해요. 정말 잠깐만 나온 거예요, 잘못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화나지 마세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일어서며 ‘지금 가니까요, 여보, 제발 화나지 마세요(화‘나‘지 마세요, 라는 표현이 그녀의 입장을 추측하게 했다.)

 

나는 앞질러 나가 그녀의 우산을 찾아 건넸고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내 표정에 조금의 동정심도 비치지 않도록 애쓰며.

 

마시다 간 찻잔 곁에는 그녀가 흘리고 간 후줄근해진 분홍색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아니, 어쩌면 흘리고 간 것이 아니라 좀더 머물고 싶었던 그녀의 의지인지도 몰랐다. ▣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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