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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는 왜 ‘지옥’이 되었는가
한국 산업재해 현실을 고발하는 <노동자, 쓰러지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숫자가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죽음들의 진실을 알기위해 더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몇 명이 죽었는가보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고 왜 죽었는지” 이다.

 

한국의 산업재해 현실을 기록한 <노동자, 쓰러지다: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희정, 오월의 봄)는 그 지점에 주목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촘촘하게 파고든 책이다.

 

흔히 산업재해라고 하면 떠올리는 조선소나 건설 현장부터 ‘웃으면서 죽어가는’ 감정노동자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기까지 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책장을 몇 십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마치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를 되뇌며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졌다.

 

당신은 얼마면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방송 700회를 맞아 제작한 특집 방송에서 ‘한국인과 돈’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얼마면 양심을 져버릴 수 있겠는가, 얼마면 친구나 가족과 절연할 수 있겠는가. 응답자 중 절반이 ‘10억 이상’이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양심과 가족의 가치가 10억 정도에 맞바꿔질 수 있다 말하는 세상에서 과연 ‘목숨값’은 얼마나 하는가. 당신은 얼마면 당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은 다 공상일 뿐이다. 이를테면 내일 로또1등에 당첨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같은 질문인 것이다. 현실 속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행복이나 목숨, 그리고 양심이라는 것들에 그야말로 ‘헐값’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시대의 노동자들은 가족들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든 장시간 노동 끝에 과로사 하고, ‘진상’ 손님들에게 친절뿐만 아니라 감동까지 주려다 모멸감을 안고 자살하고, 유독물질이 범벅된 환경에서 맨몸으로 일하다 온갖 병으로 쓰러지고, 안전 장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공사 현장에서 추락하고 깔려 죽는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돈’이 있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 스러진다 

 

▲ <노동자, 쓰러지다: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희정, 오월의 봄) 
 

책 속에는 많은 직업들이 다루어진다. 이 수많은 직업군과 회사를 아우르는 죽음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회사가 안전에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이윤 추구를 위해 임금은 줄이고 노동력은 극한까지 뽑아내려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죽도록 일하다가 죽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병에 걸려 죽거나 사고로 죽는 것이다. 그 두 가지의 공통점이 또 있다. 어느 경우든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한 비용을 아끼는 것도 ‘10만 원짜리 안전펜스’ 하나를 두지 않아 청년노동자가 ‘용광로 쇳물에 빠져죽는’ 수준이다. 기업들이 안전비용을 아껴도 너무 아껴서, 노동자들은 죽어도 너무 쉽게 죽는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다치거나 죽게 되면 산재보험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업들은 거기서도 이윤을 늘이는 데만 관심이 있다.

 

<노동자, 쓰러지다>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재해율 즉 ‘일하다 다치는 비율’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보다 낮다. 기업들이 산업재해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무재해 사업장이 되면 누리는 혜택이 크다. 조선업종은 안전보건 감독이 면제된다. 산재보험료도 감면받는다. 삼성물산은 5년간 622억, 삼성전자는 597억, 현대중공업은 852억, 현대자동차는 540억, 롯데건설은 410억의 보험료를 감면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피해자에게 돈다발을 안기거나 작업 환경 측정을 조작하거나” 하는 식으로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기술만 늘었다. 영세한 사업장은 점점 더 “죽어도 돈 몇 천만 원이면 해결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진다.

 

일터가 안전해지면 사회가 안전해진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노동 현장의 산업재해 현실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매우 꼼꼼하게 근거들을 제시하고 가능한 대안들을 탐색해 제시한다. 책에서 도달한 결론은 간단하다. ‘안전에 투자해야 안전해진다’는 것이다.

 

작업 환경에서 위험물질이 안전하게 처리되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장비가 잘 갖추어지고, 과로하지 않도록 적절한 노동시간이 주어지고, 노동에 대한 대가가 합리적으로 책정되고, 과도한 감정노동과 성과경쟁을 요구하지 않도록 변화해가야 하는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임을, 오히려 빨리 변화를 시도해야 함을 이 책을 읽다보면 납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남성노동자의 2교대근무나 야근이 생활화된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배우자인 여성들의 전업주부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여성이 함께 벌이를 하는 상황에서도 육아나 가사는 여성의 몫이 될 수밖에 없고, 일·가정양립이나 아빠의 육아 참여 같은 구호는 그저 허공에 맴돌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한편으로 사회의 균형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기업들이 안전에 대한 비용을 아껴 큰 이익을 남기는 동안, 우리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 ‘노동자의 죽음’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일하다 다치거나 병든 사람들의 삶, 남겨진 가족들의 삶이 감당할 고통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 <빅이슈> 판매원이 된 몇 분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열심히 일하다 눈을 다치고, 허리를 다치고, 다리를 다쳤고 그 결과 이전 같은 노동 강도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일하다 다치면 쉽게 ‘안전불감증’이라는 딱지를 붙이듯이 일하다 다치거나 사고를 내서 노숙인이 된 이들을 사회는 쉽게 ‘의지가 없고 게으른’ 사람들도 평가 절하했다.

 

<노동자, 쓰러지다>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자’가 한국사회의 평균적인 노동자의 모습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사실 우리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당장 내 주위만 돌아봐도 병가를 낸 사람,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온 사람, 우울증을 겪는 사람 등이 수두룩하다. 정시에 퇴근한다는 사람은 희귀하고, 잦은 야근이 당연하다. 자살률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사회라는 지적에 납득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무지막지하게 남기는 이윤이 원래 가야할 곳으로 가도록 하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게 되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이 말이 배부른 소리로 들리거나 납득할 수 없다면 더욱더 <노동자, 쓰러지다>를 꼭 읽기를 권한다. ▣ 박희정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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