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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인연의 보물지도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 일다 www.ildaro.com 

 

템즈강 어느 다리 아래서 마주친 얼굴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20대의 마지막 무렵, 런던에서 3년을 지냈다. 1년 정도 공부를 하고 나머지 2년은 알바와 여행을 반복했다. 우스갯소리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농담만은 아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필리핀, 중국, 콜롬비아, 브라질 등에서 일하러 섬나라에 모여든 이들과 함께 나는 그곳에서 노동자였다.

 

일이란 어느 나라에서나 고되겠지만, 그곳에는 알바생에게도 유급 휴가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대놓고 하지는 않고, 일 하지 않는 시간을 더 여유롭게 보낼 재밋거리들도 많았다. 쉬는 날이면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 아니 그냥 잔디밭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 무료로 갈 수 있는 수많은 갤러리들에는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가의 그림들이 넘쳐나서 3년 동안 다 볼 수도 없었다.

 

그 시절의 어느 날, 템즈강 다리 아래 갤러리 화장실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내가 나온 대학은 전교생이 시골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라 직접 알지는 않아도 얼굴은 익숙하게 되는 곳이다. “혹시 00대학 나오셨나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타국에서 한국인만 만나도 반가운데(물론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법 특이한 대학 시절을 보낸 우리들에게는 공통점이 꽤 있었다.

 

그녀는 런던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있었고, 나긋한 목소리에 눈웃음이 예뻤다. 외로운 런던 생활에 간간히 만나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각자의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기도 하고, 전시나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런던 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함께 짧은 트래킹 여행을 갔는데 그렇게 많은 양과 양 똥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눈앞에 양들이 떠다녀 잠이 안 올 때 양을 세는 이유를 찾았다며 깔깔대던 그 여행에서, 그녀는 길에 앉아 자주 그림을 그렸다.

 

둘 다 한국에 돌아왔고, 2년쯤 흘러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책이나 잡지 등에서 그녀의 그림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2012년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난처럼 아이폰 녹음으로 수공예 앨범을 만들었다. (최근 녹음실에서 작업한 앨범보다 낫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평을 듣기도 한다.) 서울에 상경해 친구들의 집에 기타를 메고 찾아가 노래를 부르고 앨범을 강매했었는데, 경복궁역 근처 작은 한옥집 방을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던 그녀에게도 찾아갔다. 코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며 그녀는 나보다 더 부끄러워했다.

 

남산관찰연구소 “Let’s sing a sad song” 

 

▲  남산관찰연구소, Let’s sing a sad song, 2014년 4월 30일 
 

그리고 또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녀는 이태원의 한 주택 2층을 빌려 제법 큰 작업실을 마련해 ‘남산관찰연구소’라는 이름을 지었다. 작업실의 1층이 비게 되어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찾다가 다양한 직업군의 지인 열명을 모아 함께 임대를 했다는 얘길 들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공연 제의를 해왔다. 한번 들르고 싶던 차에 서울 노래여행 일정에 맞추어 공연을 잡았다.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예쁜 포스터도 그려주었다.

 

아담하고 깔끔한 2층 주택에 정원 같은 마당이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앉아 어떤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며 기타를 치고 있으니 바람소리 새소리가 내 노랫소리에 더해진다. 그렇게 해가 기우는 동안 지난 번 행사에서 음식이 남았다며 그녀와 친구들이 부지런히 먹을 것을 준비한다. 그녀는 뚝딱뚝딱 무대와 팁박스를 만들어 편안한 공간으로 변신시켜준다.

 

사람들이 모였다. 이름 모르는 한 음악가의 음악을 들으려 모였다기보다는 그녀와 그 장소를 인연으로 만나진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는 일을 궁금해 한 것일 게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공연 때마다 초를 켜둔다는 얘길 듣고 그곳의 친구들은 많은 초를 준비해 곳곳에 켜두었다. 어둑하고 아늑한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내 인연의 인연들은 부산에서 왔다는 낯선 음악가의 낯선 노래에 귀 기울여주었다.

 

언제부터인가 공연에서 내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의 후렴구에, 관객이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시작하고 싶은 일들을 넣어 따라 부르도록 하는데, 이 날 공연에서도 모두에게 물었다. “기타를 배워봐야겠어요”, “연애를 시작해야겠어요”, “사표를 써야겠어요”,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자전거를 사서 여행을 하겠다’는 노년의 신사분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친구가 뚝딱뚝딱 만들어 준 팁박스도 제법 채워졌다. 그렇게 신기하게 다음 노래여행의 여비가 마련되는 경험을 (아직까지는) 계속하고 있다.

 

처음 인연이 시작될 때는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다. 타국의 낯선 갤러리 화장실에서 시작된 인연이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와 만나서 남산 자락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새로운 인연을 짓는다. 엉뚱하게 갑자기 기타를 메고 찾아와 낯 뜨거운 공연을 했던 어느 날의 기억이 그녀에게 좀 깊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관객과 밤새워 부를 수도 있는 노래

 

이제껏 여행자로 살아오면서 발견한 한 가지 비밀이 있다면, 엉뚱함이 종종 인연의 보물지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혹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하다면, 또는 새로운 인연을 기대한다면,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좀 엉뚱한 작당을 시도해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덧: 가끔 이 지면에 내 노래 가사를 실어볼 생각이다. 이번엔 위에 언급된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의 가사이다. 이 노래도 사실 엉뚱하게 시작된 노래다. 아끼던 가방을 잃어버린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이런 날도 있네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뒷말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재미있어서 받아 적어 두었다가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의 길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관객이 많다면 밤새워 부를 수 있을지도. 

 

▲  남산관찰연구소, "Let’s sing a sad song" 공연이 끝난 후. 2014년 4월 30일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이내 작사 작곡

 

   이런 날도 있네요.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없이 지나가는 하루.

   이런 날도 있네요. 외롭고 쓸쓸하고 조용하고 무엇보다 심심하고.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좀 나가봐야겠어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말이나 걸어봐야겠어요.

 

   이런 날도 있네요. 하루 종일 사람들에 둘러싸여 눈 깜빡할 새 지나가는 하루.

   이런 날도 있네요. 신나고 바쁘고 정신없고 무엇보다 내가 없고.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좀 혼자 있어야겠어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산에나 들어가야겠어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여기에 각자의 이야기를 넣어 부른다) * 관객 수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bombbaram.blog.me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Media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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